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어 결혼을 하였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 데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로 시작해서 아이 셋이 줄줄이 태어났다. 결혼을 하면 아이들을 낳지 않겠다는 이야기에 남편도 합의를 했었는데 모든 일은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시골생활로 시작한 스파르타 육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결혼식 주례사에 "네"하는 그 순간,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던 신랑과 신부는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버라이어티 초 특급 노동열 차는 서서히 바퀴를 움직이며 출발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임신을 하게 되면서 나는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라서 먹고 숨 쉬고 살아가면서 자연을 동경하는 삶은 그저 그냥 저 푸른 초원 위에 집을 짓는 막연한 환상처럼 누구나 하는 그 정도만큼이었다.
소아비만이었다가 성인이 되면서 수영과 헬스, 다이어트로 관리를 하다 임신 후 마음 놓고 먹기 시작하니 임신하는 순간부터 살이 급격히 찌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자연분만은 안돼요 제왕 절개할 거예요"라고 임신 3개월부터 딱 잘라 이야기했다. 자연 속에서 키우는 것은 어려워도 자연스러운 분만의 과정을 거쳐 만나고 싶었다. 아이가 세상과 마주치는 첫 공간이 병원이 아니면 좋겠구나라는 바람을 가지고 산전 요가를 통해 호흡법을 배우고 전국의 조산원을 수소문해서 집과 가까운 조산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남편과 함께 분만할 때 필요한 호흡법과 자세를 배웠다.
2박 3일이 지나도 자궁문이 쉽게 열리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아이는 잘 찾아서 나왔다. 밀려오는 진통이 무서우면 남편에게 "으... 또.. 온다." "아프다" "가나 봐" 말하면서 오랜 진통시간만큼 노하우도 생겼다. 물론 남편 머리를 쥐어뜯지는 않았지만 소리도 질렀다. 진통이 멈추면 소리 지른 것을 후회하면서 저 멀리서 밀려오는 통증을 준비하고 떠나보내는 무한반복 끝에 아이는 내 가슴에 안겼고 이내 울음을 멈췄다. 세상에 이렇게 못생기고 조그만 아이는 처음 보았고 눈물이 나왔다. 아이는 젖이 돌 때까지 보리차를 먹었고 배가 고파 빈 젖을 연신 빨았다. 아이는 태변이 나올 때까지 젖을 먹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진 장속의 똥을 배출한 후에 젖을 먹는 자연 단식을 아기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것은 정말 신비한 일이었다. 드디어 초유가 나오고 처음으로 달콤한 엄마의 젖을 먹게 되었다. 조산원에 있는 동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살짝 열어놓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배웠다. 조산원 선생님들은 아기의 옷을 벗겨놓고 풍욕을 시켜주셨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소파 위에서 아이 젖을 먹이고 옷을 벗겨 놓은 체 바람으로 목욕을 하고 나면 아이는 색색거리면서 잠을 잤다. 그렇게 평화로운 클래식 음악 아래 달콤한 치즈케이크를 한 잎 베어 먹는 듯한 행복하고 안락한 시간은 딱 한 달간이었다. 얼굴에 하나둘씩 생기는 정체불명 좁쌀 알갱이로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20년 전만 해도 아토피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태열이라는 단어를 의사들이 사용했고 지켜보면서 피부약을 바르는 것이 그 시대의 처방이었다. 알 수 없는 데 약을 쓰는 것이 이상했고 방법이 없다고 하니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편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시작되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대신 그림 같은 대자연속에 뼈 빠지는 육아노동의 시골생활이 그리 오래갈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