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by 고요

태어나서 성인이 되서 일을 시작하고 결혼하기 까지 대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큰아이의 아토피질환으로 인해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를 했다. 그때 아이가 세살정도 됬으니 벌써 15년전 일이다. 춘천시내에서 떨어진 사암리 시골집에서 둘째 아이와 막내딸이 태어나 아이셋을 키우고 있었다. 시골마을에서도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주변에 인가가 드문 곳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려웠지만 아이셋을 키우면서 안팎으로 집안일에 파묻혀 살고 있어서 그런지 세상이 섬인지 내가 섬인지 모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대뜸 전화를 하신 친정엄마는 “너는 최진실이 죽은 것은 아니?” “엉? 왜?” 이러쿠 저러쿠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는 북한에서 왔냐? 북한사람보다 더 늦는다 하시면서 티비를 좀 보라고 하시면서 끊으셨다. 이런 일은 왕왕 일어나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비슷한 일들이 많았다. 조두순이 잡혀 형량을 얼마 받았다. 이럴 수 있냐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 조두순이 누구냐고 말했을 때의 싸한 분위기란!

"그러니까, 뉴스를 좀 봐야지" " 그것이 알고싶다고 안보냐"


가짜 검사는 만들지도 않은 대포통장으로 고소 고발이 서른건이 있다면서 나를 범죄자 취급을 하였고 내가 혐의가 풀릴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된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면 그 사람도 조사대상이 된다고 하는 말만 믿고 나의 무혐의를 스스로 입증하기 바뻤다. 은행직원들이 연루된 초대형 금융사기에 내가 가담했다고 하니 은행직원들도 못믿는 상황에서 그들은 cctv를 보면서 나를 감시했다. 은행에서 현금을 찾는 과정을 세세히 알려주었고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체크했다. 은행직원이 연류된 것이라면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체크하는 보이스피싱관련서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후 ‘보이스피싱’을 검색창에 쳐보았다. 내가 당했던 방식은 너무나 구태의연한 방법이었다. 읽어내리는 내내 벽에 머리를 몇 번을 부딪혔는지 모르겠다. 어쩜 이리도 몰랐을까?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았던 것일까? 세상은 이렇게 변했고 사람들이 이렇게 무서운데 한사람 한사람의 서사를 소중히 하며 글로 그림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던 나는 도대체 앞으로 이 사회에 과연 적응하면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사회와 담을 쌓았다기보다 나에게 닥친 일들이 많은 것이라고, 할일이 많은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아토피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매일 매일이 스파르타생활이여서 늘 바뻤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는 시간과의 싸움이라 주변에 눈을 돌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 사회부장을 맡았던 나의 비사회성이라니, 국내와 국제정서의 흐름까지 알아야 한다며 선배들이 학습시켰던 그때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는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었었어‘하면서 지난 시절을 냉소하기도 했었다. 막연하게 그때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피가 뜨거워 끌려다녔거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른것이지.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집중해하고 의식의 흐름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탓에 머릿속에 집 하나를 지으면 답을 찾을 때까지 생각에 집중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머리속에 들어온 단어는 일상에서 느끼는 의문점이나 해결해야 하는 물음에서 시작되었고 답을 찾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림작업이 되었다.

2017년도에 "그와 그녀의 36.5도" 전시회를 기획했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부부로 이어지면서 각자 다른 신호를 알아차리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고 서로의 온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라는 주제에 집중해보고 작업을 했던 전시였었다. 남녀간의 온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숙성되고 유지될까? 어떤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지될까라는 궁금함속에 남녀의 만남과 결혼 육아과정을 만화로 그렸었다. 그리고 남녀간은 적당한 거리두기로 정리했었다. 그러는 와중에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살이 급격히 찌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찢어진 연골을 잇는 다리 수술을 하고 재활을 시작했고 살을 빼라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다. 그리고 생활단식을 통해 살을 빼고 서서히 건강을 찾아가기 시작했었다. 아이들의 아토피로인해 십여년전에 단식이라는 것을 했었다. 그때는 너무 고되고 아이들 병만 보여서 단식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기 바뻤는데 내가 아퍼서 단식을 하다보니 단식에 대한 원리와 생리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몸의 변화를 뚜렷이 느끼게 되었다. 대충 서서 밥솥열고 먹던 습성이 사라졌고 잠을 좀 더 자기 시작했다. 잠을 자고 나면 후회가 되었던 불안한 마음을 줄이는 등 나를 위한 습관들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 단식을 하니 몸과 함께 변화되는 마음과 생활의 리듬이 신기했고 제대로 몸에 대해 알고 싶어서 ’설레는 몸‘전시를 기획하고 단식과 몸에 대한 생각을 작업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고

모두 다 내 탓 만하기에는 아픈 아이들을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었다고

아이들과 함께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이제 숫자 50을 찍으면 좀 가벼워지라고

슬픔이 목젖까지 차올라도

너는 충분했고 충분히 설레는 삶이었다고

-2019, 설레는 몸 중에서-

작년에는 무연고묘지로 시작된 죽음에 관한 전시를 기획했었다.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운 길이 무엇일까?" 로 시작된 질문에서 시작되어 "유쾌한 자유"라는 나름의 해답을 찾으면서 죽음을 좀더 가볍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 오십이 되면서 갱년기친구들 이야기로 웹툰을 준비하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의문은 깊이 생각하면 해답이 찾아지는 것이라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습성이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감상적인 글을 경계하며 혼자만의 집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려고 소통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사회변화에 아무리 둔감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했다. 모른다는 것이 불안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내게 닥친 현실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기 힘든 사람이 되어버린 내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그것은 참 잔인하고 슬픈 일이 되었다.



설레는 몸91x117 acrylic on linen 2019.jpg 설레는 몸 2019


이전 03화사라진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