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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조성 강사 라라 Oct 22. 2023

지루함은 창조성이 잉태되는 요람

 

지루함과 게으름은 창조성이 잉태되는 요람


 작곡을 할 때 나의 일상은 ‘작곡 모드’로 변한다. 일단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서 며칠이고 청소만 한다. 청소가 끝나면 정갈해진 책상 앞에 앉아 작업할 내용을 잠깐 훑어보고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 산책을 다녀온다. 잠깐 피아노 앞에 앉아 끄적끄적 대다가 이내 침대에 드러누워 뒹굴거린다. 괜히 자고 있는 고양이를 괴롭히기도 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천정의 벽지 무늬를 오랫동안 응시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백수나 한량쯤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작곡 모드’는 오랜 시간에 거쳐 체득한,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는 중요한 시간이다.     


 영국의 벨튼 교수는 “창조성을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속도를 늦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지루함과 게으름은 창조성이 잉태되는 요람이다. 멍 때리고 하늘을 보거나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뇌는 창조적인 상태로 돌입하고 있다. 작곡가들이 종종 ‘그분이 오셨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잠재의식에서 쏟아지는 영감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꼭 위대한 작품을 위한 대단한 영감을 만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지루함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외부의 자극 없이 몹시 지루해지면 누구나 지루함에서 벗어날 자극을 찾게 된다. 바로 그때 뇌는 풍부하게 창조적으로 변한다.      



doing보다 어려운 non-doing


 게으르게 빈둥거리는 것은 결코 소모적이거나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라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휴식이 필요한 시간조차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빈둥거리는 것은 한심하다는 생각에 제대로 쉬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불안하다. 뭐라도 해야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도무지 가만히 있기 어렵다. 그래서 쇼핑, 인터넷, 게임 등에 빠져 불안을 피하기도 하고, 운동, 공부, 명상 등 자기 계발과 성장에 매달리기도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이 두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대부분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두려워한다. 혼자 존재할 때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오롯이 느끼게 되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마주해야 할 감정, 생각하기 싫은 골치 아픈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 일이든 노는 것이든 바쁘게 움직인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면서 정말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과 내 삶이다. 정작 책임지고 가꿔야 할 내 삶과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도망친다고 해서 마주해야 할 감정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고대의 사상가들은 사람이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를 뜻하는 영어단어 school은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a’에서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고(doing) 몰아붙인다. 하지만 내 안의 잠재력을 깨닫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오히려 무언가 하지 않는 것(non–doing)이다. 목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에 나의 창조적 자아를 가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찾을 수 있다. 외부의 자극 없이 혼자 있는 시간에 우리는 비로소 내면에 존재하는 나만의 리듬을 찾을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 멍 때리는 시간은 나만의 리듬, 나의 창조적 자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시간이다.   

   


non - doing 훈련


 무언가 하는 것보다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의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부터 한 주 동안 일상에 최대한 공백을 만들어보자.      


 먼저 습관적으로 보던 TV나 영상을 멈춘다. 일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 SNS와 인터넷 검색, 책 읽기도 모두 멈춘다. 운전할 때 차 안에서 생각 없이 틀어놓는 방송도 멈춘다. 핸드폰은 정해진 시간에만 확인하고 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둔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음악을 듣고 싶다면 몰입해서 음악을 듣는다.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정해진 시간 동안 집중해서 즐긴다. 다만 적막함이 불편해서 끊임없이 뭐라도 듣고, 가만히 있기 불안해서 무언가 보는 무의식적 행동을 멈추는 것이다. 꼭 해야 할 최소한의 일만 확인하고, 나머지 시간은 최대한 공백으로 남겨두자.    

  

 내가 얼마나 흐릿한 정신으로 살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일단 멈춤’을 할 필요가 있다. 습관적으로 보고 듣고 읽던 것들을 멈췄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관찰해 보자. 아마도 처음에는 지루함보다 불안이 더 클 것이다. 무언가 하고 있지 않다는 불안이 얼마나 크며, 그 불안을 피하려고 그동안 무엇을 했었는지 생생히 느껴보자. 불안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서서히 놓치고 있던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견딜 수 없이 싫은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 안에서 들려오는 말에 정직하게 마주해 보자.     


 한편, 모든 것을 멈추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손바닥 만한 핸드폰 화면에서 빠져나오면, 제일 먼저 모든 사람이 핸드폰만 보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볼 것이 없어 방황하는 눈은 비로소 눈앞에 있는 것들을 진짜로 보기 시작한다. 하루 단위로 계절이 바뀌는 숲, 매 순간 색이 달라지는 하늘빛, 언젠가 하려고 미뤄왔던 옷 정리, 기대감에 부풀어 구매해 놓고 오랫동안 방치한 악기…. 매일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며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 것이다. 그 느낌은 생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흐릿했던 정신이 ‘지금, 여기’로 돌아왔다는 반가운 증거다.      


 의도적으로 만든 공백의 시간에 나는 무엇이 하고 싶어졌나? 어떤 것이 문득 떠올랐나? 이제 떠오른 것들을 해보자. 미뤄왔던 청소든, 철 지난 옷 정리든, 실컷 낮잠을 자는 것이든 무엇이든 좋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하게 널브러지고 싶다면 그렇게 해보자.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으면 안 돼!’라는 불안감이 엄습해도 그대로 있어 보자. 일주일 동안 무기력하게 있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무기력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기력에서 벗어나려 너무 애쓰기 때문이다. 죄책감 없이 실컷 무기력에 빠져들고 나면 반드시 ‘이렇게 있고 싶지 않아! 무언가 하고 싶어!’라는 강력한 의지가 샘솟게 된다. 나만의 리듬, 내 몸이 알려주는 타이밍을 존중하며 실컷 널브러져 보자. 


 지루한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강력한 깨달음을 주는 훈련이다. 이 연습에 도전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많은 것을 깨닫고 크든 작든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무언가 하지 않는 게 상상조차 안 돼서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더더욱 필요한 연습임이 틀림없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내 일상에 공백을 만들어보자. 그 공백의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는지, 어디로 안내하는지 마음을 열고 경험해 보자.      






창조성을 깨우는 과제  – 아무것도 하지 않기(non-doing) 훈련

일주일간 독서, TV시청, 라디오 청취, 인터넷(유튜브, SNS)을 하지 않는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주일간 모두 멈춰본다.      

- 모든 것을 멈췄을 때 내 안에서 어떤 생각들이 일어났는가? 주로 어떤 느낌을 느꼈는가? 

- 지루한 시간에 무엇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하고 나서 기분과 에너지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 도중에 실패했다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인용문 출처 : 영국 BBC방송 벨튼 교수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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