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인 염색

by 이사원

2013년, 나는 옴브레 헤어를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끝 쪽을 탈색해서 샛노란색인 긴 생머리였다. 비교적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내가 그 머리를 시도해볼 수 있던 이유는 내가 그때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어 데이비스라는 미국 시골에 1년 동안 살았는데, 무엇인가 홀려 한인이 운영하는 허름한 동네 미용실에서 당시 최신 유행인 옴브레 헤어를 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 머리는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머리카락이 상해가는지는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매일같이 수업을 듣고, 주말이면 근교를 여행하고는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곤 귀국했는데, 머리가 너무 지저분하기도 하고 취업용 증명사진 준비 겸 바로 미용실에 갔다. 가자마자, 헤어디자이너 언니가 빗질을 하며 내 눈 바로 앞으로 뱀의 혓바닥처럼 두 갈래로 길이 난 노란색 머리카락을 들이밀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놔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꼴도 보기 싫어진 나는, 결국 탈색한 부분을 전부 커트해버리기로 하고 속으로 결심했다. 이제 다시는 염색은 하지 말아야지. 그 어떤 미용도 건강하게 윤기 나는 자연 모발보다 아름다울 순 없어.


그러고 나서 어언 7년이 지나버린 것이다. 나는 정말 염색을 하지 않았다. 핸드폰 갤러리에 남아있는 미국 시절 사진을 보면서 탈색한 머리가 얼굴에 안 어울린다고 느끼며(그때 내가 인생 최고 몸무게를 달성했고, 미국 서부의 뜨거운 태양 아래 여느 때보다 가장 어두웠던 피부색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전에 내 손상된 모발을 보고 결심했던 다짐을 나 스스로 지키고자 나름 노력해왔다.


하지만 올해. 나는 다시 염색을 감행해버렸다. 사실은 2년 전부터 여름이 되면 부분 하이라이트 탈색인 발레아쥬 헤어스타일이 하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예쁜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며 ‘나 이 머리 하면 어떨 거 같아?’라고 질문을 하면 어떤 친구들은 머리칼도 상하고, 정기적으로 뿌리 염색해줄 자신 없으면 하지 말라며 설득하기도 했고 또 다른 친구들은 어차피 자신의 머리가 아니니 가볍게 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름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그 끝은 안 하는 걸로 귀결됐었다.

올여름에도 여느 해처럼 친한 친구들에게 또 그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한 질문을 했고, 그중 한 친구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대답을 했다.


‘어차피 너 하라고 해도 안 할 거잖아.’


어딘가 정곡을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친구가 쏘아 올린 작은 발언에, 내 머릿속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대체 왜 나는 남들에게 별 거 아닌 염색을 몇 년째 고민하며 하지 않는 걸까. 이렇게 별거 아닌 걸로 고민하는 나 자신이 싫어지기까지 하려고 하지만, 나에게 염색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꺼려지는, 마치 금기 같은 행위였다.


30년 동안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나의 모친은 변화에 폐쇄적이며 보수적이셨다. 또한, 유교적 가치관을 갖고 계셔서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실천하고 전파하시는 분이니, 당연히 염색을 포함한 나의 그 어떠한 외모적 변화에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었다. 애초에 처음 탈색한 모습을 보여 줬을 때도 놀라셨고, 이후에도 늘 ‘넌 확실히 까만 머리가 예뻐’라고 말씀하시는데, ‘내 인생이잖아’라고 외치고 싶어도 인간관계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참아 가기도 하면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 성향 자체도 분쟁을 싫어하고 인정 욕구가 있는 편이라 더욱이 내게는 염색이 ‘별 거’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금기를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며 깨뜨려보고 싶어 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당연했던 일상이 당연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뭐든지 할 수 있을 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색도 언젠가는 내가 예상치 못한 이유로 할 수 없는 시대가 올 수 도 있을 거라는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하며 나는 당장 그 길로 미용실에 가서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만족했다. 우습게도 엄마의 부정적인 반응도 괜한 우려였을 뿐 사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본인만의 금기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회사 입사 동기이자 친한 친구인 k양에겐 우유가 그러한 ‘별 거’라고 한다. 쉽게 탈이 나는 장을 가진 그녀에게 우유는 하루 종일 외부활동을 하지 않는 전제가 있을 때에만 마실 수 있는 도전적인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가끔은 무릅쓰고 그 금기를 깨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금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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