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기 5일: 마침내 유채꽃과 바다, 그리고 티마인드 체험
제주살기 5일차 아침이 밝았다.
<날씨 미리보기>
조식 먹으러 나왔는데 하늘이 파랗다?! 기념으로 숙소 사진 남겨보았다.
파니니와 딸기라떼 마시며 오늘을 기대하는 아침이었다.
전날 날이 흐려서 바다와 꽃을 한 컷에 담고 싶은 엄마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어제 저녁 숙소에 돌아와 공용공간인 삼춘책방에 머무르며 일기 쓰는 동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숙소 사장님께 여쭈어보았다.
“유채꽃이랑 바다를 같이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그러면 함덕에 가야죠”
함덕서우봉 오름에 올라가면 된단다. 함덕에 몇 번 들렀으면서도 바다에만 집중하느라 유채꽃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정답은 가까이 있었다. 제주의 실시간을 알려면 검색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지에서 물어 알아야 하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함덕에 왔다. 서우봉에 오르기 전 바다에서 사진과 영상을 거의 30분 정도 찍었다.
맑은 날이 귀한 줄 뼈저리게 느껴 둘 다 이 풍경이 사라질 새라 눈과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았다.
하트도 그리고 서로 신나게 찍어주었다. 이제 서우봉에 올라보자.
바다빛깔 좀 보세요. 서우봉에는 경사가 완만한 둘레길을 따라 무꽃과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다.
둘레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아름다운 모습에 정신이 팔렸다.
초입 작은 길목에서 오가는 사람들 피해 사진 찍느라 애 먹었는데, 올라가보니 유채꽃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진작 알았으면 곧바로 오르막으로 향했을 텐데,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깐.
이날뿐 아니라 성산일출봉, 천지연 폭포 등 사람이 몰리는 유명 관광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와글와글 정신 없는 장소와 시간을 조금만 벗어나면, 더 여유롭고 아름다운 곳이 나타났다. 잠깐 들러 사람에 치여 눈살 찌푸리다 떠날 수도 있지만, 오래 시간을 두고 걷다보면 보석 같은 순간을 만나게 되었다.
제주살기하며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행자가 되었기 때문에 알게된 사실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르막으로 향하자 넓게 펼쳐진 유채꽃밭 뒤로 푸른 바다와 하늘이 보였다. 엄마에게 이제 만족하느냐고 물었더니, 소원 풀었단다.
유채꽃+바다+인물=대성공!
유채꽃과 무꽃이 섞여 핀 함덕 바다 안녕~ 잊기 힘든 풍경이었어.
함덕서우봉에 와서 막상 만족하지 못할 경우 보롬왓에 가서 꽃을 좀더 보려고 했다.
윗분 의사를 물어보니 꽃은 이제 됐다고(!) 해서 엄마와 해보고 싶었던 올티스 티마인드 체험을 하러 가기로 했다. 소수 예약한 사람만 입장해 여유롭게 차밭을 감상하며 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러 종류 차를 마실 수 있는 체험이었다. 다행히 당일에 빈 자리가 있어서 예약 후 올티스로 향했다.
통창으로 싱그러운 차밭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섰다. 차 문화에서는 차를 끓여 내리는 사람을 팽주, 차를 대접받는 손님을 팽객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는 팽객이 되어 4가지 차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팽주를 돕는 보조를 테이블마다 한 명씩 뽑으라고 했는데, 우리와 함께 들었던 다른 한 팀도 모녀여서 자연스럽게 딸 두 명이 보조가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뽑아진 것 같죠?“하셔서 웃었네.
첫 번째 차는 세작 녹차였다. 여기 오기 전 당이 떨어져 초코빵을 먹었는데 녹차를 마시자 입 안의 단맛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차를 따르고 음미해 마시기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이후로 사진을 몇 장 찍지 못했지만 녹차, 홍차, 호지차, 말차 순으로 설명을 듣고 맛보았다.
홍차 순서가 되어 팽주가 뜨거운 물을 강하게 붓자 갈색 찻잎이 대류현상으로 왔다갔다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도 차 마시는 과정에 포함된다며 한번 조용히 감상하라고 하셨다.
고요한 가운데 차 따르는 소리가 들리고 찻잎은 유리 주전자 안에서 춤추듯 한들거린다. 꽃과 바다에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원래도 호지차가 입에 잘 맞는다 생각했는데 이날 갓 내린 호지차를 마시니 내 취향을 확신하게 되었다.
마지막 순서는 말차였다. 말차는 라떼와 우유를 섞지 않은 그대로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라떼를 선택했는데, 오리진 버전을 고르면 빗자루 모양 차선으로 격불(저어 거품 내기)을 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맛본 말차라떼와 말차 초콜릿, 말차 요거트 모두 내 취향이었다. 팽주 말로는 ‘속세의 맛’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안 좋아할 수 없다고. 난 자연을 꿈꾸지만 역시 속세를 벗어날 수 없나봐.
티 마인드 체험이 끝난 후 차밭을 돌아보고 가라고 하셔서 간단히 산책했다.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 차밭은 처음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삼다수숲길이었는데 주차장을 잘못 찾아서 주차한 곳으로부터 20분을 걸어야 숲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가 오늘은 놀 만큼 놀았으니 그냥 가자고 해서, 저녁 먹으러 동네인 세화로 돌아가기로 했다. 삼다수숲길 갈 때는 반드시 가까운 주차장을 찾아가세요.. 교래소공원이 있는 그 주차장은 아닙니다..
저녁으로는 다시버시에서 갈치조림 먹었다. 숙소 근처 갈치조림 맛집을 나름 검색해 왔는데, 손님이 우리뿐이고 일하시는 분도 한 분이어서 불안한 채 기다렸다. 그런데 반찬으로 나온 청포묵과 표고버섯 조림부터 심상치 않게 맛있더니, 갈치는 부들부들하게 입 안에서 녹고 양념이 특히 기가 막혀 밥에 싹싹 비벼 먹었다. 나중에 손님이 여럿 왔고, 재료 소진으로 돌아간 분들도 꽤 있었다. 아마 일요일이어서 일손과 재료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갈치조림 맛집 인정이었다.
어제처럼 오늘도 저녁 먹은 후 해맞이해안로 걸었다.
엄마에게 여행 소감을 물으니 제주 사는 딸 집에 놀러왔다 가는 기분이라며, 이번 제주 여행이 나랑 온 여행 중에 제일 좋았단다. 여행 중에 제일 좋은 것도 아니고, 제주 여행 중에 제일도 아니고, ‘나랑 왔던 여행 중’ 제일이라니, 찬사라기엔 살짝 애매하다. 가족 여행에서 이 정도 긍정적 코멘트 들은 것도 큰 성과려니 생각해야지.
웰니스 투어, 티마인드 체험 후 엄마의 만족도가 급상승하였으니 제주시에서 가족 여행하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엄마와의 마지막 날 밤이 저물었다. 내일 오후부터는 드디어(?) 얼마간 혼자일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