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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조금은 무거운 시작 - 나중엔 경쾌한 걸음

by 오성진

아주 아주 오래전에 한 젊은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던 친구였는데, 운영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한번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은 요새 책추남이라는 유튜브채널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만

나와 처음 만난 것은 1999년이었으니까 25년이 되었지요.


나를 찾아온 청년 그룹


조우석 선생은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나를 방문했습니다.

저녁에 초대를 해서 같이 식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조우석 선생이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나의 머릿속이 하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조우석선생과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제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일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첫인사로서의 질문을 이렇게 받았다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그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이니까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여러분에게 그 당시의 내 마음을 말씀드리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적절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막막한 마음이었습니다.


비전? 그것이 무엇이지?


열심히만 살면 되겠지. 그렇게 살다 보면 좋은 때가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만 살아오다가, 갑자기 근본적인 질문을 받았던 나는, 정말로 오랫동안 그 충격 속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어렴풋이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충실히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가슴에 와닿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혹시 "고통이 축복이다"라는 말씀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가정에서 비극이 이어졌지요.

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희망이 없는 삶을 포기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계속되는 비극에 저항을 했습니다.


하루는 기도 가운데 바이든은,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하고

항의하듯이 기도를 했습니다.


마침 당시의 인기 만화가 있었습니다. 두 쪽의 칼럼 만화였지요.

바이킹이 등장하는 만화인데, 바이든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2020년 11월 15일 중앙일보 기사에서 캡처

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11/10/joongang/20201110050151005ufuh.jpg


내용은, 바이킹이 뗏목을 타고 가는데 풍랑이 치고 아주 위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바이킹은 하늘을 향해 외쳤습니다.

"Why me?"(왜 저입니까?)

마치 컨트리 송 가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Chris Shristoperson)의 노래 제목처럼 외쳤지요.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Why Not?"(왜 너는 안되지?)

그 만화가 바이든에게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고통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나만의 일이 아니다.

그런 자각이 오고, 그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서 3년간의 강제노동과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입니다.


그는 유망한 정신의학자였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프로이트(Singmund Freud)로부터 지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러(Alfred Adler)에게서도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는 환자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환자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고민하면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임상경험과 연구를 통하여 깨우친 내용들을 책으로 저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2차대전을 맞이했고, 히틀러의 유태인 말살정책으로 부모님, 아내와 함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강제수용소에 입소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 그러니까, 입었던 옷, 가져간 모든 것을 압수당했지요.

그는 수감될 때까지 그가 쓰고 있던 책의 원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감되더라도 계속 집필하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알몸만 남았으니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요?

알몸이 된 그에게는 바로 직전에 가스실로 들어간 사람의 낡은 옷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옷의 주머니에는 종이쪽지 한 장이 있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기도문인 "쉐마 이스라엘!"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쉐마 이스라엘


쉐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멀씀입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의 기도문이죠.

절망적인 마음이었던 그에게, 그 종이쪽지는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원고를 종이에 쓸 수 없다면, 마음속으로 써야 하겠구나!"


물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자신을 생각하며, 그의 과업을 마음속으로 계속 이어갔습니다.

아우슈비츠의 강제 수용소에서 5퍼센트도 안 되는 생존자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을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계속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이 패전한 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이 되어 오스트리아로 돌아갑니다.

돌아간 집에는, 그가 그렇게 살아 있기를 기대했던 아버지 어머니, 아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극도의 슬픔과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다시 일어섭니다.


자신이 머릿속에서 계속 연구해 온 내용을 구술하여, 9일 만에 책을 출판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출간이 되어 있습니다만, "죽음의 수용소에서(이시형 역)"입니다. 원제는 "Man's seach for meaning"입니다.


그 책은 출간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했습니다.

삶의 의미에 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삶이 당신에게 질문하고 있는 의미에 답을 하려고 하라"


삶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이야기를 하다 보니,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다산 정약용 선생입니다.

정조의 사랑을 지극히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정약용 선생은, 정조의 승하 후에 반대파에 의해서 유배를 가게 됩니다. 큰 형님은 참수를 당하고, 작은 형님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는 등, 가문이 풍비박산이 납니다.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장기로 유배를 갔다가 다시 강진으로 유배를 가면서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나는 바닷가 강진땅에 귀양을 왔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배움에 뜻을 두었지만, 스무 해 동안 세상길에 잠겨 선왕이 큰 도리를 다시 알지 못했더니, 이제야 여가를 얻었구나. 그리고는 마침내 흔연히 스스로 기뻐하였다"(정약용의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감사할 기회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16년간의 유배생활은 참으로 기름진 것이었습니다.

다산학당이라는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였고, 그들과 함께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연구와 저술을 해 나갑니다.

수백 권의 저술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오히려 유배생활 중 다산에게는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비전 - 개인의 욕심이 아닌 소명


아직도 덜 익은 마음으로 소명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이제 조금은 비전이 마음에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비전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소명이며

그것을 통해서 받는 선물입니다.

삶의 의미를 깊게 해 주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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