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푸, 보리
보리와 산책은 우리 집의 주말 루틴이다. 주말이 되면 보리는 어김없이 창가에 앉아 바깥세상을 내다본다. 창문을 열면 찬바람이 스며들고, 보리의 털이 살짝 날린다. 바람을 맡으며 보리는 주인인 나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바깥을 본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언제 나가?"
운동화를 꺼내는 순간, 보리의 반응은 더욱 빠르다. 발끝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내 발걸음을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신발장 근처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난다. 보리에게 산책은 일종의 의식이다. 어떤 의심도 없이, 우리는 늘 이 시간에 산책을 나간다.
“산책 갈까?”
그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보리는 현관문으로 돌진한다. 바닥에 발톱이 닿는 소리가 경쾌하다. 현관문 앞에 서서 잠깐 나를 기다리지만,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강아지에게 그 순간은 너무도 길다. 이윽고 문을 열고 나가면, 보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운 듯 코를 바닥에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바깥으로 나온 보리는 다른 강아지가 되는 듯하다. 사뿐사뿐 걷다가도 갑자기 뛰어가기도 하고, 갑자기 멈춰 서서 어떤 특별한 냄새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 길인데, 보리에게는 이 길이 매번 새로운 모험처럼 보이는 것 같다. 코를 바닥에 대고 온 세상의 정보를 수집하느라 한참을 멈춰서는 보리의 뒤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처음엔 그게 귀찮았지만, 이젠 그 시간마저 익숙하다. 그리고 보리 덕분에 나도 산책길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이 길에도 나무가 있었다는 걸,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이런 향이 스며들어 있었다는 걸.
산책은 그저 걷는 것이 아니다. 보리에게는 공원에서의 친구들과의 만남도 중요한 부분이다. 보리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비글 '태리'다. 공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태리와 그 주인을 알아보고 보리는 꼬리를 흔들며 그쪽으로 달려간다. 태리와 보리가 서로의 냄새를 맡고, 잠깐 서로를 향해 몸을 숙일 때 나는 그 둘의 짧은 대화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대화 속에 분명 깊은 교감이 있음을 느낀다. 짧지만 강렬한 인사. 보리와 태리는 몇 번의 꼬리 흔들기와 냄새 맡기로 인사를 마치고 각자의 길을 간다. 나도 그 순간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다.
보리가 태리와 만난 뒤에는 언제나 조금 더 기운차게 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의 만남이 보리에게는 작은 활력소가 되어주는 듯하다. 아마 나 역시 친구들과의 짧은 대화에서 느끼는 활기가 그런 것일까? 아무리 짧아도, 그 순간은 필요하다. 보리의 발걸음을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산책이 끝나갈 즈음, 보리는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처음에 비해 발걸음이 한결 느려지고, 이따금 뒤를 돌아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더 걸을까?"라고 묻는 듯한 그 눈빛을 보며, 나도 조금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피로감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그 눈빛에 응답하지 않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리는 물그릇으로 직행한다. 짧고 굵었던 산책이 끝나면 언제나 그렇듯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물을 마시고 나서는 가장 편한 자리를 찾아 몸을 뉘인다. 나 역시 산책 후에 느끼는 그 묘한 피로감 속에서, 보리가 느끼는 평온함을 함께 경험한다.
산책은 보리에게 단순히 바깥세상을 탐험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보리와 나,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흐르는 작은 의식이다. 우리 모두 바쁘게 살지만, 주말의 이 시간만큼은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다. 보리가 바닥을 킁킁거리며 온갖 정보를 수집할 때, 나는 일주일간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는다. 보리와 함께 걸으며 나 역시 세상 속 작은 것들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 작은 것들이 쌓여, 삶의 의미가 된다.
보리는 그저 강아지일 뿐이지만, 산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그리고 그 산책을 통해 나도 조금 더 여유로워진다. 산책 후에 느끼는 피로감마저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리와 내가 함께 보낸 시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주말 오후, 우리는 다시 한번 산책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