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디가 해킹되었다. 갑자기 많은 네*버 카페에서 강퇴되었다. 오래전 가입했던 카페는 물론 근래 가입했던 카페까지 이유도 알 수 없이 강퇴와 정지를 당했다. 그리고,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런 채팅과 이메일들이 오는데 이상해서... 네가 보낸 거 맞아?" 내용을 들어보니 돈 잘 벌게 해 준다는 재무설계 안내와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일과 더불어 엄청난 수익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뭔가 잘못되었구나’ 사람들이 말하는 '신상이 털렸구나'. 급하게 비밀번호를 바꾸고 이메일 계정을 다른 것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평소에도 잘 잊어버리곤 해서 이메일에서부터 뱅킹 서비스까지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동일했었다. 네*버와 연동된 통장을 들어가면서 심장이 떨렸다. 순간 잔고가 ”0 “ 이면 어떡하지 겁도 났었다. 그런 일이 있고 문자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톡으로 매일 고객들에게 연락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톡은 수시로 보지만 문자는 지나치거나 밤에 한꺼번에 보는 일이 많았는데 왜 그 날 아침에는 해외에서 결제되었다는 문자를 확인했는지 그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머리를 쥐어박는다. 이미 오염된 핸드폰으로 소비자보호원에서 금융감독원, 검찰까지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은행 직원이 연루된 범죄사건에 내가 피의자로 고소 고발되었다는 검사의 말을 믿게 된 것도 어딘가에서 유출된 개인정보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이런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니 더 불안했던 것이다.
내게 허락된 세상에 대해 그리 큰 불만이 없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은 대가가 그리 크지 않아도 큰 자부심이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노력한 것에 비해 미약한 아웃풋이긴 했지만, 요즘 우스갯소리로 ‘나를 갈아 넣는 정도’의 피로감은 아니기에 좀 더 나은 가치에 대해 시간과 생각을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안락했던 일상이 송두리째 사라진 멈춰진 세상에 서있다. 그동안 애썼던 삶이 무슨 소용이 있나 허탈감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았다.
사업이나 투자를 하다가 실패를 하면 경험이 자산이 되고, 떼인 돈은 욕을 하며 원망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면 된다. 순간순간 분통 터지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히기 마련인데 자신을 향한 분노는 어떻게 하면 치유될까?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무엇인가 시도했다 얻는 실패는 고통과 함께 공부가 된다. 실패를 거울삼아 이겨내는 힘은 보이지 않는 근육을 키우기도 하고 기가 막힌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을 얻기도 한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남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은 너무나 어이없는 일 이어서 그 순간 나의 행동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남의 일이 되었을 때 우리의 반응은 보통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어떻게 그렇게 당할 수 있어”로 반응하게 되는 이유도 보이스피싱사기의 전개상황은 인과관계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말이 안되는 황당한 상황에 어이없게 피해를 당한다. 이 일을 막상 겪게 되면 자신의 행동이 용서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를 향한 분노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오래 가게 만든다. 갑자기 사라진 세상, 그 안을 채우던 일상은 무너지고 순간순간 잦아드는 무기력과 상실감이 거세게 마음 안에 자리 잡아 자기 살을 베곤 한다.
사건 직후에는 범죄자들에게 분노감이 생겨 온갖 저주를 퍼붓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노의 대상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로 바뀐다. 자신을 향해 분노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바닥을 친다.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기 때문에 눈물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폭식을 하는 내 모습이 미워서 먹고 더 먹었다. 죄스러워 울지도 못했는데 뭐라고 밥을 먹나 싶었다. 그러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밉고 애처로웠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니 무기력 해졌다. 단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을 끊으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단식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단식 중 죽을 한솥을 먹는 일이 벌어졌다. 단식을 하면 단식한 날의 수많은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밥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먹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나였다.
경찰서에서 다시 나와 진술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현금을 찾은 시점과 금액, 관련된 통장자료를 가져오라고 했다. 은행사이트에 들어가니 심장이 뚫리는 것처럼 참담했다. 거래내역서를 출력하고 경찰서에 들어서면서 담당형사에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진행된 것은 없고 진행하려고 한다고 하였고 말의 내용은 다른 경찰서에서 전달책이라고 불리는 돈을 받아간 사람이 잡히기를 기다려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돈을 건네주었던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 못 해 현장 cctv를 2~3시간 더 확인해야 했던 경찰은 잘못된 시간 진술로 인해 cctv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몇 시간 뺑이쳤던 상황을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지난 번 통화에도 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 것도 하나 기억못한다는 듯이 짜증난 어투로 시간을 제대로 기억해내라고 했었다. 그리고 담당형사가 바뀌어 다시 그날의 상황을 이야기 해야 했고 다시 조서를 쓰게 된 것이다. 이미 cctv화면으로 확인한 사람의 인상착의를 물어보고 또 물어보는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니 ‘이래서 신고하겠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경찰서를 나왔다. 잡을 확률도 낮지만 잡아도 돈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분통이 터졌다. 사건을 당한 것도 억울한 데 조서를 또 쓰고 나오니 더 억울해졌다. 사건을 다시 떠올리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계는 돌아가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계는 바늘 침이 거꾸로 돌아간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만 있다면 좋겠다. 그냥 며칠만 며칠만 돌릴 수 있다면.
경찰서를 나와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안전벨트를 당겨서 매려는데 끈이 당겨 나오지 않는다. 당겨도 당겨도 그대로인 벨트를 던져버렸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벨트를 다시 매고 기어를 바꾸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었다. 큰아이가 며칠 전 저장해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집으로 오는 내내 울었다. 사건이 있고 처음 목놓아 울었다.
“Rainy day” - ASH ISLAND 노래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나 혼자 (나 혼자)
울곤 해서 빗소리에 맞춰 혼자 (나 혼자)
참 좁았었지 몇 평 남짓한 공간엔
오랜 적막과 어둠만이
네가 내게 오기 전까지
퉁퉁 부은 얼굴로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었다. 죽을 끓였고 ‘먹으면 안 돼’ 하며 끓인 죽을 호호 불며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고민은 그 행동 하나로 끝이 났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솥을 비웠다. 비워진 솥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 나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자학하는 행동과 심리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자기 학대는 묘한 안도감을 준다. 그것을 쾌락이라는 단어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무기력을 잠시 벗어나는 도피성 행동이 자기 학대였고 자신에 대한 분노감이 연민으로 바뀌어 가면서 그나마 목놓아 울 수 있었다.
재단식을 하며 묵묵히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는데 바람 한 점 없다. 3년 전 단식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명상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 명상을 하면서 중심에 고요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점점 느려지는 나의 움직임을 고요함이라고 자위하기도 했었다. 나는 얼마전 3월행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포스터를 만들면서 봄은 이미 나에게 와있었다. 하지만 , 샤방샤방 설레는 봄을 준비했던 2월의 포스터 그림이 무색하게 아직은 깊은 겨울이다.
2020"어느 유쾌한 자유" 개인전에서 제작했던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