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학교 영어교사인 안상현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 '내 인생의 음악 10곡+2'를 소개할까 합니다. (곡의 나열 순서는 곡 발매년도 순이 아니라 제가 해당 곡을 처음 접한 시기를 과거에서 현재 순으로 정렬하였습니다.)
나는 이 곡을 초등학교 시절 튼튼영어의 카세트테이프에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으로 처음 접했다. 80년대 디지털 음악의 정취를 담고 있는 정직한 선율은 어렸던 나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멜로디의 원곡을 찾을 방법이 없어 늘 안타까웠다. 한편 나는 Dave Grusin의 'Early A.M. Attitude'를 좋아해서 자주 듣곤 하는데, 얼마 전 설거지를 하면서 틀어놓았던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 연주곡으로 나를 우연히 인도시켜 준 것 아닌가! 설거지를 하면서 이렇게 벅차오르는 전율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유튜브 짱짱맨!
한 때 90년대 말 KBS에서 제작하던 게임피아라는 게임잡지가 TV에서 소개될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이 곡이 흘러나오곤 했다. 워낙 게임을 좋아해서 늘 설레는 기분으로 이 노래를 접했던 것도 있지만, Spice Girls의 'Wannabe'는 그야말로 나 같은 내성적인 남자아이도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건강미 넘치는 노래였다. 중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다물어지지 않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좋아하냐'며 핀잔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 노래를 정말 사랑했던 나는 결국 가사를 술술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연마(?)했고 군대에서 장기자랑으로 이 노래를 불러서 부대를 (조금 다른 의미로) 뒤집어 놓기도 했다.
병적으로 운동을 싫어했던 내가 중학교 시절에 유일하게 했던 운동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오락실의 펌프였다. 대부분의 곡에서는 스텝을 놓칠까 싶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발판을 쾅쾅 눌러대던 나였지만 '또 다른 진심'은 내가 스크린의 채보를 보지 않고서도 멋을 부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이었기에 그만큼 각별한 곡이었다. 한 때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단독주택을 사서 지하실에 펌프 기계를 들여놓고 매일 신나게 펌프를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슬프다.
나는 염세적이고 우울한 아이였지만 그래도 음악만큼은 밝고 서정적인 노래를 주로 들었다. 그런 나의 음악기호에 가장 잘 맞는 아티스트는 유영석과 김기형이 유닛을 이룬 그룹 화이트였고, 나는 그들이 이전에 활동했던 궤적을 좇으며 중고등학교 시절의 감수성을 달래곤 했다. 유영석은 화이트로 활동하면서 수려한 발라드 곡들을 여럿 내놓았지만, 나는 'W.H.I.T.E'나 '네모의 꿈'으로 대표되는 뮤지컬풍의 노래들을 훨씬 더 좋아했다. 거를 것 없이 화이트의 모든 노래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한 곡만 고르자면 질리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들었던 1집 앨범의 수록곡 '신혼일기'를 꼽고 싶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배우게 된 일본어와 친숙해지기 위해 J-Pop을 듣기 시작했다. 나의 일본어 실력은 결국 고등학교 시절에 습득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때의 선택은 10년 가까운 시절을 가요를 멀리하고 J-Pop에만 푹 빠져 지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90년대 일본 음악 시장을 평정했던 프로듀서 중 하나인 고바야시 다케시가 멤버로 있던 My Little Lover는 내가 최애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였고, 이 그룹의 마이너한 곡들까지 줄줄이 꿰찰 정도로 그들의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3집 앨범의 리드 곡인 'Stardust'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디지털적 요소와 밴드 세션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수작이다. 이 앨범 이후로 고바야시가 디지털 사운드 프로덕션에 과도하게 욕심을 내면서 멤버였던 기타리스트가 탈퇴하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그전에 중도를 유지했던 이 앨범에 배어 있는 실험정신은 꽤나 근사하다고 칭찬할 만하다.
J-Pop을 열심히 듣던 시기에도 나름 우리나라의 몇몇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의 끈은 놓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상은이었다. 이상은의 11집 앨범 '신비체험' 앨범을 시작으로 그의 과거 음악들을 하나하나 찾아 듣던 나는 5집 앨범의 수록곡 'Twisted but Straight'에 경도되었는데, 곡을 이끄는 러프한 기타 선율과 물질의 양면성을 나직이 노래하는 영어 가사가 당시 군입대를 코 앞에 남겨두고 있었던 내 청춘의 공허함을 담담하게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곡 덕택에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만큼, 피하고만 싶은 군입대라는 특수한 상황도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상은에게 'Twisted but Straight'보다 좋은 곡들은 많지만, 나는 청춘의 설익음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직시하게 도왔던 이 노래의 존재를 늘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Mr.Children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내 인생의 10곡'이 아니라 '내 Mr.Children 인생곡 10곡'을 간추리기에도 벅찰 정도로 Mr.Children이 나의 20대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너무 많은 후보곡들이 동시에 떠올라 한 곡만 선정하기에 애를 먹었지만, 결국 마음을 비우고 '그들의 신보가 나왔을 때 내가 가장 기뻤던 적은 언제인가'를 기준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그 결과 전역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당시 신보로 나왔던 15집 앨범 'SUPERMARKET FANTASY'의 히트 싱글 'HANABI'가 선택되었다. 휴가 때 집에서 이들의 신보를 리핑한 CD를 몰래 반입해 생활관에서 반복하여 듣곤 했던 말년 시절은 지루하기보다는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하루하루 설레고 행복했다. 당시의 내가 왜 그렇게까지 고조되어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을 가장 온전하게 누렸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전역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칼복학을 포기했던 나에게는 비교적 음악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멜론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정액제로 가입하여 J-Pop에 국한되어 있던 나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했었는데, 당시 이 노래가 팝송 Top 100 40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차트를 랜덤으로 돌려 듣다가 우연히 접한 노래였지만,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끝까지 집중하며 들으며 이 노래는 내 인생 노래라는 것을 직감했다. 차분한 브릿팝 분위기의 반주 위에 찌질남을 노래하는 빈티지한 보컬이 눈가를 아릿하게 자극하는 서정적인 무드를 조성하며 연애의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었으니까. 어떤 가수나 노래가 서서히 좋아지는 경우야 흔하지만, 예고 없이 나에게 별안간 찾아왔던 이 노래만큼은 정말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명하고 싶다.
나는 예전에 매주 목요일마다 발표되었던 네이버 뮤직의 '이 주의 국내 음악'을 정독하면서 내가 모르는 음악들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다. 당시 2010년 3월에 발표되었던 더 콰이엇의 4집 앨범이 소개된 적 있었는데, 이상은의 14집 앨범을 차석으로 밀어내고서 높은 평점으로 당선된 것이 신기하여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힙합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그의 음악은 트렌디함으로 무장한 하나의 신세계와도 같았고, 나는 그 무렵부터 힙합플레이야 사이트를 드나들며 급속하게 국내 힙합에 빠지게 되었다. 더 콰이엇의 팬이 된 나는 그가 소울컴퍼니를 떠나 일리네어 레코즈를 창립했을 때 1년 남짓한 팬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헌정을 담은 리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운 좋게 그가 리뷰를 읽고 자신에 대한 리뷰를 써 주어 감사하다는 트윗을 공개적으로 남겨주어 팬으로서 계를 타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교사가 되어 돈을 벌게 되자 나는 이전과는 달리 음악 감상 장비에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었다. 비싼 헤드폰과 스피커, DAC를 하나하나 장만하면서 물질적으로는 점차 풍족해졌지만, 어째서인지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받는 비중은 예전만 못해져 갔다. 예전에는 싸구려 컴퓨터 스피커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더라도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하나하나 구입해가며 찬찬히 새겨듣는 기쁨이 있었는데, 짐을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하는 관사 생활과 마음에 여유가 없이 쫓기며 살아야 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음악 감상의 방식을 가수에 대한 존중을 느끼기 어려운 스트리밍에만 의존해 버린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교사가 된 이후에 접한 노래들 중 나의 인생곡으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곡이 뚜렷하게 좁혀지지 않았지만, 나의 인생을 분기별로 골고루 조명하고 싶다는 의지 끝에 이 노래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이한철이 2015년 자신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며 사계절 연작을 내놓기 시작할 때, 나는 가을 앨범에 수록된 '집으로'라는 곡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층이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동경하며 시티팝에 열광하듯, 나 역시 유년 시절 추억의 이상적인 전형을 그려내는 이 곡의 서사에 기대 내가 가져보지 못한 '이상적인 유년'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지도 모르겠다. 듣다 보면 때로는 찔끔 눈물이 새어 나오기도 하는 이 노래, 오로지 이 한 곡 때문에 나는 이한철의 가을 앨범을 샀다. 한동안 CD 구매를 멈추었던 이후, 팬심에 의한 의무감이 아닌 오로지 노래가 좋아서 다시 CD를 구매했던 최초의 앨범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의 최애 게임 중 하나는 프린세스 메이커 2였다. 키보드의 F3키가 누렇게 변색될 정도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플레이했던 이 게임은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을 지나치게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그보다는 내 손으로 딸을 애지중지 키워내고 원하는 바를 성취했을 때 느낄 수 있었던 본연의 감동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 게임은 메인 테마곡의 선율이 존재하고 이를 계절 또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어레인지하고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여름의 경쾌한 편곡을 가장 좋아한다. 바닷가에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미디로 의성화한 듯한 투박한 하이햇 소리를 들으면 그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바다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 중독성이 강한 대중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 잔상이 남을까 두려워 오로지 클래식만 들으며 음악적 허기를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 중에서는 정석적인 느낌을 주는 바흐의 음악을 가장 좋아했고, 특히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는 나의 종교적 믿음과 같이 결합되어 기도를 할 때나 공부를 할 때 반복해서 들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연주자 불명의 잔잔한 피아노 버전을 주로 들었지만, 가끔씩 자극적인 것(?)을 듣고 싶은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요요마의 첼로 연주 버전을 들었다. 첼리스트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요요마와 같이 나 역시 내가 걸어갈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시절. 물질적으로는 빈곤했었지만, 아주 가끔은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이 그립다.
(*이 글은 국내 음악평론 사이트 이즘(IZM)의 독자 투고란에 보냈던 글에 개인 브런치 용도로 추가적인 번외 내용을 덧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