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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름 Dec 07. 2020

15. 아빠의 규칙

  새로 바꾼 아빠 차에 방향제와 차량용 휴대폰 번호표가 없다고 해서 오늘 사 왔다. 새 차도 아니고 중고차일뿐이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소중한 차이다.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항상 내 돈을 먼저 쓰게 만드는 존재이다. 나는 그들에게 더한 걸 받았겠지만 나 역시 그들보다는 조금 적지만 그들을 향해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관계이다.     


  아빠에게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자신만의 고집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나에겐 새롭기만 했다. 아빠가 돌아온 우리 집 현관은 신발이 차곡차곡 정리되어있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요리를 하며 설거지를 동시에 하는 편이다. 그건 그가 고칠 수 없는 그의 성정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지지난 생일에 술에 취해 말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싶은데 책값이 참 비싸더라고. 안 그래도 생일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잘됐다고 흔쾌히 책값을 결제해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시큰했다. 우리 아빠는 내가 회사에 다니며 처음 용돈을 현금으로 주었을 때, 가장 필요했던 차량용 핸드폰 거치대를 구매했다. 난 그게 슬펐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걸 내가 용돈을 주기 전까지 얼마나 가지고 싶어서 마음에 품고 있었을까. 그래서 바로 망설이지 않고 구매하게 되었을까. 마음이 시큰거렸다. 책값이 비싸다던 아빠 말에 시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저 말을 나에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망설였을까. 본인의 무능력과 자존심을 저울질하며 술기운을 빌려 나에게 얘기하는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래서 나는 아빠의 규칙을 소중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은 아니지만 나날이 작아져가는 우리 집 아빠의 위상에, 그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잘못만 해온 그였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그들의 힘으로 얻은 첫 번째 집을 날려버리고 반지하집으로 입성하였으며, 그곳에서 현재 3층 빌라에 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간에 겪은 가난과 굴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한동안은 그가 미웠다. 우리를 힘들게 한 장본인은 너무도 태평하게 사는 듯 보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가 한없이 불쌍하고 안타깝다. 여기저기 일을 찾아 나서느라 요즘은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 한 달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그가 집에 들렀을 때,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며 아빠의 규칙을 떠올린다. 정갈하게 정리되어있는 우리 집 현관 신발들. 그가 아직 버리지 못한 자그마한 소신들은 그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에 그가 이 세상에 없어지고 난 뒤라도 나는 현관 신발과 싱크대를 바라보며 그를 떠올리게 되겠지. 나의 제일 친한 술친구는 누가 뭐래도 그였다. 그래서 한껏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 그를 보면서도, 누구보다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 그의 흔적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다. 행복해하는 미소만 기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더 잘해야겠지. 오늘도 반성하며 글 몇 자를 적는다. 혹시나 보고 있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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