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한 달 후부터 진물이 온몸을 덮었던 큰아이는 전형적인 아토피안이었다. 물론 그당시는 그것이 어떤 병인지 몰랐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도 아토피였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춘천 사암리로 갔었다. 남편과 나는 용감하게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아이들과 시골생활을 시작했었다. 1~2년정도만 비를 피한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나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시골 생활이 좋아져 버렸다. 들로 산으로 아이들과 다니는 생활이 좋았고 자연을 느끼며 세상을 새로 배운다고 생각했었다. 소비가 줄어드는 시골생활은 적은 수입으로도 생활이 가능했었다. 문제는 도시에 아파트를 사느냐 시골에 집을 짓는냐였는데 시골에 집을 짓는다는 것이 엄두가 안났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 춘천에서 살게 될지 몰랐었다. 그래서 서울은 아니지만 자연이 좋고 서울과 가까운 남양주에 아파트를 분양을 받았었다. 그 후로 춘천에서 막내딸이 태어나고 그만 두었던 그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잘컸고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춘천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왜 이리 장황하게 쓰냐면 내가 우리집에서 남편에게나 아이들에게 불리는 말이 있다. 일명 ‘호구’ 큰아이는 핸드폰등 물건을 사러 갈 때도 무엇을 결정할 때도 자기랑 같이 가야한다고 한다. “엄마, 무슨계약을 할 때는 꼭 나와 같이 가요” 이렇게 아이에게 엄마는 ‘잘 속는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계기가 남양주 집때문이었다. 아이들과 살기 위한 집이어서 큰 집을 마련했었다. 아이가 셋이니 맘껏 뛰어놀으라고 2층 필로티구조의 집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가족이 들어가서 살기는 좋으나 팔기 어려운 집을 마련한 셈이었다. 우리가 들어갈 수 없으니 세를 주었는데 세입자마다 월세를 밀렸다. 월세를 밀려도 말을 안하니 간을 본 세입자들에게 끌려다니기 쉬운 모양새였던 것이다. 월세는 밀려도 질이 나쁜 사람은 없었는데 나를 아주 질리게 한 사람이 있었다. 이것저것 고친다고 해서 돈을 보내줬는데 결국 고치지 않은 건 물론이고 월세를 밀리면서도 집안에 있는 사우나를 고쳐달라고 했었다. 작동은 되는데 문이 잘 안 닫친다면 고쳐달라는데 어디에다 말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니 문이 변형이 된 것이었고 업체를 찾는 것도 관리사무실에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대충 닫고 쓰면 될 것을 나를 힘들게 하더니 월세도 밀려 보증금을 다 제하고도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가 마지막 한 말은 더 가관이었다
“다음부터 3개월만 밀려도 내보내세요”
자기가 보기에도 내가 안타까웠다나 뭐라나?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그들이 이사 나가는 날 고급차 두대가 부동산앞에서 멈췄다. 부부가 각자의 차에서 내렸다. 보증금을 다 없애고도 당당히 나에게 이사비용을 요구했던 그들은 재주도 좋게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해갔었다. 결국은 저축은행에서 피해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지만 이 과정에서도 ‘뭐 이런 사람들이 다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에 집을 짓자는 남편과 의견이 달리한 일인데다가 자세한 내막을 알면 또 기가막혀할 것같아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가려다 겁이 나서 큰아이를 데리고 갔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아이는 엄마는 자기가 챙겨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같다. 사람을 잘 믿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 상황을 세상도 알기 전에 너무 빨리 알게 했나 싶다가도 나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편하게 아이와 이런 일들을 의논하게 되었다. 좀 쎄보이게 썬그라스를 끼고 갔던 그 날의 그 사건을 한낮 우스개 에피소드로 기억하고 있지만 이번 보이스 피싱일을 당하고 나니 후회가 되었다. ‘그때 정신을 차렸어야 했어’ 그래 그때의 작은 호구짓은 애교였어. 내가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치게 될지 나에 대해 정말 한 치의 의구심도 없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결국 그 세입자를 끝으로 골치아픈 집을 팔았고 갈곳을 잃은 돈이 은행에 그대로 있게 되었다. 그돈이 은행잔고로 없었다면 이번에 그렇게 큰 피해를 보지 않았었을 것이다. 10년을 오르기는 커녕 분양가보다도 떨어졌던 집은 팔고 나니 집값이 오르고 겨우 남은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날렸으니 속이 아려도 '그집은 내것이 아니었었구나'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남을 믿는게 당연한 세상에서 이제라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나이 오십에 배워야 된다는 생각은 내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꽤나 오래갈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