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거나 빛나거나

by 고요

Rainy day

사랑하는 가족은 언제나 짐이었다.

중3에 전학을 온 큰 아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었다. 춘천에서 시흥으로 이사오자마자 체중을 견디지 못한 나의 무릎 연골이 찢어지면서 3개월 정도 병원생활과 재활을 하는 엄마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 견디던 아이는 게임에 중독되었다. 힘들었을 때 게임이 친구이자 위로였었다며 게임을 동시에 두 게임을 한적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꽤 게임을 잘하였던 것 같고 말도 안 하고 게임회사에 면접을 보고 학교 시험도 안 보고 가출을 하는 등 일탈과 반항을 하였다. 명예의 전당처럼 세계랭킹 안에 들었던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게임을 줄이고 음악을 하겠다고 하였다. 친구들과 하지 않고 혼자 하는 게임은 이제 재미없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친정엄마는 “네 엄마는 돈을 더 못쓰겠구나” 하셨단다. 큰아이에게 외할머니는 방황하는 시기에 도피처와 안락한 안식처가 돼주면서 잘 통하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오후 11시 (2015년작)

돈을 더 못쓰겠구나라는 친정엄마의 반응과 달리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을 하던 아이에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걱정보다는 꿈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뻤다. 태어나면서 생후 한 달부터 아토피가 심했던 큰아이에게 늘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았다. 2019년에 '설레는 몸' 전시를 하면서 쓰지 못했던 육아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 글을 쓰면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었다. 그 시기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이렇게 착한 아이는 처음 봤어요”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놓아버린 공부와 꿈이 없어 방황을 하면서도 늘 책을 놓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원하는 스타일의 학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알아본 곳이 홍대 앞에 두 군데 있었. 오랜만에 신도림역에서 2호선을 갈아타면서 아이는 “여기는 정말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티브이에 사람 많다면 나오는 곳이 여기잖아 예전에는 지하철 객차 안으로 밀어 넣는 사람도 있었어 ” 아이와 신도림역을 지나 홍대에서 내리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대학시절, 역곡역에서 신도림을 거쳐 홍대. 홍대에서 신사동 신사동에서 교대, 신도림 거쳐 역곡까지 밤늦게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다 집으로 가는 1호선을 타고나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러면 피 냄새가 목 위로 올라왔었다.


사업에 실패를 거듭하던 아버지는 엄청난 빚을 남기고 사기치고 도망간 사람을 잡는다고 멕시코로 가버리셨고 그 뒷수습이 엄마와 나에게 남았었다. 작정하고 외국으로 도망친 사람을 어떻게 잡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아버지와 달리 깨끗이 단념한 엄마는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셨다. 졸업하고 미술학원 하면서도 갚아야 했던 짐은 결혼 후 자식들이 아프면서 가벼워진 어깨에 다시금 올라탔지만 닥친 일들이 많아서 해결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했고 결국 시간은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시련은 언제나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었고 과정은 힘들어도 열매는 조금은 달콤했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었다.

오후 4시(2015년작)

친정엄마는 진물과 상처가 오래된 자국으로 남은 태선화 반바지도 못 입힐 줄 알았는데 저렇게 큰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한다고 하신다.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던 단식 5일째 되던 날 큰아이는 시커멓고 끈적이는 변을 보았다. 태변처럼 보였다. 태어났을 때도 젖이 돌 때까지 보리차가 먹었기 때문에 금식했었고 태변을 볼 때까지 젖을 먹이지 않았었다. 그때도 태변을 보았던 아이인데 어찌 된 일일까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뻤었다. ‘몸 안에 있는 건 다 나와라’ 허리를 마사지해주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첫 단식은 새벽에 대중탕에서 50여 명이 집단 냉온욕을 하는 지옥 체험과 졸면서 해주었던 지루하기 짝이 없는 풍욕을 하는 극기훈련 속에 우당탕탕 지나갔다. 돌도 안 지난 둘째도 함께 단식을 했었다. 그 아이에게도 큰아이처럼 심하지는 않아도 아토피는 있었다. 단지 엄마와 아빠가 큰아이로부터 사전 교육이 되어 있어서 쉽게 받아들여졌고 ‘뭘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를 이미 알았기에 둘째 아이는 덜 고생시켰었다. 둘째 아이는 단식 후 돌이 지나면서 아토피는 사라졌지만 5살 때까지 얼굴은 복숭아처럼 붉은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막내의 피부는 더 깨끗했었다. 엄마가 출산을 하면 엄마 몸속의 환경호르몬의 30프로가 아이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엄마가 살아온 몸의 역사로 아이가 만들어어진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는 아이를 낳을수록 건강해지고 아이는 엄마의 환경호르몬이라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아이를 키우면서 속상하게 되는 모든 일은 아이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끝없이 퍼줘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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