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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름 Dec 23. 2020

19. 후기를 남기고 싶었으나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의 후기를 남기고 싶었다. 어떤 것이든 좋다. 책 한 권이어도 좋고, 영화 한 편이어도 좋고, 그 어떤 것도 상관없으니 후기를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글은 왜 그렇게도 철학적이고 깊은 생각을 담고 있는지 짧은 단상에서 멈추고 마는 나는 이내 노트북을 접어버리고 만다. 아직은 무언가 후기를 남기는 데 자신이 없다. 후기를 남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면 책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여기서 내가 뭘 느끼고 있지? 뭐라고 써야 할까? 하며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냥 때려치우자, 책이나 읽자. 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쿠크다스 영혼이라 후기를 남긴다는 것이 어렵다. 생각해보니 그 어떤 책 한 권도, 영화 한 편도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모여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내가 감히 그것을 평가해도 될까? 그냥 좋다는 말을 쓸 순 없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웠다고 쓰게 될 텐데, 내가 그 정도의 깜냥이 될까? 매 순간 고민하게 된다. 물론 후기를 쓸 수 있는 자격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누구의 생각이든 생각은 자유니까. 그렇지만 글이 가진 힘이란 무시할 수 없기에. 내가 남긴 한 문장에 상처 받을 누군가가 있을까 두려워지고 만다. 그래서 예전에 올렸던 블로그 후기 글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찔린다. 


  내 생각과 주장에 당당해지길, 그리고 그 당당함에 건전한 근거가 뒷받침되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말을 뱉어보지만 늘 불충분한 것 같다.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일이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세상에 넘치는 주장들에 길을 잃고 늘 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가끔은 그 모습이 비겁하다고 생각된다.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여기서 굳어 돌이 되어버릴까 봐 두렵다. 그래도 성급한 후기는 남기지 않으려 한다. 조금은 더 자신이 생기면, 조금은 더 세상을 둘러보고 그래도 늦지 않을 거다.      


  후기 없는 인생이라면 또 어떠냐. 누군가가 내 글과 나에 대한 후기를 남겨줄 수도 있을 거고, 후기 따윈 없다 해도 그 결과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진 않으니까. 짧지만 참 좋았다고 다 읽은 책 리스트에 체크 표시를 해둔 것만으로도 나에겐 의미가 크다. 이렇게 짧은 인생 다시 보고 싶은 책도 있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도 있다는 것이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니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은 것처럼 속이 든든해지니까. 조금은 두려울 게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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