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하고 마냥 늦잠을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늦잠도 인생의 큰 행복이니까, 이런들 어떠할까 저런들 어떠할까. 그런데 장거리 출근을 하던 탓에 거의 1주는 아침 6시 반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서 뭘 해야 하나 고민했다. 보통 같으면 씻고 밥 먹고 출근 준비하고 지하철에서 졸다보면 9시가 됐는데 이 시간 동안 뭘 해야 하나 막막했다. 처음엔 그저 쉬고 하고 싶은 걸 하자고 생각하며 휴식만이 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게임기를 켰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즐기다 보면 2~3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는데
그렇게 게임을 하고 나서도 아침 9시라니!
지금 다른 사람들은 출근해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벌써 한 가지 취미를 해치워버린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 일의 피곤함과 하루의 고단함에(끼여오는 지옥철이 한몫해주고) 게임은커녕 잠들기 일쑤였다. 가끔 운 좋으면 필라테스에 다녀오는 일이 다였다. 게임도 머리 한편에 자리를 내주고 집중력을 내어주어야 하는 일이라서 회사를 다니며 게임을 즐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게임이라니! 이런 호사와 사치가 있다니! 휴직하고 처음 느낀 행복이었다.
그러다 점점 늦게 일어나게 되었지만 게임사랑은 한동안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아침에 노트북을 켜고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글도 쓰고 싶어져 글도 쓰게 되었다. 이렇게 써놓은 글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브런치를 접하고 작가 신청을 했더랬다. 이 모든 게 다른 이들이 출근하기 전인 오전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후로도 아침에 늦잠을 자도 7~8시에는 일어난다. 오전 시간의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아침 루틴은 이렇다. 일어나서 우울증 아침 약을 먹고, 잠시 쉬다가 하루 일정을 써 내려간다. 다이어리를 쓰는 게 그다음 먼저 할 일이고 전날을 떠올리며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도 정리해본다. 그러고 나면 밥을 먹던지 책을 읽던지 글을 쓴다(사실 한 달 이상을 아침에 게임만 한 것 같다. 그것도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커피 한잔을 내리는 편이다. 아직 덜 깬 잠을 물리치고 커피 향으로 방이 가득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면 책을 읽을 때 머리에 더 잘 들어오고 만화책도 더 재밌고 글도 잘 써진다.
오전 시간의 행복을 이렇게 알았다.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았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고요함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평소의 출근 전 시간은 휴직 후 가장 큰 행복이다. 오전 시간의 행복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 바빠지기 때문이다. 오전 9시 반까지 출근 아닌 출근을 해야 하는 일정이 생겨서 이제 다시 아침의 여유를 즐기기 힘들어졌다. 휴직기간이 끝날 때까지 오전 시간을 잃게 될지 모르지만, 보람차게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있으니 다른 여유시간을 가져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길 빈다. 그동안 글을 쓰고 책을 읽어온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바빠질 것 같다.
오래간만에 바쁨이라 또 설렌다. 바빠도 안 바빠도 설렌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만화 주제가 같지만 신기하게도 그렇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대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무언가 하는 거니까. 살아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