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월드시리즈 7차전
- 2025년 월드시리즈 7차전. 경기 내내 끌려다녔던 다저스가 9회 초에 기어코 동점을 만들어낸다. 흥분한 선수들과 관객들의 모습에 이어 카메라가 향한 곳은 다저스의 불펜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선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몸을 풀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어제 선발로 나와 6이닝을 던진 투수였다. 시리즈 2차전에서도 완투승을 거둔 그는 또 한 번의 등판을 준비하고 있었고, 일본 고교야구에서나 볼법한 풍경에 해설진은 술렁였다. 9회 말 1사 만루의 위기를 넘긴 야마모토는 그러고도 2이닝을 더 던졌고 마침내 다저스의 2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김형준 해설위원은 이 경기를 두고 자신이 중계했던 모든 경기 중에 최고라고 칭했다. 실시간 채팅창엔 ‘낭만’이라는 단어가 쉼 없이 올라왔다.
- 규격 외 존재. 오타니 쇼헤이의 등장은 상대 선수들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야구만화와 웹소설의 재앙이었다. 어떤 판타지를 만들어내더라도 오타니가 보여주는 현실이 더 비현실적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투수로 나와 10개의 삼진을 잡고 3개의 홈런을 치더니, 월드시리즈에선 9 연속 출루에 성공한다. 인성까지 갖춘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의 등장에 모든 지구인들은 그저 그를 찬양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일본인에 대해선 어쨌든 평가를 박하게 줬던 한국 사람들조차도 오타니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시리즈에선 오타니에 이어, 야마모토에게 까지 한국사람들은 순수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 축구에선 나카타 히데요시, 야구에선 이치로 스츠키.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 월드클래스에 근접했던 일본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 시절의 한국 사람들은 어쩐지 그들을 칭찬하는 게 껄끄러웠다. 무언가 흠집을 잡고 싶어졌다. 그건 아마도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진 문화, 산업, 스포츠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이 우위에 있던 시절이었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자, 모든 매체들이 한류 열풍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던 것은 그 열등감의 반증이었다. 근래에 일본 배우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인터뷰를 종종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국 문화의 강세는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 2019년에 반일정서가 극심해지던 무렵, 2000년 대생들이 가지는 반일정서와 80년대 이전 세대들이 가지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등장했다. 예전세대들이 가지는 반일감정이 열등감이었다면, 2000년 대생들은 일본에게 더 이상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동등 혹은 한국보단 아래라는 관점에서 반일감정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7080년 생들이 X-JAPAN과 이와이 슌지, 그리고 소니를 선망했다면 2000년대 생들에겐 BTS와 봉준호, 그리고 삼성이 있었다. 세계의 관심은 그들을 향해 있었고, 그것이 당연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새로운 세대에서부터 시작된 의식의 역전은 조금씩 이전 세대들에게도 스며들어갔다. 일본에 대한 열등감은,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 그래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한일전이 예전 같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일본을 이겨야겠다는 투쟁심은, 선수들은 차치하고라도 국민들에게서도 희미해졌다. 한국의 많은 야구팬과 축구팬들은 더 이상 일본이 라이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아득히 앞질러 있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분해서 인정하기 싫었던 것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해도 자존심이 상하진 않는다. 망해버린 한국의 극장가를 일본 애니메이션이 살려내고 있지만,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는 이제는 없다. 일본이 앞서 나가는 것을 앞서나간다고,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열등감이 사라지니 그 자리에 여유가 생겼고, 객관적 시야가 펼쳐졌다.
덕분에 야마모토의 역투가 새겨놓았던 일본 야구의 낭만은, 오늘 우리 세대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런 장면이라면 <H2>와 <메이저>의 무대였던 고시엔에서 수도 없이 봐왔었기 때문이다. 있는 힘껏 응원을 하고 박수를 쳐줄 준비가 되어있다. 설렘을 주는 또 한 명의 야구 선수가 생겼다.
p.s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고시엔에서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