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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Dec 12. 2015

또다시 안녕, 프란체스카

프란체스카 시즌 1, 2 OST (2005)

1. 서론

MBC에서 방영되었던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2005)'(이하 프란체스카)를 기억하는가? 루마니아에서 온 흡혈귀 가족이라는 기상천외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본 작품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시추에이션 코미디 분야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은 기본이요, 등장인물들의 실제 삶과 극 중 설정이 묘하게 빚어내는 기믹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프란체스카는 시트콤과 현실의 경계를 재치 있게 허물어 낸다. 프로덕션에 있어서는 당시 한국에서 정립되어 있지 않던 '시즌(season)' 제도를 표면화함으로써 향후 제작되는 TV 프로그램에게 모범적 선례를 남겼으며,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 속 소외된 이들이 느끼는 희로애락을 주요 소재로 삼는 온정 어린 자세를 취한다. 종합하자면 프란체스카는 여로모로 대한민국 시트콤계에 남긴 공로가 혁혁하다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리뷰를 통해 프란체스카라는 작품이 제시하는 주제의식을 돌이켜보고, 시트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보조장치로서의 OST를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고백한다. 필자는 시즌 2까지 본 시트콤의 진심 어린 팬이었으나, 시즌 3은 1화를 차마 다 보지도 못한 채 감상을 포기했다. 시즌 3은 외형적인 콘셉트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음의 내용은 시즌 1, 2에 국한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물론 형식적인 면에 있어 시즌제의 바통을 무난히 넘겨받은 시즌 3의 형식미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2.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기믹 캐스팅

주로 정극에서만 활동하던 심혜진과 이두일이 시트콤에 투입된 것은 이들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유쾌한 일탈로 기억될 것이다.

프란체스카의 가장 큰 특징은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묾으로써 재치를 유발하는 데 있다. 먼저 프란체스카 역할을 맡은 심혜진의 경우, 주로 정극에서만 활동하던 그가 4차원 개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사실이 시청자에게 있어 그 자체만으로 유쾌함을 선사하는 감상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듯, 심혜진의 연기는 실로 능청스럽다.) 더불어 이두일을 비롯한 섭외자들의 본명을 그대로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쓴다거나, 섭외자들이 가진 실제 성격을 극 안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은 단순히 귀차니즘 또는 시크함을 표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마치 '흡혈귀는 우리 일상 속 어디에나 있다'는 극 중 메시지를 배우들의 실제 삶으로 보여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 2에 투입된 故 마왕 신해철은 현실에서 이미 부여되어 있던 마왕이라는 이미지를 극 중에 그대로 가져다 쓴 경우로서, 앙드레 교주 역할에 신해철 외의 누군가를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앙드레 교주로 분한 故 마왕 신해철은 그에게 기존에 부여된 마왕이라는 캐릭터를 프란체스카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구현해 낸, 어찌보면 가장 있는 그대로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곧 '연기의 능숙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프란체스카에는 심혜진과 이두일을 비롯한 전문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故 신해철과 같이 본업이 연기와는 무관한 등장인물 또한 다수 등장한다. 비 연기 전문가에게 있어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일까? 프란체스카 제작진은 이에 대해 '이들의 평소 자연스러운 모습이 곧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단순 명쾌한 입장을 취한다. 즉, 바꿔 말하면 일부 등장인물들의 설정 자체는 이미 '연기를 못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웃음 유발 포인트는 그들 나름대로 너무 자연스럽기에 오히려 부조화를 일으키는 아이러니에서 발생한다. 프란체스카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와 '러브 하우스' 건축사 김원철은 이 분야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극중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장광효와 김원철. 프란체스카는 연기와 무관한 이들에게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권장하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들이 연기(?)하는 등장인물들은 원래 연기를 못 하는 것이 주어진 역할이기에, 결국 이들의 연기는 하는 족족 베스트 플레이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을 비 연기 전문가들이 느낄 부담감에 대한 제작진의 관대한 배려라고 봐야 할까. 관련 영상과 기사문을 직접 확인해 보자.


동영상 링크: 추억 돋는 프란체스카 장광효 김원철 명연기 모음

https://www.facebook.com/byengmat/videos/841781552532365/

기사 링크: 최문순 MBC 사장 "이거 웬 황당한 시추에이션~"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5052416341647600&type=1&outlink=1


카메라가 앵글을 이탈하여 스태프진을 비추고, 편집진과 작가진을 차례차례 보여주다 급기야 최문순 前 MBC 사장까지 카메오로 소환시키는 대담한 설정은 프란체스카라는 작품이 지향했던 바를 잘 보여준다. 프란체스카는 극 중 등장인물을 둘러싼 테두리를 허물고 현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가감 없이 극 중 등장인물로 기용하고, 이들의 연기에 대한 아마추어리즘을 당위적인 것으로 승화시킨다. 필자는 이에 대해 故 신정구 작가가 풍자와 블랙코미디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커트 보네거트의 대표작 '제 5 도살장(Slaughterhouse-Five)'을 보면 작가는 본인이 경험한 세계 2차 대전을 토대로 한 픽션을 쓰되, 작중에 작가 스스로를 등장인물로 개입시킴으로써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참신한 시도를 선보인다. 故 신정구 작가 또한 프란체스카를 통해 커트 보네거트와 같은 시도를 하고 싶었던 걸까.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6kjfx-6QQNE

프란체스카 시즌 1, 2의 작가인 故 신정구 작가의 카메오 출연. 작가의 극중 직접적인 개입은 마치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 5 도살장'을 떠올리게 한다.


3. 사회적 소수자의 내면 감춰진 불꽃

 프란체스카 일행과 이두일은 한국사회 속 약자 혹은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루마니아에서 건너 온 프란체스카 일행과 이두일은 한국사회 속 약자 혹은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흡혈귀라는 정체성이 이들을 소외받도록 만드는 1차적인 요인이라면, 각 캐릭터에 부여된 속성은 부차적인 요인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유형을 보다 세분화하여 보여준다. 프란체스카의 경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모습이나 화투나 경마 따위에 집착하는 도박중독자의 일면을 지니고 있으며, 이두일은 가정에서 소외된 채 돈 벌어오는 기계로서만 기능하는 우리네 아버지의 슬픈 자화상을 표상한다. 켠(이켠 분)의 경우 '떨어지는 지능'을 명분으로 한 동성애 성향이 엿보이는 캐릭터로, 오히려 그의 지능은 동성애 코드를 순화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밖에도 프란체스카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캐릭터 간 편차가 있을 뿐, 성격이나 상황적 측면에서 저마다 크고 작은 결함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체스카는 그러한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꿋꿋하게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에 긍정의 시선을 보낸다는 점이다. 물론 에피소드를 꾸려가는 과정에서 캐릭터 간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러한 결함을 가진 캐릭터들이 서투르게 하나하나 갈등을 봉합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이들의 모습이 우리네의 엉망진창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프란체스카는 이러한 소수자들이 지닌 보편성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다수의 횡포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에게 반목하는 상대를 향해 새빨간 도끼를 휘두르곤 하는데, 이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놓인 소수자의 아이콘으로서 프란체스카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전공인 고문 기술을 살려 상대방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비둘기를 잡아 닭고기로 속여 자신을 우롱하는 대중들에게 비둘기 고기를 파는 통쾌한 복수를 선보인다. 프란체스카는 이렇듯 약자들이 갖고 있는 억눌린 감정을 대리 해방시켜주는 원더우먼과도 같다. 프란체스카가 정서적인 면에서 낯설고 기괴하면서도 우리의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란체스카가 무표정한 얼굴로 휘두르는 새빨간 도끼는 약자의 억눌린 입장을 해방시키려는 함의가 담겨있다.


4. 낯설지만 설득력 있는 마이너 컴필레이션

프란체스카 OST는 고딕적 분위기를 풍기는 인디음악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본 앨범은 라이센스 가능성이 희박한 희귀 음원들이 즐비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음원 링크: https://youtu.be/x2stvzzo478

프란체스카 메인 테마곡 'Study In A Minor'.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_sicNCpYqKU

프란체스카와 이두일이 헤어진 뒤 재회하는 장면에서 삽입된 'Traveling Boy'.  (동영상 기준 1분 21초부터 삽입)

음원 링크: https://youtu.be/F-T0PPkM99s

엘리자베스와 장광효의 테마곡 'Fragile Days'. 본 곡은 캐스커 정규 2집 앨범 'SkyLab (2005)'에도 수록되어 있다.

프란체스카 OST는 시즌 2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에 발매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낯선 소재를 차용한 시트콤인 만큼 OST 또한 제 3세계의 기운을 머금은 트랙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중세 고딕 양식 특유의 어두운 향취가 느껴지는 메인 테마곡 'Study In A Minor'를 포함하여 'La Foule / Mugurinn', 'Grosse Femme'은 프란체스카의 전체 플레이 타임을 통틀어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배경음악이다. 더불어 생소한  음악뿐만 아니라 기존에 익히 알려진 팝송 또한 자리하는데, 프란체스카와 두일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삽입된 'Traveling Boy'를 비롯한 'What A Wonderful World', 'Moon River'가 해당된다. 다만 오리지널 곡이 쓰이지는 않고 시트콤 분위기에 맞추어 톤 다운된 담백한 커버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 원곡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운 선택이지만, 카페와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감상하기에는 더욱 적합한 편곡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베스(정려원 분)가 장광효의 부띠끄에서 일할 때 흘러나오는 캐스커의 'Fragile Days'를 추천한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흐릿한 날씨 아래 희미한 눈발이 흩날리는 늦가을의 도심지를 거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5. 결론

2014년, 故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출연했었던 프란체스카가 잠깐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본 시트콤을 제작한 故 신정구 작가도 지병으로 2011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프란체스카와 관련한 대표 인물이 2명이나 유명을 달리한 셈이다. 불멸의 생을 지닌 흡혈귀라는 소재를 토대로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프란체스카도 현실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먼저 떠나간 이들을 추억하기 위해, 남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웰메이드 시트콤 프란체스카를 오랫동안 기억해 주는 일이 아닐까. 프란체스카에 등장하는 흡혈귀들이 누리는 불멸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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