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태우는 본단식 중이다. 단식은 몸을 완전히 비우는 본단식 기간을 지나 내장기관을 회복시켜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회복식, 그리고 깨끗한 음식으로 몸안을 채우는 조절 식기 간으로 진행된다. 단식은 곡기를 끊음으로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으로 강제적으로 나를 밀어 넣는 것이다. 몸이 움직이려면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 데 외부로부터 공급받지 못한 몸은 어떻게 할까? 에너지 공급이 끊어지니 생존하려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지혜로운 몸은 몸안의 노폐물과 남아도는 당을 가져다 쓰는 대청소를 시작하게 된다. 이런 원리를 처음부터 알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양약을 쓰기는 꺼려지고 한약도 소용없었을 때 궁여지책으로 해 본 것이 단식이었다. 어른들은 잘 먹어야 잘 큰다면서 걱정을 했었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였기에 아이를 굶기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을 때까지 좋다는 것은 다 해봐야 하는 절박함이 지리산까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했지만 아이에게 시도해 본 것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연치유는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기다리고 애쓴 만큼 아이는 건강해져 갔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의 몸에 비상이 걸렸을 때 생각한 것이 단식이었다. 이제는 편하게 집에서도 실천할 수 있게끔 단식법은 진화 발전했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양하게 생성되는 호르몬들의 교란이 일어난다.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것을 먹어도 과로하면 전신에 염증이 생기듯이 스트레스를 받아도 염증이 생긴다. 몇 해전 무릎 연골이 파열되고 척추와 머리를 연결하는 목뼈가 붙어가는 뼈 사진을 보더니 의사는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참 흔하다. 그리고 참 쉽다. 스트레스!
하지만 몸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언젠가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그가 나는 못마땅했다. 사랑한다면서 나의 일을 존중하지 않는 그에게 서운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처음부터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몸을 혹사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몇 해전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며칠간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시간에 늘 쫓기고 있어서 가는 시간 동안 잠을 자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꼬박 밤을 새우고 그림을 그렸다. 새벽에 짐을 들고 나서는 나에게 몸 상한다는 말을 하는 남편에게 “목숨 걸고 하는 일이야”라고 짜증을 내면서 나왔다. 잠을 못 자 피곤한데 잔소리를 듣는 느낌이니 열이 얼굴 위로 올라왔다. 잠을 못 자면 몸은 냉해지고 냉한 몸은 붓고 살이 찐다. 그리고 얼굴로 열이 올라와서 기혈의 순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을 돌보지 않을 때는 알 수조차 없는 일이다. 심장의 열은 아래로 내리고 신장의 물은 위로 올려야 한다는 것도 단식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었나. 그리고, 다음 해에 만성위염과 식도염, 목디스크와 연골 파열이라는 전신에 위기상황을 맞이하였다. 몇 달간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을 했었다. 90킬로에 육박 한 몸에 깁스까지 한 몸으로 부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 MRI를 촬영하는데 기계가 잘 덮이지 않아 대충 덮고 찍는 순간 '이곳을 나가 반드시 살을 빼겠어' 결심하였다 퇴원 후 살을 빼기 위한 단식을 하면서 전신성형을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만큼 몸에서 떼어내고 위염도, 목 협착증도 사라졌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되었다. 이번에 보이스피싱 사건이 일어나고 단식을 시작한 것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강제적으로 외부와 단절시켜야 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내가 잃어버린 금전적인 손해를 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어떻게 돈을 벌고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까?라는 생각부터 했다. 일은 열심히 해도 돈을 향하고 있지 않아서 돈 버는 재주가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수로 돈을 벌겠다는 것인지. 지금도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정리가 필요했다. 남편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과거로의 회귀는 나를 향해 계속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동안 무엇에 의존하고 어떻게 삶을 구성하고 있었는지 어떤 변화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길을 내고 있었는지 나를 읽기 시작하니 머릿속에서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다.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회로처럼 연결시키기 때문에 어긋난 관계를 비단 한 사람의 책임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 어떤 관계도 일방통행은 없다. 나의 어떤 행동으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것이고 나의 그 어떤 행동은 타자의 또 다른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람'이라는 사건으로 나와 상대의 행동과 숨겨진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리고 , 다른 사랑이 상처를 아물게 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해결을 도망가는 것부터 했었을 텐데 이번 사건이 벌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상황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한 것은 아니었다. 밀려오는 상황들에 대처하고 대처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적인 감각은 참 놀라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식을 하면 평소에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증상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몸은 급하게 치유해야 할 것부터 치유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증상이 2차, 3차 단식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증상은 반드시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드러난 증상으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마련인 것이다.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단식을 시작한 것도 이 상황에 음식에 취하고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몸까지 망가트리는 모습까지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본능처럼 무엇을 선택할 때는 뇌와 몸에 기록된 데이터로 작동하기 마련이다. 나를 한없이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야 하는 단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몸처럼 마음도 극한 상황으로 치달으니 고구마를 캐면 그 안으로 줄줄이 매달려 있는 고구마를 찾아내듯 생각과 행동의 원인을 찾아 오래된 시간 속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제대로 나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떤 것도 내 안에 들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는 쉬어도 마음은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 수 있다. 몸을 정비하고 재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 뒤 좋은 음식을 받아들일 몸을 준비하는 것처럼 새로운 사랑이 들어와야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를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숙한 나는 새로운 사랑이 들어오면 자연히 정리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어야 했었다. 비단 이것은 남녀 간의 사랑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학대받은 사람이 자식을 학대하듯 내면을 정밀하게 바라보고 새로운 기운을 생성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불행은 계속 순환하게 될 것이다. 일억 오천은 사라졌지만 사라진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풍경을 다시 그린다
마음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남편과 깊은 대화를 시작하면서 내가 그동안 무심히 휘둘렀던 칼의 언어를 기억하고 있는 남편의 상처를 비추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간은 떨리기 시작했고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로 시야는 흐려지며 심장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긴 연주가 시작되었다.
지나간 건 다 아름답다고 지나간 사랑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모든 것이 마음 시리게 벅찬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의 36.3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