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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GO May 04. 2019

허접한 맥모닝이어도 좋아.

에딘버러 여행기 Episode 3




버스가 출발하고 인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8시간 이상의 야간 버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시간의 숫자는 자꾸만 느리게 바뀌는 기분이다. 나는 여행 중에 구글맵을 켜서 내 위치(파란 점)를 확인하곤 한다.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 가야 할 길이 한참인데 아직도 파란 점은 런던을 조금 벗어난 그 어딘가였다. 밤 12시가 지나니 졸려 덜컹이는 버스 창 가에 머리를 기대어 잠을 잤다. 깊은 잠은 아니었다. 자다 깨다 다시 구글맵을 켜본다. 파란 점이 런던과 에딘버러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다시 얕은 잠이 들었다. 버스가 멈추었고, 기사님이 뉴카슬이라면서 잠시 쉬었다 간다고 한다. 그때가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비몽사몽 한 채로 창밖을 보니 어두웠던 바깥이 점점 환해지고 있다. 잠결에 드문드문 보았던 길의 풍경이 참 예뻤다.



앉아서 가는 야간 버스를 타보니 불현듯 몇 년 전 라오스 여행이 생각났다. 친구와 나는 라오스의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는 길에 야간 슬리핑 버스를 탔다. 교통비와 숙박비를 절약하려 했던 우리의 선택이었다. 키가 작은 우리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하여 누웠는데 공간의 사이즈가 우리의 키와 딱 맞았다. 그 상태로 누워서 가면서 기사 아저씨의 라오스어 소리, 라디오 소리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차라리 그때가 괜찮았구나... 누워서라도 갔지... 이건 뭐...' 잠시 이렇게 생각했다.  



에딘버러에 다 올 때쯤 앞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불편하게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자세를 고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흐린 구름 사이로 해가 뜨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넘어가며 하루가 가고 새로운 하루가 찾아왔다.



버스는 예상대로 6시 반즈음에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찌푸둥한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을 한 다음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배낭을 고쳐 메고 일단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와 화장실에 갔다. 스테이션 밖으로 나오니 흐린 날의 에딘버러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4월 중순의 에딘버러는 정말 추웠다. 우습게 생각했다 큰 코 다칠 정도로 바람이 겨울바람 같았다. 이른 아침이어서 더 추웠던 것 같다. 패딩을 다시 여미고, 목도리로 목을 더 칭칭 감았다. 설마 이 정도 일까, 하며 반신반의로 패딩을 입고 왔는데 안 입고 왔으면 큰 일 날 뻔했다.


춥지만 고개를 돌려 에딘버러의 첫 모습을 눈으로 담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저 너머에 바다도 보인다. "아 예쁘다!" 비로소 나의 여행이 시작되는 첫마디를 내뱉으며 에딘버러의 첫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숙소는 한인민박이었다. 아쉽게도 체크인은 오후 5시였는데 그전에 짐을 맡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짐을 맡기는 시간도 오전 9시 즘이어서 너무 일찍 도착한 나는 시간이 애매했다. 스테이션에서 나와 숙소를 가는 시간까지 약 두 시간 정도가 남았는데 문제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는 것. 얼마 걷지 않아 맥도날드가 나왔다. 춥고 배고프고 허리 아프니 나는 고민 없이 바로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이른 오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종종 즐겨 먹던 맥모닝 메뉴를 시켰다. 핫케익 3조각과 커피. 예상했던 대로 맥모닝의 핫케익은 허접했다. 커피도 그저 그랬다. 웃기지만 나는 그저 그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추운 몸이 녹아지는 걸 느꼈다. 허접한 핫케익 빵에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렸다. 입을 크게 벌려 와앙 하고 먹으니 야간 버스의 피로가 단맛으로 잠시 가려졌다.


나는 늘 여행을 할 때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처음 가는 카페나 식당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정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 지점부터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피곤한 몸으로 그저 그런 커피 한 잔 마시고, 허접한 핫케익 한 입 베어 무니 에딘버러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걸 느꼈다. 짧은 여행길에 올라서서 처음으로 바라보고 느끼게 될 에딘버러가 몹시 기대가 되었다. 기대도 잠시, 나도 모르게 테이블에 엎드려 20분 정도 잠이 들었다. 맥도날드에서 엎드려 자다니. 정말 피곤했었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숙소에 갈 시간이 되었다. 구글맵에 검색해보니 숙소는 걸어서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배낭이 꽤 무거웠지만 나는 걸어서 숙소로 가고 싶었다. 걸어가며 천천히 구경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기온이 살짝 올라감을 느꼈다. 내가 머무는 3일 동안 일기예보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것이었는데 역시나 흐렸다. 다시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운 좋게도 구름이 갠다고 뜬다. 어서 구름이 개이길 바라며 에딘버러의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숙소까지 걸어가며 아기자기한 카페들도 사진으로 답고, 거리의 모습도 사진으로 담았다. 그렇게 걸으니 25분이 더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숙소 근처로 다 와가니 저 멀리 홀리루드 파크가 보인다. 마치 제주도의 어느 큰 오름같이 생겼다. 멀리서 보는데도 웅장함이 느껴지는 파크를 바라보며 꼭대기까지 꼭 올라가야지, 생각했다. 이름만 공원이지 사실 민둥산 같은 느낌이다.


오전 9시 즈음, 숙소에 도착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 사장님께 허락을 구한 후 옷을 갈아입고 바로 다시 나왔다. 이 날 나는 숙소 체크인 오후 5시 전까지 밖을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8시간 이상 야간 버스를 타고 오후 5시까지 어떻게 돌아다녔나 싶다. 여행이라 가능했나?


나의 본격 여행 첫째 날, 다음 목적지를 정해놓지도 않고 무작정 숙소 근처 다른 길로 걸어갔다. 마침 구름이 사라지고 햇빛이 슬금슬금 나오려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 발이 원하는 곳으로 나를 맡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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