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결혼 전 반년 정도 혼자서 동남아와 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성향이 비슷하거나 일정이 비슷하면 함께 다니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배낭여행 중에는 매일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지곤 한다. 두어 달 정도 시간이 지나니 여행이라기보다 일상생활처럼 느껴지던 어느 날,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캔맥주 하나를 들고 베니스 밤배를 탔다. 가을밤이었다. 습기가 내려앉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을 밝히는 아득한 빛과 물 위로 흔들리는 빛이 맞물려 만드는 황홀한 감동은 이내 외로움에 북받쳐 눈동자를 흔들리게 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혼자 본다는 외로움이 뼈속까지 시리게 만들어 이렇게 주문을 걸었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모든 남자들이 영화배우 같았던 이 곳 이탈리아에서 지금부터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야 말 거야” 세상, 선수도 아니고 모태솔로 수준인 나의 생각하지 못했던 용감한 변화는 그만큼 그날의 분위기가 황홀경이었다는, 정말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베니스 거리 분수대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국사람이세요?” 배낭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 차이니즈?” 가 아닌 어디선가 반가운 한국말로 한국사람이냐고 물어오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한국사람 맞아요” 하면서 그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오스트리아 유학생이었다. 음악을 하는 유학생이 아닌 그림으로 오스트리아에 유학을 온 것도 신기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학교 선배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같은 과 대 선배였다. 그는 현재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데 이탈리아 여행 중에 베니스에서 나와 만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 와의 짧은 만남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편지를 하기 시작했다.
2년 후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한국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여기저기 떠도는 시간강사로 가난한 화가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했었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미술학원을 하면서 그의 그림을 다른 사람인 것처럼 구매해 주었고 월세를 내는 미술학원을 하면서 맘 편하게 작업하라고 그에게 전세로 작업실을 얻어 주었다. 오스트리아 빈학파의 영향을 받은 그의 작업은 매우 섬세하고 염세적이었다. 가끔 그의 전시 소식을 기다려 보곤 했지만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 1층에서 슈퍼를 하던 주인집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에게 와보라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슈퍼에 들어서자 슈퍼 앞에 세워둔 차를 가리키며 여자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와의 연애 중에 그야말로 바람이 난 것이었다. 그가 나가는 학교의 조교였었다. 그날 결국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깊은 상처를 안고 선배와의 연애는 끝이 났다. 살이 10킬로 정도 빠졌다. 무엇이었을까? 작업에 전념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고 원망했었을까? 아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용서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나를 떠났다. 떠나는 그에게 선물을 했다.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할 만도 하는데 묘하게 정리가 되었다. 질질 끌던 미련이 그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마지막 선물 하나로 담백해졌다. 그런 내가 더 신기했다.
어쩌면 영화 같은 상황에 영화 주인공이 돼서 운명을 가져다 끼워 맞췄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욕망에 마음을 맞춰가고 있었나 그 순간 좀 더 생각에 집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그때는 부족했었다, 다 잊고 무엇인가 하고 싶어 졌다. 그동안 살아왔던 흐름에서 다른 길을 내고 싶었다. 단출하고 정적인 나의 삶에 다른 길이라는 것은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고 싶다는 것이다. 바다와 수영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해수어를 집에서 키우고 있던 나는 겁 없이 스킨스쿠버를 시작하였다.
자격증을 따고 드디어 바닷속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수압으로 인해 몸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입수를 할 때는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나의 호흡소리만을 들으며 진공의 상태처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속이 눈앞에 펼쳐진다. 몸안의 풍경을 보듯이 바다의 속살을 본다. 남쪽나라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바다색은 아니지만 충분히 신기했다. 물고기보다 인공수초 안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보는 말미잘이 더 아름다웠다면 꽤나 멋지고 유연한 다이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의 내 모습은 늘 실수투성이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혼자 정신 팔려 들여다보느라고 함께 바다에 들어간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기도 하고 무게 조절을 못해 혼자 붕 떠버리기도 했다. 동호회에서 ‘고문관’으로 불릴 정도로 실수 연발하여 다이빙 후 늘 나의 실수는 안주감이 되기도 했다. 물속에서는 호흡기를 입에 끼고 있어 입을 벌리지 못하기 때문에 수신호로 대화를 한다. 함께 다이빙하는 연인들이 많아 호흡기를 잠시 떼고 키스를 하는 장면도 종종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물속에서 모든 대화는 몸의 언어로 말한다. 수족관 안의 해수어만큼 아름다운 색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물고기 떼를 만나는 것은 지금 떠올려도 가슴 떨리는 장면이다. 처음으로 보는 물고기 떼의 황홀함이란! 손가락으로 엄지 척을 하며 연신 원더풀을 외쳤다. 주먹을 쥔 상태로 엄지를 올리면 모두 물 위로 뜨라는 신호이고 반대로 엄지를 내리면 더 깊게 들어간다는 신호이다. 나의 계속된 원더풀 환호에 놀란 사람들은 올라가라는 신호인 줄 알고 모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 멀리서
"무슨 일이야?"
" 그냥 , 너무 멋지다고요"
스쿠버는 공기통을 매고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공기통 안의 공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늘 공기량을 체크하면서 다닌다. 그리고 공기를 조금 남겨두고 물밖로 올라온다. 올라오다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한번 바다 위로 올라오면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 많은 공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들어가려면 보트 위의 다른 공기통을 매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고문관이 맞았다. 하루는 수면 위에 올라온 후 다시 보트로 옮겨타 육지로 오게 되는데 그 와중에 답답한 마스크를 벗다가 바다에 마스크를 떨어트렸다. 다시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망했다"
그런데, 다른 보트에 타고 있던 한 남자가 보트에서 갑자기 입수를 했다. 공기통 없이 맨 몸으로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스킨다이빙'이라고 부른다. 스킨과 스쿠버를 합쳐서 '스킨 스쿠버다이빙'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해녀들이 자맥질을 하는 방식이 바로 스킨다이빙인 것이다. 뛰어든 남자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한 손에 마스크를 위로 흔들며 물밖로 나왔다. 지금의 남편이었다. 그 남자는 나이도 많으면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누나에게 첫눈에 반했다면서 사귀자고 했었고 결혼 안 해주면 죽는다고 했었다. 그렇게 나이도 어리면서 ‘무조건 나만 믿어’ 하는 그 남자,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머리속의 집,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