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기 6일: 작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숙소
제주살기 6일째 아침이 밝았다. 엄마가 온 후 3박4일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오늘 일정은 아침 먹고 엄마를 공항으로 모셔다 드린 후 생각해보기로 했다.
엄마가 제주 와서 성게 들어간 음식을 먹고 싶어했는데 마지막날 조식으로 성게미역국이 나왔다.
오늘이 두베하우스에서의 마지막날이다. 아침 먹고 체크아웃 후 엄마의 짐과 나의 3주살기 짐을 차에 실어 제주공항으로 출발했다.
엄마와 첫날 저녁식사하며 두 가지 약속을 받았다. 비싸다는 말, 이거 왜 하느냐는 말 금지였다. 부모님과 여행 간 자식들이 기분 상하는 포인트인 ’돈 많이 쓰고 좋은 소리 못 듣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비교적 잘 지켜준 덕분에 무사히(?) 3박4일을 마칠 수 있었다.
손님 보내고 나니 긴장이 풀려 금방 배고파졌다. 제주시 탑동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시켰다. 머핀을 씹으며 생각했다. 오늘 뭐하지? 날이 흐리다. 비소식도 있다. 교래자연휴양림에 가자.
휴양림으로 가던 중 표지판을 보니 제주 4.3 평화기념관이 근처였다. 갑자기 목적지를 바꿔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길 벚꽃길이 펼쳐지고 바람에 꽃비가 흩날렸다. 지나치기 아쉬운 풍경에 잠깐 내렸는데 세월호 제주기억관이 위치한 곳이었다. 4.3 평화기념관 근처에 세월호 제주기억관이 있었구나.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주차하고 내렸다. 튤립과 동백, 벚꽃이 섞여 핀 정원이 보였다.
기념관 뒤편 거친오름의 부드러운 곡선 밑으로 벚나무들이 꽃을 피웠다. 아름다운 제주의 봄 속에서 기억할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가 여기에 오게 되었나보다. 상설전시관에 입장했다.
상설전시관에 들어서면 커다란 백비가 누워 있다. 백비란,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제주 4.3은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왔고,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설명문에는 통일의 그날이 오면 제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으리라 적혔다.
4.3을 대충은 안다고 생각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와 4.3의 발단부터 끝까지 상세히 들여다보며 나의 오만이었다는걸 깨달았다. 3.1절 기념대회 후 군정경찰이 군중을 향해 쏜 총탄으로 6명이 희생된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기념관에는 관람객이 꽤 많았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부터 외국인,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도 보였다. 한 어린이는 전시를 보는 내내 고개를 갸웃하며 엄마에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 사람 피 그림이 있는데? 경찰이 사람을 죽였어? 왜 그랬지? 저 사람들이 잘못한거야? 왜지? 왜?
제주 4.3 사건이란 위와 같은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북청년단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4.3의 정의
해안선에서 5 km 이외의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총살한다는 초토화 작전으로 제주는 붉게 물들었다. 다랑쉬 웰니스 투어에서 지나갔던 대나무숲들이 떠올랐다. 대숲이 있던 자리가 모두 마을이었다. 산간 지역에 살다가, 거기에 아직 머무르고 있다는 이유로 희생된 도민들이 있던 자리였다. 4.3으로 희생된 도민이 2만5천에서 3만명으로 도민의 1/10이다. 희생자 33%가 노약자와 여성이었다.
전시의 끝부분에 진상규명 운동이 탄압 받던 시절의 설명이 있었다. 2000년이 되어서야 4.3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와 위로를 전하며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사죄가 이루어졌다.
역사의 궤적을 보니 사죄하고 기억되어 끝났다 여겨도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어 다시 왜곡되고 가려졌다.
그래서 끊임없이 재기억하고 기념해야 했다. 제주 오기 전 4.3을 다룬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제목의 의미를 고민했다. 전시를 보고 나니 제목이 달리 보인다. 여전히 우리는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
전시관을 나오자 4.3 희생자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실종선고 청구 신청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여전히 할일이 많고 진행중이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나오자 출출했다. 다음 숙소는 서귀포시 성산 쪽이다. 그쪽으로 가다가 베이커리 카페에 들러 빵을 먹기로 했다. 베이커리 카페 베카신에서 무화과 휘낭시에와 호두치즈케익, 카페오레를 시켰다. 카페오레는 주문할 때 많이 밍밍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마셔보니 집에서 커피 마시고 싶은데 제대로 된 커피가 없을 때 대충 타 후루룩 마시던 순한맛이었다. 빵이랑 같이 먹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지금 보니 제주에서 카페 가면 빵을 두 개씩 시키는 짓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베카신에서 책 읽고 일기 쓰며 시간을 보내다 다음 숙소에 체크인하러 갔다.
이동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제주에는 ‘고사리 장마’가 있다. 고사리를 쑥쑥 자라게하는 봄비인데 4월에서 5월이 시기라고 한다. 어쩐지 제주에 머무는 동안 비가 잦았다. 숙소 옮기는 날마다 비가 와 짐 옮기기 번거로웠다. 나에게는 귀찮은 그 비가 고사리를 키우는 반가운 비라니 어쩔 수 없지.
다음 숙소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위치한 수하리 839다.
2층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밖으로 벚나무와 푸릇한 나무들이 보였다. 비 뚫고 고생하며 온 피로를 날리는 풍경이었다. 수하리839는 사실 조식이 맛있다는 이야기에 예약한 숙소라 방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이 생각보다 널찍하고 깨끗했다. 사진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저녁마다 편히 쉬며 맥주 마시고 넷플릭스 봤다. 사진에 보이지 않는 한켠에 냉장고, 전자레인지, 커피포트와 접는 좌식 테이블도 있어 5박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숙소 창으로는 온평리 주민센터가 보여 안심이 되었다. 여자 혼자 살 거면 관공서 근처에 살으라는 말이 이해되네.
빗길 운전하고 짐 옮기느라 다시 배가 고파졌다. 빵 두 개 그거 소화되는 거요? 두 시간이면 충분해요~ 방 안에 근처 음식점이 정리된 리스트가 있다. 분식집이 지척에 있다고요? 그럼 바로 가줄게요.
여행하면서 맛있는 음식 잔뜩 먹다보면 꼭 라면이나 떡볶이가 당기곤 한다. 온평초등학교 앞 출출이라는 분식집에 갔는데 떡볶이가 내 스타일이라 파까지 씹어먹었다. 야채튀김도 바삭하고 당근 튀김이 이리 맛있는 줄 몰랐다. 튀김 다 먹었더니 떡볶이가 남아 어쩔 수 없이 김밥도 한 줄 시켰다. 기본김밥인 출출김밥인데 큼지막하게 들어간 당근이 별미였다. 확실히 제주 당근이 맛있네~
이른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비는 계속 내리는 중이었다. 바로 근처에 혼인지가 있어 우산 쓰고 걸어보기로 한다.
옛 관광지스러운 입구다.
혼인지는 오래된 관광지지만 아직 벚꽃이 피어있고 나무도 울창해 산책하기 좋았다. 여름에는 수국이 지천에 핀다고 한다. 입장료 없고 주차장 커서 부담 없이 돌아볼 수 있다.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어 며칠 후 날 좋은 때에 한 번 더 들렀다.
제주의 혼인 신화가 전해오는 연못이라 설치한 하트 조형물 찍어주고, 비 내리는 연못 바라보다가 오늘은 이만 숙소로 후퇴하기로 한다.
살짝 추워져 담요 덮고 라운지 음악 틀었다. 엄마 와서 머무는 동안은 괜찮았는데 혼자 남게 되니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제주 와서 아침에 일어나고 많이 걸은 후, 빵 먹고 술 챙겨 마시기를 반복했다. 건강에 +와 -요소가 있다면 +와 -를 반복하며 그날 하루의 결과값을 0 혹은 -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 요소(아침 기상, 산책, 전시 보기)도 - 요소(탄수화물과 알코올 섭취)도 오늘의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일단 오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