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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Candy Mar 21. 2023

논리적인 사고란 뭘까(2)

정의하는 것(defining)의 중요성

https://brunch.co.kr/@vamosamigos/33


규모가 큰 토론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승전 주제는 '기계는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가'였습니다. 토론의 핵심은 통계도, 날카로운 아이디어도 아니었습니다. 핵심은 바로 기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였습니다. 기계의 정의에 대해 잠시 한번 고민해 보시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기계의 이미지는 뭔가 공장 같은 곳에서 감정없이 돌아가는 중장비들입니다.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위잉 하는 기계음이 섞인 각진 장비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기계라는 것을 위에서 떠오른 방향으로 정의하는 것과, 쓰레받기나 손톱깎이와 같은 일종의 도구들을 모두 포함하는 방향으로 정의하는 것은 논의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결국 어떤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사과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빨간색이고, 과일이고, 대개 달달하고, 이런 진술들은 사과의 정의가 아니라 사과의 일반적 특징일 뿐입니다. 사과의 정의는 사과나무의 열매입니다. 더욱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과나무는, 또 열매는 어떻게 정의되는지 알아야 하겠지요. 물론 사과의 정의를 이렇게 열심히 알 필요는 아마 없겠지만요. 요지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 쉽다고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개념들의 정의를 생각보다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의/정의하는 것(Defining)의 중요성


그렇다면 defining은 왜 중요할까요? 첫째로 모든 종류의 공부에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한 고등학생이 관계대명사라는 영어 개념을 너무 어려워합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앞서서 관계대명사가 뭔지, 즉 관계대명사의 정의부터 명확하게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관계대명사는 접속사+대명사 로 정의되는데,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아시겠지요. 접속사는 뭔지, 대명사는 뭔지 각각의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이전에 글에서도 썼던 내용이지만, 방정식이 어렵다면 마찬가지로 방정식의 정의부터 정확히 알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대학교에서 제가 주로 배우는 내용은 정치외교학과 법학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교수님이 제시했던 것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였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그래서 대체 무엇인가? 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들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훨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상법 수업에서는 상행위가 무엇인지 또한 상인은 무엇인지부터 배우고, 인권 수업에서는 인권의 개념부터 배웁니다.


둘째로 일상의 많은 순간들에서도 정의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연인 사이에서 연락 문제로 싸우는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한쪽은 '연인 간의 충분한 연락'이라는 것을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 꼬박꼬박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는 반면, 다른 한쪽은 별 일이 없어도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 다툼의 시작점이 됩니다. 이때 상대방은 연락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 정의하고 있을까? 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가치관에 관심을 가지는 행동입니다. 나와 상대방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다른지 그 정도를 깨닫는 것이 합의와 조정의 첫걸음이고, 나아가 성숙한 관계를 맺게끔 만들어 줍니다.


논리적 사고와 정의


논리적 사고와 개념의 정의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정의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의 분석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분석보다 탁월하기 마련이고, 본질을 꿰뚫는 힘을 갖게 됩니다. 몇 일 전에 동생이 '형은 순수문학이랑 대중문학 중에 어떤 게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잠깐 멈추고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위 질문은 아마도 순수문학이 품고 있는 문학적 깊이나 철학, 그리고 대중문학이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이나 오락성 중 어떤 것이 더욱 무거운지 저울질해보라는 의도였겠지요. 별 생각 없이 답한다면 '나는 그래도 고전문학 같은 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해, 단순한 즐거움은 넷플릭스로도 줄 수 있잖아' 라던가, '대중문학.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게 최고지' 라고 답해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위의 질문은 예술(혹은 문학)의 가치를 무엇으로 매길 것인가라는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가치를 애초에 매길 수는 있는가? / 예술을 과연 우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만일 예술에 등수를 매길 수 없다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가치는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 되므로 맨 처음 질문에도 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정의/본질/개념 ...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습관은 복잡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방법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논의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을 상당 부분 방지해 준다고 봅니다. 다음 글에서는 생각의 층위(혹은 차원)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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