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도 오지 않는 나날들

by 이사원

‘아, 오늘은 정말 일기도 쓰고 싶지 않아.’

라고 퇴근 후 집 오는 지하철 안에서 느꼈다.


회사에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자존심 구겨가며 일했고, 지인들에게 구걸해서 얻어낸 소개팅들은 죄다 첫 번째 만남에 그치고 말았으며, 무엇보다 어제는 새벽 3시에나 겨우 잠들었다. 보통 어지간히 살짝 스트레스받을 때에는 짧은 일기를 쓰며 해소하지만, 오늘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엄습해온다.


진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뭘 잘했고, 못 했고 자아 반성을 떠나서 평온한 일상이 나는 좋은데, 어딘가 불균형의 소리가 들리고, 해결 방법을 모르겠는 상황들이 벌어지니 짜증이 난다. 20대의 마지막 연말인데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 흔한 카페도 갈 수 없다. 회사 역시 코로나 때문인지 핑계인지 실적이 저조하여 오히려 일감이 떨어지고 위 사람들의 지시는 중구난방이다.


불면증은 나와 정말 거리가 먼 단어 같았는데, 최근 한 달 내내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원래의 나는 머리를 기댈 곳만 있으면 바로 잠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기차, 버스, 비행기 등 탈 것에서도 유난히 잘 자는 나였는데, 요즘은 그 어떤 보람찬 활동이나 노동으로 인한 노곤함이 없기 때문에 밤에 눈이 말똥말똥하다. 이것은 어릴 적 소풍 가기 전 날 기대감에 부풀어 잠들지 못하는 눈과는 아예 다른 눈이다. 하루 낮 동안의 시간을 허무하게 사용해버리니까 졸렵지 않은 것이다. 일과를 마치고 씻고 침대에 누우면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켜고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번갈아 가며 하염없이 본다. 별로 영양가는 없다. 잠시나마 아무 생각도 안 할 수 있으니까 그저 본다.


최근 내가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인들에게 고통을 털어놓았더니 신기하게도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내게 동조했다. 특히나 외향적인 성향의 싱글인 동년배 친구들이. 비단 이것이 단순 나만의 힘듦이 아니고 대다수가 겪는 시대적 흐름이라 할지라도 그다지 그것은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남도 힘들다는 게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가 될 순 없으니까.


행복하고 즐기기만 해도 모자를 젊은 날에, 나는 고통받고 있다. 어느 누군가가 내 인생을 보고는 딱히 굴곡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불평하는 소리라고 비난할 수 도 있겠지만 당장 아래로 곤두박질친 감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 행복의 척도는 본인의 마음가짐이겠지. 알면서도, 마음을 돌릴 수는 없다.

왜 내 맘대로 잘 굴러가는 게 그 어느 하나 없을까? 이렇게 삐그덕 삐그덕 대는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정말 내 팔자와는 맞지 않는 회사생활 혹은 연애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일까. 뭐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게 없으며 일상은 무료하고 재미가 없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그럴싸한 희망도 없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사실은 참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하루를 살아가는 동기가 되는 걸 텐데, 지금 나에겐 그 동기가 없다. 내가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이렇게 힘든데도 줏대 없이 그냥 살아만 가는 건 느린 자살과 뭐가 다른 거야 정말?


가진 거에 감사하라느니, 나 자신을 사랑하라느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느니 그런 소리들도 다 소용없는 밤이다. 아무도 이런 비관적이고 투정 섞인 글 안 읽고 싶겠지만 알게 뭐람. 오늘도 잠은 안 오겠고, 밤은 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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