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로운 영역 확장이다. 2019년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에서 보여준 눈부신 활약으로 대중에게 '믿고 듣는 오마이걸', '콘셉트 장인 오마이걸'이라는 찬사를 받은 그들은 기존의 강점이었던 몽환적인 멜로디 라인 중심으로 디스코그래피를 굳히기보다 통통 튀는 리듬 라인 중심의 악곡을 택하는 것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타이틀 곡 '살짝 설렜어(Nonstop)'를 들었을 때 주요하게 인상에 남는 것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선율보다는 후렴구에 등장하는 '살짝 설렜어'나 '그럴 일 없지만'과 같은 포인트가 되는 서브 보컬인데, 처음에는 다소 싱겁게 느껴질 수 있으나 반복해서 듣다 보면 리듬과 보컬색의 다양한 운용만으로 제법 설득력 있는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어느덧 마음이 긍정적으로 동하게 된다. 최근 '다섯 번째 계절(SSFWL)'과 'BUNGEE(Fall in Love)'에 이르기까지 어여쁜 멜로디로만 쌓아 올린 그들의 행보에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던 찰나였기에 지금의 방향성 전환이 더욱 유효한 셈. 이번 곡이 국내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당당하게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대중들이 오마이걸의 변신을 반갑게 받아들였다는 확실한 증명이리라.
2. 연보라색이 담고 있는 시각적 함의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이 곡은 발군이다. 특정한 색상을 내세우지 않았던 이전 활동과는 달리 이번 곡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디자인은 확고하게 선연한 연보라색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가사적인 측면에서 썸으로 넘어가려는 남사친과의 관계를 냉정(파란색)과 열정(붉은색)이 상징하는 색상의 그 어디쯤인가에 묘사함으로써 곡의 서사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장치다. 곡이 발표된 시기적 측면에서도 봄(형형색색 꽃잎)과 여름(푸른 바다)의 경계선에 위치한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으며, 예쁘장하고 사랑스러운 기존의 오마이걸 콘셉트에서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느낌을 가미하는 과정에서도 연보라색은 양쪽의 느낌을 대변하며 자연스레 녹아든다. 예전부터 오마이걸 코디네이터가 그룹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이번에 그러한 감각이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느낌이다.
3. 균형과 조화가 돋보이는 멤버 간 보컬 파트 분배
이번 곡은 멤버별 보컬 파트 분배 면에 있어서도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리드 보컬인 승희와 효정이 후렴구와 고음 파트를 담당하며 곡의 지분을 상당 부분 가져가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 곡은 힙합의 색채가 강해짐에 따라 랩 파트의 운용이 절대적인 빛을 발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노래하는 미미를 만날 수 있다. 아울러 포인트를 담당하는 보컬의 비중 또한 늘어나면서 서브 보컬이었던 지호, 비니, 아린의 존재감도 더욱 늘어났으며 기존 곡에서 선이 다소 얇던 막내 아린의 보컬도 튀지 않고 개선된 모습을 보인다.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승희가 랩을 선보이는 구간인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곡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승희의 또 다른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앞으로도 이렇게 멤버들의 고른 합이 돋보이는 곡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4. NONSTOP 앨범의 수록곡들
나에게 감상 초기에는 귀에 바로 꽂히지 않는 타이틀곡의 의도적인 담백함이 수록곡 전체를 여러 번 관통하며 앨범의 미학을 헤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Dolphin'은 '살짝 설렜어'의 기조를 이어가는 통통 튀는 팝 사운드 어레인지가 인상적인 곡으로 '다 다 다다~'를 읊어대는 후렴구의 음색이 찰진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침 앨범 색깔도 연보라색인데 사랑의 대상으로 묘사된 돌고래가 일으키는 것도 물'보라'니 재미있는 발상이다. 잔잔한 느낌을 부여한 재즈 발라드곡 '꽃차 (Flower Tea)'가 한 차례 쉬어가며 앨범의 중간에서 균형감을 부여하는 한편, 뒤에서 이어지는 'NE♡N'의 대담함이나 'Krystal'의 생동감 넘치는 편곡은 앨범 전반을 쉬지 않고(nonstop) 활력으로 채워 넣는 역할을 담당한다. 모난 것 없는 매끄러운 구성이다.
5.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걸그룹, OH! MY GIRL
오마이걸은 숙련기에 접어든 데뷔 6년 차 걸그룹이다. 데뷔한 지 상당한 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 진행형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은 앞으로 오마이걸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신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속사가 그들에게 무리한 스케줄을 진행시킴에 따라 일부 멤버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일이 종종 있었던지라 공백기를 최소화한 잦은 노출이 그룹의 존속에 마냥 긍정적으로만 작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는 불안감도 든다. 공백기가 길어져도 좋으니, 나는 오마이걸이 통상적으로 걸그룹의 계약이 만료되는 '마의 7주년'을 넘어서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