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le 'Masque' (2020) - 이수영
이수영은 애수 짙은 '오리엔탈 발라드'라는 장르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2000년대 초중반에 걸쳐 숱한 히트곡을 남겼던 한국가요사의 전설적인 발라더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결혼과 육아라는 인생 과업을 따르며 자연스레 대중과 유리된 삶을 살아간 탓에 우리는 한동안 그의 목소리를 추억의 형태로 소비하거나 이따금씩 발표되는 OST 및 이벤트성 활동으로만 접할 수 있었지만, 2020년은 조금 다르다. 올해 초 음악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 시즌3'를 기점으로 가요계 복귀를 선언한 그는 오리지널 싱글 '날 찾아'를 발표하는 것에 이어 과거의 히트작을 리메이크하여 망라한 이번 싱글 'Masque'를 선보임으로써 2020년을 '이수영 음악 인생 2막'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랜만에 복귀한 가수가 과거의 히트작을 리메이크하여 내놓는다는 것은 가수 본인에게 있어서는 가요계에 안정적으로 재안착하기 위한 안정적인 몸풀기요, 대중들에게는 구세대와 신세대를 아우르기 위한 새로고침의 기능을 수행한다. 문제는 이수영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개성적인 오리엔탈 창법이 자칫 과거의 유산을 신선함이 아닌 올드함으로만 머무르게 만들 수 있다는 위험요소인데, 본 작은 이수영에게 무리하게 체질을 바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편곡의 방향성인데, 작금의 뉴트로 트렌드에 맞추어 편곡된 곡들은 해당 원곡이 세상에 처음 나왔던 2000년대 초반의 감성을 아예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도록 유도한다. 여기에 이수영 특유의 보컬색이 얹히니 이것은 하이브리드라고 해야 할지, 리메이크인데 리메이크라고 불러야 할지 종잡기 어려운 신선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일견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이질감이 불쾌하기보다는 신기하고 좋은 의미에서의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점은 이번 싱글의 기획력이 매우 뛰어남을 증명한다.
이수영에게 있어 2003년은 최초로 SBS 가요대전 본상을 수상했던 커리어 하이를 달리는 시절이었지만, 나는 그 당시 발표된 5집 앨범 타이틀곡 덩그러니(2003)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멜로디나 가사의 문제라기보다는 덩그러니 특유의 힘이 과하게 들어간 편곡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이전에도 2집 앨범 타이틀곡 'Never Again(2001)'이나 3집 앨범 타이틀곡 '그리고 사랑해(2001)'와 같이 현악이 중심이 되는 곡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오리엔탈 사운드를 주조하기 위한 적정한 도구로서 현악이 활용되었다면 덩그러니는 관악기까지 합세함으로써 이미 힘을 잔뜩 준 오케스트레이션 위에 락킹한 느낌을 주는 밴드 세션을 덧입힘으로써 산만하고 무거운 인상을 주는 과유불급의 결과물이었다.
이번 싱글에 새롭게 편곡된 덩그러니의 경우, 현악기를 기본으로 하는 원곡의 기조는 코러스 중심으로 포인트를 남겨두되 절제와 균형미를 유지함으로써 원곡보다 훨씬 매력적인 곡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이 리메이크된 나머지 두 곡이 원곡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감칠맛을 부여하는 보완제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원곡의 위엄을 뛰어넘지는 않는 겸손함의 미덕으로 기능한다면, 덩그러니의 경우 원곡의 자리를 굳이 마련해놓지 않더라도 '자급자족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짐작건대 라라라(2002)의 편곡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수영의 대표곡 중 음악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데다 원곡의 단출한 전반부가 역설적으로 배가시키는 특유의 동양적 감수성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이 잘해야 본전일 가능성이 커 보였기 때문이다. 라라라의 편곡을 맡은 '623'은 펜더 로즈 계열의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곡의 포문을 열면서 아련함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곡을 운용하는데, 곡의 감정선은 원곡에 비해 가라앉은 인상을 주지만 곡 전반에 드러난 포근한 느낌이 이를 보완하며 나름대로의 매력을 선사한다. 이 정도면 선방이다.
에스닉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던 스치듯 안녕(2001)은 기존의 곡에 부여된 토속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걷어내고 90년대의 팝 음악 문법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방향으로 재탄생되었다. 왠지 R&B 창법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에 흘러나오는 이수영의 보컬이 처음에는 다소 이질적인 감상을 주지만, 상기하였듯 이러한 이질감이 불쾌함이 아닌 신선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곡을 곱씹으며 반복 청취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슬픈 내용의 가사와는 다소 대비되는 밝은 분위기의 편곡은 짤막한 싱글 모음집의 마무리를 담당하며 앞으로의 이수영 음악 인생 2막이 희망찰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치는 듯하다.
이번 싱글은 2000년대를 상징하는 이수영의 보컬과 90년대를 상징하는 레트로 스타일의 신선한 결합을 통해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나, 그가 2020년대에도 꾸준하게 음악을 해나갈 수 있을만한 결정적인 실마리는 아직 제공해주지 못했다. 물론 과거와 음악적 성향을 달리 한 9집 정규 앨범 'Dazzle(2009)'이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전력을 상기해 보면, 독보적인 이수영표 스타일을 버리고 무작정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닐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수영은 분명 역량이 뛰어난 가수이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와 치열한 고민을 통해 자신이 개척해 나가야 할 길을 일구리라 믿는다.
이수영은 이번 싱글 제목을 Masque로 지은 것에 대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과거 시절에 써야 했던 '가면'을 상징함과 동시에 이제는 가면을 벗고 솔직하게 노래함으로써 자신의 노래가 '마스크' 같은 존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상징하는 의미에서라고 밝혔다. 말로 풀어서 설명하기에는 다소 복잡할지 모르겠으나 '코로나 19'로 축약되는 현 시국에서 그녀의 바람은 더없이 직관적이고 시의적절하다. 전성기 시절에도 소화한 적 없는 파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그의 모습이 원숙함과 더불어 청춘의 빛깔처럼 선명하게 다가오니, 우리는 그가 지금까지 좋은 음악으로 우리의 추억을 아름답게 꾸며준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그의 새로운 음악 여정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