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람들에게 길들여가는 삶
지난 1월 한 달은 하루 종일 책과 함께 살았습니다. 브런치에서 주겠다는 경품에 눈이 어두워져서 새벽부터 밤까지 책을 붙잡고 늘어졌지요. 그것이 2월 초까지 이어졌는데 결국 번아웃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경품에 당첨이 되어 배달되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이상 지속된 생활이다 보니, 책에서 떠난다는 것이 매우 어색해졌습니다.
결국은 하루 쉬고 바로 다음 책을 잡았습니다.
어린 왕자의 마음으로
고등학교 1학년때 처음 읽은 후로 수십 년 만에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고 있는 내용들이 많이 사라진 것들이 다시 읽어가면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생텍쥐뻬리는 2차대전 중에 비행 중 실종된 것까지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구입한 책을 읽어보니 극히 최근에 그의 비행기가 격추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그의 유품과 비행기 파편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그의 아름다운 글을 다시 읽어보게 된 것이 참 감사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 가운데 첫 번째는 “어른은 숫자를 좋아한다”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틀림없는 기억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즐거웠습니다.
어린왕자. 생텍쥐뻬리가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그 꼬마를 왕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일까를 생각해 보니, B612별을 책임지고 있는 아이라서 왕자칭호를 부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별이었고 보살펴 줄 것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린 왕자는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갖고 보살피는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역시 왕자로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이 있는 세상
내가 자라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꿈이라는 것을 품을 조그만 틈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정말로 가난한 시대였기 때문에 꿈을 크게 가져도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거의 세계 꼴찌 나라에서 지금은 10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어린아이의 꿈은 어른의 꿈보다 더 진실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생텍쥐뻬리는 자신이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자기가 그린 그림이 어른들에게는 아주 유치하게 보였고, 어른들은 그런 것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라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아이의 미래를 권했던 것을, 그는 두고두고 마음에 품고 살았던 것을 봅니다.
아이의 꿈과 어른의 소망
어른들은 많이 배웠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보면서 고쳐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지요. 아이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에 발버둥을 치지만, 아이도 먹고 살려니 어른의 지시를 거부할 수가 없어서 그 꿈들을 다 접어버립니다.
어린 왕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는 ‘길들인다’라는 단어입니다. 프랑스어로는 apprivoiser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자기에게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상대방에게 길들이는 것이죠.
생텍쥐뻬리는 사람들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한 말로써 ‘길들인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에 배운 단어지만, 나는 수십 년간 이 단어만큼은 늘 마음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참 아름다운 단어지요.
프랑스어에서 apre, apri 등의 접두어는 ‘미리’라는 의미가 있지요.
그리고 voir는 ‘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날 사람을 마음에 두고서는 함께 있을 것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온통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것이죠.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 얼마만큼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매일 함께 지내는 사이라서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감싸주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그럴까요?
항상 마음속에 아이를 품고 지내고 있을까요?
아마도 생텍쥐뻬리는 자라면서 그 점이 제일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을 아무도 품어주지 않아서 그는 어른들이 요구하는 오로지 실용적인 길을 택하면서 나름대로 세상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다니면서 자신이 즐겼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대로 즐거웠고 의미 있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그림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나는 나이가 들고,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가 안 계시게 된 요즈음, 두 분이 나에게 어떻게 해 주셨는가를 많이 생각합니다. 참 감사하게 저를 돌봐 주셨던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두 분은 나의 진로에 관해서 자유롭게 놓아두셨지요. 물론 최종적인 직업 선택에는 내가 부모님 생각에 순종해서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왜냐면, 어떤 일을 하든 금지시키신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나의 그런 변화무쌍한 취미생활을 즐겁게 바라보셨던 두 분이었기 때문에 나를 잘 아셨기 때문이죠.
오래전에 아버지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만, 나의 자유분방함에 대해서 즐거워하시고, 하루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까지 해 주셨으니까요.
다시 어린왕자로 돌아가서 -
굴 쓰는 사람으로서 생텍쥐뻬리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틀에 박힌 생각으로 내 이야기를 써 나가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투철한 마음이 없는 글은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귀를 세우고 삶 속에서 흘려보내기 쉬운 이야기들에 귀를 향하면서 쓰려고 합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길들여지는 매일매일이 되고자 소망합니다.
그러면서도 주위에 민감하면서 어린 왕자가 가르쳐 중 길들이기를 마음에 늘 두고자 합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들의 마음이 보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