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병과 불꽃도전, 작심삼일. 그 삼각관계에 대하여
‘제가 노트북을 새로 사면 사치인가요?’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존대말. 올 것이 왔다. 이건 필히 간곡한 부탁을 해야할 일이 있을 때 나오는 어투이다. 아마 곰 같은 남의 편이라도 평소와 확연히 다른, 군인보다 더 군인같은 안사람의 의도를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 메신저 속 숫자 1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몇 마디 덧붙인다. ‘사치겠지? 백만원댄데...’, ‘노트북이 사망했어.’
시작됐다. 장비병!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장비부터 풀세팅 하여 가정경제를 휘청이게 하는 그 불치병이 재발했다. 아니다! 불치병이니 재발이고 뭐고 할 게 없다. 이것은 본래 나와 하나인듯 내면 어딘가에 잠잠히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도전을 신호탄 삼아 ‘까꿍!’ 하며 존재감을 뽐낸다.
10분여 남짓 1이 사라지는지 두고보다가 남편의 회신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 연결음이 두어번 울린다. 흐르는 통화연결음 사이로 이미 결정한 통보의 말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가다듬는다. 변명을 하자면 공교롭게도 하필 글쓰기라는 거대한 과업에 새로 도전하는 이 시기에, 큰 역할을 해내야 하는 노트북이 수명을 다한 것이다. 이쯤 되면 나의 도전과 새 노트북은 운명의 실타래로 엮인 것이 분명하다.
사실 내 모든 창대한 시작과 그의 동반자 장비병을 설명하자면 노트북 장만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지칠 정도인데 한 때는 발레 꿈나무를 꿈꾸며 온갖 레오타드와 워머, 발레슈즈 등을 소재, 색깔별로 수집하듯 사 모았던 적이 있다. 온라인 발레샵을 이 잡듯 뒤지고 직구까지 했다. 나아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과 분당의 오프라인 매장에 들러 초보자에게는 아직 필요하지 않은 튀튀나 토슈즈도 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도 했다. 심지어 파이프로 발레 바를 만드려고 이리 저리 각을 재다가 결국 여의치않아 아일랜드 식탁을 바(barr) 삼아 스트레칭 하던 ‘갖은 지랄 다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 시기 나의 불타는 마음은 이미 국립발레단 발레리나였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발레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 버스를 30분 이상 탄 후 지하철로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배움을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다.’를 도전의 모토로 삼은 것은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한 두어달 지나면 의욕과 열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러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뜨겁다 못해 타들어 갈 지경인 불꽃 도전(이라 쓰고 작심삼일이라고 읽는다.)의 시초는 어디였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창대한 도전의 역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이름하야 ‘일본어 도전기’ (라고 쓰고 일본유학 병이라 부른다.). 물론 그 이전에 자잘한 몇 가지 도전이 있었겠지만 온 동네방네,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가 알 정도로 떠들썩했던 첫 도전은 열 다섯살이었다. 첫 단추는 일본 어학연수였다. 어학연수를 갔냐고? 그랬을 리가! 그랬다면 여기 이 글이 지금 없었을 것이다. 스크랩을 하려고 뒤적이던 신문 하단에서 조그마한 광고 박스를 발견한 게 욕망의 시발점이 되었다.
[일본유학, 일본 어학연수! 단기연수 가능] 조그마한 광고 박스가 거대하게 확대되어 헤드라인이 된 듯 착시효과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날 이후 일본 유학, 어학연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J형 인간이 보면 까무러칠 P형 인간의 계획은 이러했다. 유학을 가려면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니 일본어를 배우기로 한 것이다(이게 열다섯 내 계획의 전부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나 근교는 영어학원조차 없었는데 제2외국어인 일본어학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마침내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이동해 다른 도시의 학원으로 가기에 이른다. 으레 그러했듯 통과의례로 각종 일본어 교재와 다량의 필기구, 좋아하는 캐릭터 노트 등을 잔뜩 구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어학 공부의 꽃! 이동하며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도록 거금을 들여 워크맨까지 갖췄다. 나아가 엄마는 의욕 과다 딸래미의 단기 어학연수를 위해 부업까지 시작하셨다. 손발이 착착 들어맞듯 모든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작심삼일러였던 것이다. 학원까지 가는 한 시간 반의 기나긴 여정은 방과후 친구들과 함께 가는 만화방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민병철 선생님은 천계영 작가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캐릭터 노트는 친구들과 함께 쓰는 교환 일기장으로, 워크맨은 H.O.T와 신화 오빠들 노래를 듣는데 요긴하게 사용했다.
계획이 계획대로 이루어졌다면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발레로 다져진 탄탄하고 슬림한 체형과 유연성을 겸비하고 있을텐데. 일본 여행에서 입도 못 떼는 꼴은 면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억나는 몇 안되는 일본어를 짜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섣불리 일본어로 길을 물었다가 친절한 일본어 답변을 듣게 될까 겁난다는 사실이 더 문제다. 일본어로 물었으니 일본어로 되돌려주는 답변 앞에서 눈알만 굴리게 될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굴욕감이 느껴졌다. 말하기나 듣기나, 이놈도 저놈도 모두 맘에 안 든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도전들과 씁쓸한 패배감이 교차하는 동안 전화기 너머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충성, 충성!” 여전히 나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걸 보니 아직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내가 보낸 메시지 봤어?”
“아니, 아직. 저기 제가 잠시 후에 전화할게요.”
“오! 그럼 용건만 간단히 말할게. 내가 지금 노트북을 사는 건 사치일까?”
답이 없다. 속으로 ‘또 뭘 시작하려는 꿍꿍이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게 다 ‘복직하면 기록을 활발하게 할 예정이니 태블릿PC가 필요하다’, ‘요가를 하려면 효율을 높일 요가복과 매트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부단히 작심삼일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덕일 것이다. 그동안 이런 작태를 지켜보면서 곤란한 내색 없이 ‘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할지니...’라며 아픔을 성구를 응용한 유머로 승화하던 남편에게 새삼 경외감을 느끼던 찰나, 전화기 너머로 쿨한 답변이 돌아온다.
“사!”
이렇게 나의 새로운 도전은 남편의 통 큰 결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앗싸!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