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 수업 첫날, 사람들의 몸은 대부분 딱딱하게 굳어있고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하다. 나의 지상 최대의 미션은 ‘노는 것은 유치하고 쓸데없고 오글거리고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어른들을 아이처럼 놀게 하는 것이다. 수업마다 놀이로 초대하는 나에게 ‘도대체 이런 걸 왜 하느냐?’고 묻는 일이 흔하다. 노는 시간이 아깝다며 빨리 수업이 진행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때쯤엔 모두들 완전히 달라져 있다. 굳었던 몸은 말랑말랑 이완되고, 긴장했던 표정도 부드럽고 편안해진다. 나이가 몇 살이든 가식 없이 맑은 표정으로 까르르 신나게 웃는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를 할 때는 한껏 신이 나서 생글생글한 에너지를 뿜는다. 호기심 가득한 눈은 반짝거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다가 벌써 끝날 때가 되었냐며 아쉬워한다. 나는 사람들이 아이같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창조성은 놀이와 동의어다. 칼 융은 ‘새로운 것의 창조는 지성이 아니라 놀이 충동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좋아하는 대상과 함께 논다. 화가는 붓과 물감을 가지고 도화지 위에서 놀고, 무용가는 자신의 몸과 공간을 가지고 논다.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나는 미생물을 가지고 논다”라고 말하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내가 하려는 일이 핵물리학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중요치 않다. 문제는 그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밌느냐다”라고 말한다. 화가 모리츠 에셔도 “나의 작업은 예술이 아니라 놀이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놀이는 건강한 심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신경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캇은 “심리치료의 목표는 놀지 못하는 상태에서 놀 수 있는 상태로 환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수업 참가자들은 ‘재밌게 놀았는데 심리상담을 받은 것처럼 치유된다’고 말하곤 한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치유되고 놀이를 통해 창조한다.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며 자라났고, 놀이를 통해 자기 자신의 잠재된 재능을 발견해 간다. 창조성을 깨우는 것은 다시 잘 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아이와 같이 완전히 순수하게 노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른이 되어도 삶을 놀이하듯 산다는 것은 마냥 재밌게 산다는 뜻이 아니다. 어른이 아이 같아지는 것은 고난과 역경조차 가볍게 바라볼 수 있는 내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도전과 실패가 두려운데도 나답게 사는 길을 명랑하게 걸어가겠다고 용기 내는 것이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나의 즐거움에 헌신하겠노라 다짐하는 것이다. 모두가 성공을 좇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세상에서 완고하게 나만의 행복에 집중하며 느긋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어른의 놀이는 아이처럼 저절로 되지 않는다. 놀이가 될 수 없는 고단하고 힘든 삶을 놀이의 재료로 삼아 즐거움과 기쁨으로 변형시키기로 의도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일상과 내가 하는 일이 놀이가 될 수 있을지 매일 치열하게 고민한다. 삶을 놀이로 바꾸려는 노력은 그 어떤 수행보다 강력하게 나를 성장시켰다. 모든 것을 놀이로 만들면서 나는 더 용감해졌고, 더 가벼워졌고, 더 균형 잡힌 삶을 살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의 창조성이 강렬히 깨어나면서 더욱 나다워졌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내가 더 잘 놀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을 놀이로 대하며 잘 놀 수 있게 되길 열망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고단하고 힘든 글쓰기 과정을 놀이로 승화하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 참고문헌
<놀이, 마르지 않는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에코의 서재
<생각의 탄생> 루트번스타인, 에코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