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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고 Nov 10. 2023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

정신적 변비 극복기

  D-142

  한바탕 숨가쁜 등원 전쟁을 치른 후 문득 내 복직일까지 남은 날들이 궁금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초록창의 디데이 계산기를 열었다. 아침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이 전쟁의 끝은 이제 얼마나 남았나.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허무한 전투가 끝난 자리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함을 웃도는 고요와 그 속에서 창조성을 키우는 나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를 맛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3년 동안의 휴직은 무엇 하나에 도전하고 새로운 삶을 펼쳐보는 연습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나 나를 들여다 볼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아이 덕에 얻은 시간이라 나의 것이 될 수 없기도 했지만 남들보다 예민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는 아이의 몫으로 오롯이 도로 바칠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자람에 따라 안심하는 부분도 생겼고 일정 부분 내려놓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속이 쓰릴 때도 있었지만 그 후에야 비로소 나를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진짜 늦었을 때라고. 그 말이 다시 한번 찰떡같이 마음에 들러붙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내 삶에서 이토록 길게 쉬어가는 시간을 또 가질 수 있을까. 내 마음에 귀 기울일 수 기회가 다시 오기는 할까 서글퍼졌다. 150일도 채 남지 않은 복귀일을 확인한 후 머릿속이 새하얗게 멈춰버린 것 같았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의지와 상관없이 휘청이며 올라탔다. 어후. 우리 집이 몇 층이었더라.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142라는 숫자 앞에 손은 갈 길을 잃고 허공에 춤을 추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거지. 인생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이뤄놓은 것 하나 없이 꼼짝없이 끌려가야 하는 신세가 억울했다. 맥없이 시간만 보낼 수 없어 조급하게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이제 뭐부터 해야 하지? 복직하면 어떤 게 제일 하고 싶을까. 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가성비를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왔던 터라 나의 뚜렷한 취향조차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내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상태였다. 일단 지금 하고 있는 거나 잘 하자는 생각으로 책을 마구 사들였다. 여름부터 시작한 독서모임 마저 없었다면 정말 허무할 뻔했다. 그리고 남들은 유휴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 그 옛날 싸이월드 파도 타던 솜씨로 sns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윽고 알고리즘이라는 거대한 풍랑에 휩쓸려 마침내 당도한 섬은 이은경 선생님의 

<슬초브런치프로젝트>피드 였다.     


   아! 그 브런치스토리. 요즘은 재주 많은 선생님들이 교직생활 이야기나 단상들을 이 플랫폼에 자유롭게 풀어놓기도 한다지. 흥미 있게 읽은 글도 몇 편 있었고 특별히 공감되는 이야기를 연재하는 몇몇 교사 작가님들의 글을 구독하고 있어 낯설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브런치 작가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생각했다. 독서모임에서 2주 마다 정해진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 한 편도 꾸역꾸역, 모임 시작 5분 전까지 겨우 머리를 쥐어 짜내며 쓰던 나였다. 누군가 글쓰기를 ‘정신적 똥누기’라고 비유했다. 그 표현에 따르면 나는 지독한 정신적 변비에 걸려 있었기에 글쓰기는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선생님의 피드를 보고 관심도 두지 않고 지나쳤다. 시시껄렁한 영양가 없는 쇼츠들을 의미없이 쓱 훑다가 다시 선생님 계정으로 돌아왔다. 이상하다. 왜 마음이 쓰이지? 고등학교 작문시간에 자작시(詩) 한 편으로 웃음거리가 된 후 글쓰기와 절연한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몇 차례 외면하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 배에 함께 올라탔다. 강의를 듣고 줌모임을 하면서도 스스로 내 자신을 믿어줄 수 없었다. 열정에 불타올라 시작했던 일도 흐지부지 하던 프로작심러인데 이렇듯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잘 해낼 리가 없었다. 그저 연말에 독서모임에서 만들 문집에 대비해 글쓰기를 배우자는 마음으로 버티기만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스스로조차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것인가를 내기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완벽한 목자였던 것이다. 동기들을 만들어 언제 어느 때든 소통할 수 있는 119구조센터 같은 단톡방에 불량 어린양인 나를 묶어두시며 이탈을 막았다. 세상에! 그 안에 함께하는 동기들은 또 어떻고. 누구 하나 자신감을 잃어 가라앉을 것 같은 때에는 mbti가 ‘EEEE’일 것만 같은 반장님을 필두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난다는 짱가 동기들까지 합류해 “끌어올려~ 끌어올려~”를 외치며 둥둥 떠오르게 했다. 지독한 집단 같으니라고. 나같은 극내향인 프로작심러는 정신 없이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중도에 포기해 버린다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내주는 동기들의 마음에 큰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붙어 정신적 변비를 해소하는 과정이 지독히 고통스러웠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쓰레기든 뭐든 글로 몇 줄이라도 풀어놓은 날엔 마음이 후련했다. 몇 년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휩싸여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새로운 시선으로 글감을 찾고 일상을 남기는 일들로 우울할 틈이 없었다. 똑같은 매일이 반복된다고 느껴지던 지루한 하루가 날마다 새로웠다.     


   나는 정말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다시는 과거의 어둠 속을 헤매고 싶지 않다. 정신적 똥누기가 많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우울의 늪에 빠져있던 그 시간 만큼은 아니다. 나는 늘 포기하는 하찮은 존재라고 스스로 비난하며 느끼던 좌절감보다 절대 그 고통이 클 수 없다. 언제까지고 슬초브런치프로젝트 안에 딱 붙어 자리 보전할 것이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결과물을 보거나 지도해주는 사람의 말을 들으며 언저리에라도 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얻은 배움은, 그렇게 알게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남으니까. 여기서 핵심은 이런 분위기에서 있다보면 ‘내가 어떻게 해....’라던 마음이 ‘생각보다 할만한데!’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 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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