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잦아들었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우산을 다시 써본다. 흔들리던 우산이 바로 세워지고 발을 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우산으로도 막지 못했던 비바람이 지나가니 위로가 위로로 들리기 시작했다. 동물적 감각은 위험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몸은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긴장을 하고 살 궁리를 한다. 순간의 실수로 손을 베어도, 열 감기에 걸리거나 돌연 암 선고를 받는 순간이 와도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결국 침착하게 상황을 가늠하고 대처해 간다. 상황이 크고 심각할수록 더욱 그렇다. 환경이 특수하다면, 특히 가족이 있으면 더 빠르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라는 원망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안을 찾는다. 힘든 변곡점을 지나면서 ‘다행이다’라는 스스로 만든 처방전이 유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더 힘들 수도 더 어려운 일이 닥칠 수도 있었는데 ‘다행일 수 있다’라는 생각은 마음 안의 분노와 서러움 혹은 억울함과 슬픈 감정을 밀어내며 상념들을 걷어낼 것이다.
마치, 위기의 순간마다 지혜의 버튼을 켜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향해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 ‘온몸으로 맞설까? 아니면 몸의 방향을 바꿔볼까?’ 망설여질 때가 있다. 그러다 몸의 방향을 바꾸니 걷는 것이 한결 편해졌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등지고 서 있을 뿐인데 눈앞에 꽃들은 만발하고 어둑해진 공기사이로 여전히 햇살은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귓속에 대고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보이스피싱은 실체가 없기에 원망할 대상이 없다. 3일간 전화로 조종하던 범죄자는 사기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안개처럼 사라진다. 내 명의의 통장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말을 믿은 것도, 300여 명이나 되는 피해자가 생겼다는 말에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현금을 찾아 고스란히 가져다주는 행동의 책임도 모두 내 몫이었다.
대상이 사라지면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가장 쉽고 보편적인 방법이 된다. 나 역시 그랬다. 현실은 고통이었다. 사람마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지고 있는 성향과 살아온 방식에 따라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 회피하고 도망가는 사람, 또 다른 일로 고통을 밀어내는 사람 등등 천차만별이다. 고통의 원인이 사람이면 회피하고 마주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의도치 않게 정리될 수도 있다. 가능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 해결한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정면으로 맞닥뜨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타격이 너무 크다. 회복하기에는 너무 어이없는 일이었다.
경찰서를 두 번 다녀왔다. 경찰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경찰서를 나와 무작정 짐을 쌌다. 남해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남해의 바다는 다른 곳과 달리 아기자기한 섬들이 많아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섬과 섬 사이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고 노랫말로 익숙한 동백섬에 들어가기로 했다. 섬에 오르자 바닥엔 동백꽃들이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핏빛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초록 잎 사이에 붉게 핀 모습보다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있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섬을 오르다 ‘바람이 머무는 바위’라는 이정표를 따라 내려갔다.
가파른 바위를 내려가니 발아래 바닷물이 닿을 듯하다. ‘바람이 머무는 바위’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람이 거셌다. 아름다운 동백섬 위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곳은 바람이 모여있었다. 눈을 뜰 수조차 없는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몸으로 바위틈 사이에 섰다. 팔을 가슴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이면서 눈을 꼬옥 감았다. 지난 기억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지인들의 모금이 이루어졌다. 어느 날은 통장에 아는 이름으로 200만 원이 찍혀있었다. 그렇게 말도 없이 입금을 하거나 갑자기 그림을 주문하며 그림값으로 돈을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만들었던 아트상품들이 주인을 찾아갔고 아무렇게 않게 굶지 말라고 보내온 기프티콘들이 빠르게 스쳤다. 혼자 살아온 것 같아도 위기의 순간마다 그렇게 요정들이 있었다.
해가 어둑해졌다. 섬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발아래 바닷물이 칠흑 같다. 그리고 먼 하늘에 달이 보인다. 언제 봐도 아름답고 이국적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달을 품고 바람의 섬 ‘동백섬’을 나왔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남해의 전망대 위에서 지나온 섬들을 바라보았다. 섬에서 멀어지니 그 안에서 느껴졌던 바람은 사라졌다.
‘몸이 흔들릴 만큼 거센 바람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저 멀리 고요한 바다 위의 섬과 섬 사이를 건너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내 모습 위로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별은 빛나고 많은 섬을 건너 나에게 닿는 날은 좀 더 나은 생명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도했다.
집으로 돌아와 문화예술기획도 화가로서의 활동도 모두 중단했다. 그렇게 3년을 접기로 했다. 아이셋을 키우면서도 밤을 새우며 했던 것이 그림이었지만 계속한다는 것은 뻔뻔한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것, 좋아하는 것을 빼앗는 것은 의외로 치유력이 있었다.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림에서 벗어난 일은 해보지 못했었는데 의외로 일을 잘했다. 지나고 보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