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건너는 날 2

by 고요

그때부터라고 생각했다.



아토피를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모르기 때문에 막연하고 모르기 때문에 불안했다. 내가 아닌 아이에게 닥친 문제여서 불안함은 공포로 밀려왔다. '나을 수나 있는 것일까' 오랜 시행착오 속에 아토피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람의 몸을 물 컵에 비유할 수 있은데 건강한 사람은 완전히 비어있는 컵으로 아토피 증상에 따라 물이 조금 차있는 컵 , 아토피 정도에 따라 물의 양은 정해져 태어난다. 컵을 채운 물은 독소 혹은 질병의 원인 정도 될 것이다. 빈 컵으로 출발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담을 수 있는 컵의 부피가 적은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채워져 쉽게 넘친다. 이렇게 간단한 설명으로 이 아이의 아토피가 완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질병도 채워질 때 까지는 모르고 있다가 넘쳐야 알게 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프면 입맛부터 떨어져 자연적으로 비우는 것부터 하지 않나? 아프니까 잘 먹어야 해 한다면 이내 컵은 넘쳐 버릴 것이다.


진물이 흘러 안고 있으면 옷 사이로 진물이 흘러 내 옷까지 젖게 하는 갓난아이를 냉온욕을 시킨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답이 없던 시절, 이것 저것 좋다는 것을 다 해보고 있었다. 치료약이 없다는 병에 대해 말하는 의사가 권하는 약을 쓸 수가 없었다.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제제를 먹여 덜 가렵게 하고 진물을 멈추게는 하는데 다음에 다시 발진이 생기면 증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의원 치료는 그래도 몸 전체를 보니 괜찮겠지 하면서 일 년 넘게 한약을 먹이고 바르고 머드팩, 광선치료 등 많은 돈과 시간을 썼지만 아이만 고생시키고 포기했다. 결국은 자연치료로 냉온욕, 풍욕, 약초물에 목욕을 시키는 등 몸은 고되지만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이가 너무 고생만 한다고 약을 써보자는 남편과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반년 넘게 좋다는 온천을 찾아다니며 온천물을 트렁크 가득 받아 집에서 목욕을 시키는 나에게 그는 화가 났지만 묵묵히 따라 주었고 마음속으로는 화를 내고 있었다.



냉온욕은 찬물에서 1분 뜨거운 물에서 1분 다시 찬물 1분 이렇게 찬물과 뜨거운 물을 왔다 갔다 하는 목욕법이다. 산성에서 알칼리로 알칼리에서 산성으로 넘나들며 약 알칼리로 체액의 균형을 맞춘다. 그리고 혈관 사이사이 아주 가늘게 지름길이 만들어져 있다. 이 글로뮈라는 지름길을 활성화시켜 순환과 면역에 좋게 만들기 때문에 팔목이 시큰거려도 냉온욕은 매일 해주었다. 무엇보다 냉온욕을 하고 나면 밤에 그나마 잘 수 있어 꾀가 나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말이 찬물 더운물 목욕이지 매일 물을 받아 목욕시키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물을 준비하고 있는 데 옆에서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아기를 키우지 말라고 했었다. 아픈 아이만으로도 힘든데 “지금 밖에 내놓아라”라는 말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때가 설날 즈음이었으니 엄동설한이었다. 엄동설한에 아이를 밖에 내놓으라니, 소름이 끼쳤다.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 남편은 가만히 있었다. 남도의 사투리와 함께 말이 거친 시어머니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낯설고 힘들었다. “말은 그렇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라는 남편의 말은 나를 남편에게서 더 멀게 했었다. 세월이 흘러 남편과 그의 형제들의 상처 받았던 성장기를 알게 되었고 이 모든 원인 제공자였던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유년기를 보냈던 시어머니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좀 더 남편과 가족들에게 자세한 설명과 이해가 필요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혼 전부터 믿지 못했다는 남편의 말이 의아했다. 남편은 늘 입버릇처럼 “그냥 날 믿어”라는 말을 하곤 했다. 평상시 대수롭지 않게 넘긴 그 말이 마음에 콕 와서 박혔다. 그는 왜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하루를 꼬박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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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2014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 것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면

서로에 대한 공허와 갈증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힘이 견고할 때 서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사랑 역시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유이지

하지만 결혼은 끝없는 관심을 필요로 해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그, 또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들을 쌓아두어야 해

그래야 끓어올랐거나, 혹은, 한없이 바닥을 치는 줄타기 위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온도를

36.5도의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또는 약자일 때

사랑의 권력구조 안에서 서로에 대한 설레임은 어떻게 변질될까?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고 고독은 혼자 누리는 즐거움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어쩌면 별거 아닌 이 순간! 그, 또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 된다

- 그와 그녀의 36.5도 中에서- 2017

별거 아닌 그 순간 그에게 말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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