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건너는날 1

by 고요


멀리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내 차를 세차하고 있다. 살짝 물이 얼굴에 튀겨 눈을 찡긋 감으며 나를 살짝 본다. 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는다. 그는 원래 장난꾸러기이다. 애교 많은 여자와 살고 싶었는데 아내가 곰 같아서 자신이 애교가 많아졌다고 한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말이 없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내가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저분하게 차를 쓰는 나와 달리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된 차를 자주자주 세차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세차를 게을리해 뒤죽박죽 된 내 차를 그는 쉬는 날 자신의 차와 함께 청소한다. 세차장으로 같이 차를 몰고 가서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만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 그는 세차장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가 두 탕을 뛰고 오면 그제야 일어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남편과 달리 늦게 자고 조금 늦게 일어나는 나는 매일 수면부족으로 몸을 혹사하는 습성이 있다. 그나마 휴일은 밀린 잠을 자야 한다고 하는 나와 달리 일찍 일어나 분주히 움직이는 남편이 귀찮을 때가 많았다. 아침을 안 먹는 여자와 아침 6시에 밥을 먹는 남자.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남자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여자. 순댓국을 좋아하는 남자와 고기가 빠진 국물을 싫어하는 여자. 아이언 맨을 좋아하는 남자와 아이언맨이 나오면 잠이 드는 여자.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는 남자와 가을만 돼도 수면바지를 꺼내 입는 여자가 잘 살아가는 방법은 적당한 거리두기라고 몇 년 전 “그와 그녀의 36.5”전시를 하면서 만화 형식으로 작업한 적이 있다.

남자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면서도 여자는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고 모르는 척 핑계를 댔었다. 남자는 여자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밤을 새우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했다. 아침을 먹지 않는 것도, 단식을 하는 것도 못마땅해했었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는 어느 날부터 입을 닫았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말하는 이유에 대해 늘 항변을 했었다. 남자는 잠을 줄여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잔소리를 하면. 여자는 그럼 언제 그림을 그리냐고 했었다. 낮에 그림을 그릴 만큼 내가 한가하냐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살이 쪄서 아픈 여자에게 운동을 하지 않고 다이어트로 몸을 상하게 한다고 하면서 남자는 사람이 먹지 않고 어떻게 사냐고 했었고 여자는 충분히 잘 먹는다고 반격했다.


여자는 매일매일 섬을 건너고 있는 기분이었다.

춘천에서 살다가 시흥이라는 낯선 곳에서 또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토피 있는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운다고 미술학원을 하다 그만두고 춘천 사암리로 내려 간지 13년 만에 다시 춘천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은 아이들 때문이어서 생각할 틈 없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집중했었지만 이번은 남편이라는 이유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속상했다. 세 아이의 학교와 나의 일까지 걸리는 점이 많았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내 일의 특성상 낯선 곳은 그만큼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 그때는 젊고 지금은 늙었는데, 그때는 아이밖에 안 보였고 지금은 내가 보이는데 라면서 거부했다. 남편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기주의라고 맞섰고 남편은 가족이 같이 사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이사를 강행했었다. 아이들도 힘든기는 마찬가지였다. 왕따와 학교폭력으로 큰아이는 가출을 하며 학교생활을 힘들어했었고 둘째 아이는 원형탈모까지 오는 학교폭력으로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몇 달 전부터는 남편의 현장이 멀어져 다시 주말부부를 하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인데 또 그를 원망했다. 생각에 빠지면 답을 찾을 때까지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 모든 생각과 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 남편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뭐하나에 꽂히면 옆을 보지 못한다고 순간순간 브레이크를 걸며 나에게 쉬라고 했었던, 엄지 검지 손가락을 벌려 입술 아래에 대며 입술 꼬리를 귀까지 당겨 늘 “웃어”라고 하던 남편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런데, 말을 안 하는 남자를 여자는 더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보이스피싱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당황한 나와 달리 남편은 침착해 보였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대했고 구석구석 집 안을 청소했다. 꽤 오랜 시간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고 밥을 차렸다. 누워있는 나에게 죽을 가져다주며 먹으라고 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남편이 한마디 하였다 “ 나에게 미안한 생각이 있으면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

그런 그에게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라고 하자 그는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자기반성을 하고 있었다. 말하지 못했던 것이 비단 가짜 검사의 협박 때문만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말하지 못한 나를 원망하기보다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었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믿지 못했어” 쳐다보는 나에게

“언제부터인지 알아? 결혼 전부터 그랬어 ”


세차를 하고 있는 남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나에게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울컥, 폐 가장 밑바닥부터 깊은숨이 올라와 목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쿵하고 내려앉은 듯하였다


'도대체 저 남자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KakaoTalk_20201028_213534913_09.jpg 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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