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름 Dec 16. 2020

18. 글쓰기의 압박

 휴직하고 두 달 동안은 놀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도 약해지고 머리 쓸 일도 없고, 이렇게 사람이 순식간에 달팽이가 된 느낌이 들 줄은 몰랐다. 요즘 다시 슬슬 바빠졌기에, 전만큼 글 원고도 남겨놓을 수가 없어서 급하게 노트북을 켜게 된다. 글쓰기의 압박도 처음 느껴보았다. 그전에는 남는 시간만큼 여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써야 해, 나에게도 구독자가 있어! 하는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독서모임도 들고, 목공도 배우고 그 밖의 새로운 것들을 배우느라 일정이 빡빡해졌다. 휴직을 하며 다른 길을 찾아보기 위해 그리고 좋아하던 것, 해보고 싶던 것을 본격적으로 해보는 시기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전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만 그래도 글쓰기의 압박이라니, 책에서만 보던 것이었다.      


 어떤 작가가 그랬다. 작가는 다른 게 아니라  그날 글 한 줄이라도 쓴 사람이라면 작가라고. 그래서 글 몇 장을 쓰고 나면 뿌듯하고 그랬다. 나도 작가다.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으면 작가의 고충이 나온다. 창작의 고통과 마감과 싸워야 하는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나는 돈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나와 나의 약속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원래 글을 쓰고 싶었다. 머릿속으로만. 글을 머릿속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라서 참 오~래도 머릿속으로만 글을 썼다. 이미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었다. 로또가 당첨되면 어떡하나 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상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에서 “일단 써! 일단 써야 해!”라고 말해도 그게 참 생각처럼 되지가 않더라.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여유만만하게 글을 쓸 때는 나에게도 글쓰기의 압박이라는 게 올까 싶었다. 나도 마감에 쫓기듯 글을 쓰거나 도무지 글감이 생각 안나 머리를 벽에 박고 싶어 지는 때가 올까? 생각보다 빨리 왔다. 휴직 후 일상은 가끔의 이벤트 말고는 고만고만하다. 직장을 다니는 것만큼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그 무규칙 속 규칙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휴직을 찬양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휴직만 하면 만사 해결될 것이라고, 나조차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회사를 더 다니는 것과 다니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남들보다 더 필요했고, 그 고민과 더불어 회사가 주는 스트레스가 나를 병들게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래서 휴직을 택했고, 그에 대한 나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역시 힘든 일도 있는데, 나에겐 우울증이 가장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기에 우울증 치료기록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울증 기록을 되새기다 보면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고,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더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노트 속과 한글파일에 남아있는 쓰다만 소설 줄거리 들은 언제쯤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괴롭다. 작가들은 대단하다. 언젠가 그 끄트머리에 닿을 수 있을까 하며 오늘도 한 글자라도 더 남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17. 오전 시간의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