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앨범 '졸업' - 올티 (2015)
1부에서는 올티가 국내 음악 시장에서 점하는 특수한 위치에 대해 논하였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올티의 정규 1집 앨범인 '졸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학교에 바치는 미증유의 헌사 - 1부 링크: https://brunch.co.kr/@larrybrunch/6
학교는 우리가 성인이 되기 전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기르는 곳이다. 개인적인 감상이야 좋든 싫든, 초년기의 필수 인생 과업으로서 학교는 우리가 태어나고 성장해가는 주요한 배경으로 자리하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즉, 학교는 우리네 어린 시절의 자화상인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뿌리의 큰 갈래와도 같다.
그간 학교라는 공간은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에 의해 소재거리로 다뤄져 왔으나, 대부분의 경우 학교는 그들에게 있어 부정의 메타포였다. 공부만을 거듭 강조하는 획일화된 학교는 획일성을 거부하는 예술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충분한 자양분이 되지 못하였을 터이니, 이러한 현상을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올티에게 있어 학교는 여타 힙합 아티스트와는 사뭇 다른 존재였던 것 같다. 올티는 그간의 행적을 통해 모교인 안양고등학교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었으며, 2015년 2월에는 모교를 포함한 전국 세 곳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방문해 게릴라 콘서트를 선보이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잊히지 않을 졸업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어 2015년 4월에 열린 올티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 '졸업식'에서는 고등학생 시절 입고 다니던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등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관련 기사: 올티, 게릴라 라이브 통해 화끈한 ‘졸업 선물’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442557
관련 동영상:
올티 (Olltii) - 졸업 공연 비디오로그 #1 전남 장흥 관산고
올티 (Olltii) - 졸업 공연 비디오로그 #2 경기도 안양고
올티 (Olltii) - 졸업 공연 비디오로그 #3 경기도 안산 선부고
관련 사진: 올티 첫 번째 단독 콘서트 [졸업식]
관련 동영상: 올티 (Olltii) - 1st Concert '졸업식' Special Commentary
이런 올티를 볼 때마다 필자가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별종'. 올티에 대한 애정을 담은 약간의 짓궂은 표현이라고나 할까. 올티는 학교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만큼은 참말로 이전의 힙합 아티스트들의 부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별종의 기질이 있다. 그리고 이는 올티의 1집 정규 앨범에서 드러나는 음악적 태도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올티의 고유한 힙합 철학을 고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근거가 되어준다.
'졸업'이라는 앨범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1집 앨범 트랙리스트를 보면 앨범 콘셉트 자체가 학교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앞에서 잠깐 학교를 힙합 곡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하나의 앨범이 온전히 학교에 대한 헌사로서 하나의 서사를 그려낸 것은 올티가 거의 유일하다. 물론 모든 곡목 하나하나가 학교에 대한 긍정의 기운으로만 무장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본 앨범의 탄생은 학교에 대한 아티스트의 무한한 애정이 바탕이 되어있지 않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을 염두에 두고 큰 그림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럼 올티가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일지 귀 기울여 들어 볼 준비는 되셨는지?
머리 뜬 부분만
듬뿍 물 끼얹고서 꾹꾹
세수는 딱 3초 어푸푸
도중에 내려 전속력으로
달려왔는데 뒷문이 또 그새 닫혀
아침에 생각처럼 지각생 당첨
제때 일어나겠다며
매일마다 백만 번 다짐해봐도
바뀐 적 없는 굴레
매일 내 발등에 불 내
웹툰 '연민의 굴레'에서 차용하여 만든 제목 '굴레'는 지각생 올티의 숨 가쁜 등굣길로 시작하여 밤늦게 하루를 마무리한 탓에 또다시 지각을 반복하고야 마는 일상의 딜레마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다. 먹고 싶은 것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기에 늘 부족한 시간을 쪼개가며 잠을 보충해야 하는 대한민국 10대들. 의미 없는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듯한 일상의 굴레 속에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10대들. 올티는 이러한 10대의 고단함에 시선을 맞추며 긍정의 위로를 건넨다. 분명 내일은 생산적이고 희망찬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고.
집에 돌아와 난 TV를 껐고
나의 작은 방안에 조명을 켰어
어제 쓰다만 내 가사는 지웠고
새로 품은 마음으로 이 가사를 썼어
당연하기만 한 내 하루를 접고
내일의 기대감으로 이불을 폈어
눈을 감은 다음 오늘을 덮고
일어나 보니깐 난 내일에 눈떴어
학교 종소리와 함께 뉴잭스윙 스타일의 경쾌한 리듬이 펼쳐진다.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에 한껏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려는 듯, 첫걸음을 떼라며 힘 있게 외치는 올티와 기린의 구호가 호기롭게 펼쳐진다. 가만, 듣고 보니 이 첫걸음이 단순히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집 밖을 나서는 매일의 발걸음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듯하다.
걱정하지 마
모두가 가는 길의 방향이 다른 거야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겠지만 너는 꼭 이룰 거야
주저할수록 주저앉게 될 거야
나를 믿어 너의 첫걸음을 떼
중요한 건 속도 대신 방향성
걷기 싫은 길로 뛰어 1등을 따라잡아서
대체 뭐가 나와, 탄탄대로?
난 다른 길 위야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그러고 보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오독의 여지가 많다. 지나치게 신중한 누군가에게는 과감한 시작조차 불허하게 만들고, 지나치게 충동적인 이에게는 일단 저질러 놓고 뒷수습을 회피하는 안일주의로 읽히기도 한다. 올티와 기린은 이에 대해 망설이지 말고 첫걸음을 뗄 것을 권한다. 장기전인 인생에서 중요한 건 돌이키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무지막지한 속도가 아니라,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 오더라도 다시금 바른 길을 찾아 나설 수 있게끔 인도해주는 방향성이니까.
뮤직비디오 링크: https://youtu.be/g7lSU_DeyzU
3번 트랙은 한때 올티의 믹스테이프에 수록되었던 고2 생활을 담은 '21036'의 연작, '31035'이다. 21036에서 기존의 '학생다움'으로 규정되어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던 올티도 고3이라는 신분의 위태로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는지 31035으로 학번을 바꾼 뒤에는 '수업 시간엔 오히려 몸 사리고' 사는 발랄한 시그내쳐로 포문을 연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곡은 이내 자신이 애써 고수해 온 '나다움'에 대한 찬양으로 전환하며 긍정의 기운을 한껏 발산한다. 그리고 후렴에 이르러 올티의 '나다움'은 대한민국 청소년의 '나다움'을 발견하기를 권장하는 앤썸으로 확장된다.
주관 없는 정답보단 주관 있는 오답지를 제출하고
우는 1등보단 웃는 꼴찌를 해
원하는 걸 해 제일 중요한 건 너의 마음
하고픈 걸 해 잔소리 걱정은 그다음
학생다움에 널 맞추기 보다는
내세워야 해 당당히 나다움을
학번 안에 꽉 채워야지 나의 꿈
사실 이 희망의 찬가는 청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차가운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결국 대리만족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 곡을 들으면서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10대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오히려 이 곡에 대해 아쉬운 부분은 프로듀싱에 있다. 과도한 레퍼런스 차용 논란으로 인해 앨범에서는 뮤직비디오와 다르게 편곡된 버전이 수록되었는데, 이것저것 튜닝을 거친 결과 가뿐했던 원곡의 느낌에 비해 피로감이 제법 더해진 듯해 아쉽다.
녹음 현장 스케치 링크: https://youtu.be/lt5x8_mkdOY
본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올티의 아이돌적인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다. 피처링으로는 (2015년 기준으로) 고등학생인 15&의 멤버 백예린이 이성 친구 상대역으로 참여함으로써 학창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연애의 감정을 보다 진정성 있게 그려내었다.
전화기를 꼭 쥐고 계속 기다리는 톡
마침내 온 네 문자에 관심 없는 척
답장해도 내 답은 객관식 아닌 주관식
막 찍지 않아 고민하며 한 문장씩
내가 고집부려도 매일 져주는 너
말은 친구라 하는데 알게 모르게 설레
나름 눈치를 줘도 웃기만 하는 너
나만 이런 건지 네 마음도 같은 건지
확실하게 말해줘 내게
비트의 운용 면에서는 미니멀한 느낌을 줌으로써 꾸밈없는 사랑의 기운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상업성 면에서는 약간 채도가 옅은 느낌을 주기도 하나 곡의 콘셉트 구현에 집중함에 있어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상업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편곡에 욕심을 부렸더라면 곡이 보다 널리 알려질 수는 있었겠지만, 앨범의 밸런스 면에서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돌출되는 지점이 되었을 것이다.
4번 트랙 '설레'와 6번 트랙 'OLL'SKOOL' 간의 상반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메우는 스킷 트랙이다. 재미있는 점은 올티와 대화하는 2명의 친구는 '졸업 (이젠 안녕)'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하는 올티의 학창시절 실제 친구들이라는 것. 스킷에 뮤지션을 기용하는 대신 실제 친구들을 초대함으로써 올티의 지나간 학창시절을 진실성 있게 충실히 재현해 내었다.
뮤직비디오 링크: https://youtu.be/1A2M4Gm2p28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면서 앨범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OLL'SKOOL에서의 학교는 스토리적인 측면이 아닌 워드 플레이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데, 쇼미더머니3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선보였던 올티의 펀치라인 능력이 이 곡에서 빛을 발한다. 여타 스웨거 뮤직과 마찬가지로 Wack MC들에 대한 일갈을 주제의식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펀치라인의 태반을 학교와 관련된 용어로 통일함으로써 올티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본 곡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달력 부분에 있어서는 고의적으로 발음을 뭉개는 '학교종이 땡땡땡 울리네' 부분을 제외하고도 약간씩 비트에 묻히는 부분들이 아쉽지만, 펀치라인에 대한 올티의 뛰어난 안목이 사소한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기에 충분하다.
선배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임용고시도 안 봤으면서 선생질은 왜 해요
한때 이 부분이 '랩선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힙합 아티스트 산이(SAN E)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여담이지만 교사인 필자로서는 진짜 고시생들에게 고시도 아니라며 까이는 교사 임용시험을 고시라고 칭해주니 왠지 고맙게 느껴진다.)
멍청이완 달리 항상 똑똑하니
내 문단속에는 빈 틈 없지
뭐 하나 알려줄게 지금이 유일한 받아 쓸 기회
정상을 바라기 전에
네 걸레 같은 실력으로 좀 바닥 쓸기 해
난 여중 여고 출신 애들보다 남고생 보는 게 좋지
처음에 이 부분을 접했을 때는 올티의 성적 취향에 대한 장난기 섞인 의구심(?)을 가졌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남자답지 못하게 행동하는 MC들에 대한 태도를 '여중 여고 출신 애들'로 비유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뒷받침될 도덕이 없으니
너네 랩 가사엔 하나도 없지 일리
역시 한 때 이 부분이 일리어네어(Illionaire) 멤버들에 대한 저격이 아니냐고 논란이 있었지만, 올티는 '자신은 일리어네어의 팬'이라며 해명했다.
연세를 고려해도 서울에 넣기엔
너무 Old 해서 어림없는 네 스펙
랩 선생을 얼마나 했건 여기선 교감하지 못해
그 상태로 더 올라가려고 하면 꼬장 밖에 더 돼
실제로는 꼬장보다는 '꾜장'에 가깝게 들린다. 어떻게든 펀치라인을 만들고야 마는 올티의 감각에 리스펙.
제이지(JAY-Z)의 '99 Problems'에 대한 오마쥬로 만들어진 96년생들의 반란, '96 Problems'다. 올드 스쿨의 청취가 가장 짙게 느껴지는 곡으로 곳곳에 배치된 DJ KENDRICKX의 스크래치가 펑키한 무드를 한껏 조성한다. 올티도 이 곡만큼은 반항아의 정서로 분하여 학교를 통해 얻을 수 없었던 것, 혹은 학교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지 못했던 일면을 토해낸다.
니가 우릴 벌세우려 해도 안 드는 손
We got 96 problems you can't teach us none
내 믿음에 대한 기대치와 달리
다들 날 의심했지만
수능도 포기하고 공연하러 갔던
내 꿈을 절대 수포로 돌아가겐 안 둬
단지 무대 위가 내 세상이라 난 다짐하지
딴지 걸 거라면 그냥 비켜서 넌
올티의 벌스에 이어 신인 아티스트 차메인과 돈 말릭이 내뱉는, 날 것의 랩핑이 더해진 본 곡은 신선한 충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아직도 다양한 욕구와 꿈을 지닌 학생들을 모두 고르게 품에 안기엔 공교육이 걸어가야 할 길은 요원한 것일까. 필자 또한 교사로서 많은 성찰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앨범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올티는 현실적이고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 왕따와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폭력에 있어 대다수가 해당되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왕따를 대하는 본 가사는 2분 남짓의 짧은 플레이 타임 동안 청자의 마음에 작지만 어딘가 불편한 여운을 남긴다.
녀석에 대한 애처로움도 잠깐
내 일 아니니까 상관없지 조용히 방관해
괴롭히는 나쁜 애는 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감쌀만한 좋은 성격도 아냐 난
본디 마음이 나쁘지 않더라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마음은 역시 나쁘며, 속으로만 한탄한다고 해서 나 자신이 의로워질 하등의 이유는 없다. 비록 이 곡은 한탄의 시선에서 머무는 것으로 그치지만, 어떠한 모범적인 해답을 작위적으로 내놓기 보다는 우리네의 비겁한 심리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두 번째 스킷인 'D-100'에서는 수능을 백일 앞둔 고3 수험생들과 재수생들의 막막한 심정이 차례차례 쏟아져 나온다. 주변 친구들과의 비교, 잇따른 수능 실패에 따른 비통함, 부모에게 잘난 자식이고 싶은 책임감, 그리고 꿈에 대한 불확신... 사연 모집의 형태로 만들어진 본 스킷은 더없이 현실적인 만큼 먹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시에 타인의 참여에 대해 개방적인 올티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Fallin''은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가사의 밀도나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피처링 아티스트와의 합을 고려했을 때 가장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곡이다. 미대를 지망하는 고등학생의 시점에서 풀어나가는 서사는 제목 그대로 괴로운 나날을 반복하다 우울의 나락으로 치닫는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예술을 하기 위해 정해진 길을 가야만 하는 아이러니. 내가 처음 예술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때는 결코 이렇지 않았었는데.
온종일 학원에서 그림만 수정하지
자기 최면 해 지금의 내 노력이 성공의 밑그림
수능 뒤에 웃기 위해 당장 그리게 된 찡그림
이윽고 코러스 부분에서 등장하는 크루셜 스타(Crucial Star)가 지원사격.
내 어릴 적의 낙서가 내 앞의 데생보다 깊어
감정이 없이 그려온 내 미래는 표정이 없어
I'm falling down again (×3)
다시 물음만이 반복돼
Falling down again
I'm falling down again (×2)
Mama I just wanna run away
미술학도 집안으로 잘 알려진 크루셜 스타는 서사 전달에 있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며, 랩과 보컬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우수에 젖은 그만의 무드로 버무려내는 특기가 이 곡에서 빛을 발한다.
꿈꿀 시간도 없이
문제집 참고서 한 가득인 책가방
무겁지만 참고서 그냥 담담히 맬까 봐
것보다 주변의 부담 섞인 기대감이
날 짓누르는 어떤 것들보다도 무겁게 하니까
수시에 미리 합격해서 고민 없이 노는 내 친구
부러운 일이지만 애써 숨기며 축하할 때의 기분
넌 뭘 하고 싶냐며 웃는 친구의 물음에
난 괜히 더 얼버무렸어
어차피 부모님 말대로 순응해야 되니
목표를 가져도 나는 몰라
what's right and wrong
그 누구도 진심으로 한 번도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 I'm alone
Mama I'm alone, Mama I'm alone
내게 물어봐 줘 나의 꿈이 뭐냐고
한 순간의 실수로도 내가 찍은 점이 마침표가 돼
내 의지와는 달리 대학에 떨어지게 될 때 느끼는 중력
자기 스스로 떨어지는 걸 택해
뛰어놀아, 뛰어내리지 말고
누구보다 수고한 널 위해
곡은 후반부에 도달하면서 크루셜 스타의 애절한 가성이 오버랩되며 결국 새드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치열한 교육열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수험생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아마도 인생에 있어 가장 먼저 맞이하는 큰 시련일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작위적인 모범답안을 찾아 장기간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하는 일. 그렇게 갈고닦은 실력을 단 하루의 결전에 판가름 내는 일. 이 모든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 고3 수험생들에게 승패와 상관없이 정말 장하다고 격려해 주고 싶다.
뮤직비디오 링크: https://youtu.be/sMgJvLYTWdM
'졸업 (이젠 안녕)'은 학교에 대한 올티의 애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트랙이자, 10대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대한 긍정의 비망록이다. 올티는 입학 때부터 졸업의 순간까지 찬찬히 돌이켜보며,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던 과거의 일상이 더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거란 사실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중학생 땐 고등학생이 되면
지루하기만 한 일상이 변할까 싶었지만
종소리 땡 치길 기다려 대며
시간만 죽이는 거는 마찬가지네 역시나
느리게 흐르던 시간은 어느덧
첫걸음을 떼고 나서부터 달리게 됐지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오늘도
내일의 짧은 노래로 지난날이 되겠지
텅 비어 있는 교실의 어색한 적막
조용하게 난 자리에서 일어나
아쉬움을 뒤로 두고서 떠나지만
나는 여전히 기억 나
제목에서 석별의 곡으로 유명한 015B의 '이젠 안녕'이 떠오른다면, 맞다. 이 곡의 후렴구는 '이젠 안녕'의 후렴구를 인용하고 있으며, 사실상 원곡을 랩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곡인 셈이다. 학생들의 합창으로 편곡된 후렴구를 좇고 있노라면 작별에 대한 느낌은 세대를 관통하는 불변의 감정임을 깨닫게 된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학창 시절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그래도 졸업식 때만큼은 누구나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까 싶다. 내 인생의 초년기를 마무리하는 순간 돌아본 나의 과거는, 마치 몇 조각 남겨 두고 미처 완성시키지 못한 퍼즐 그림처럼 곳곳에 아쉬운 시선이 머문다. 하지만 괜찮다. 그 '퍼즐'을 완성시킬 수 없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니까. 오히려 곳곳에 남겨둔 미완의 기억이 언제든지 과거의 추억으로 돌이켜 미소 짓게 만드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어줄 테니까.
뉴잭스윙 스타일이었던 2번 트랙의 첫걸음을 또 다른 팝스타일의 비트로 편곡한 버전이다. 비트가 바뀜에 따라 피처링진도 R&B 보컬 및 랩핑을 두루 겸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Evo로 바뀌었다. 상징적인 면에서는 2번 트랙에서는 학생의 신분을 대변하는 종소리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면, 12번 트랙에서는 11번 트랙에서 졸업식을 거쳐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더는 일상에서 종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는 것. (그렇다고 피처링 부분을 제외한 올티의 가사까지 성인의 입장으로 바뀐 건 아니다.) 원곡과는 또 다른 동등한 매력을 지닌 곡이기에 비교해서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망설이지 마 첫걸음야
고민할수록 더 뒤쳐질 뿐야
서툴지만 한 발짝씩 내딛는 중야
서두르지 마 너의 첫걸음을 떼
CD를 소장하고 있는 팬들을 위한 히든 보너스 트랙으로, 각 트랙을 녹음하면서 모아진 NG 녹음을 재치 있게 병렬적으로 배치한 트랙이다. 갓 20대 청년이 된 올티의 훈훈한 재롱잔치(?)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피처링진의 NG 녹음도 담겨있다.) 올티의 팬이라면 정규 트랙만큼이나 놓칠 수 없는 완소 트랙.
지금까지 올티의 1집 정규앨범 '졸업'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본 앨범은 국내 힙합 신에 있어 대한민국 학교에 대한 온전한 애정을 담아낸 미증유의 헌사로서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확보한 아티스트 올티의 정규앨범에 걸맞은 특별한 앨범이다. 물론 올티가 아티스트의 행보를 밟아나감에 따라 이 앨범의 콘셉트는 번복이 불가능한, 필연적으로 과거의 유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일회성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딱 그 세대 나이에 맞는 곡과 앨범을 냈다는 말로만 치부하기에는 학교를 바라보는 올티의 시선은 더없이 깊고 성숙하다. 내년 졸업 시즌부터는 올티의 노래가 졸업 시즌송의 단골손님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그로부터 본 앨범이 세월에 바래지 않는 무한한 생명력을 지니기를 한껏 기대해 본다.
올티는 본 앨범을 발표하고 단독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친 이후, ADV 크루의 멤버로서 SRS 2015 공연을 착실히 이끌었으며 꾸준한 피처링을 통해 본인의 커리어를 하나 하나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조만간 새로운 작업물을 발표한다고 하니, 학교를 벗어난 색다른 올티의 모습을 기대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