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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Candy Nov 29. 2021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대답들





행복이 진짜 뭐지?



인간이 뇌를 팽팽 돌리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왔지만 절대 풀리지 않았던 하나의 의문이 있다. 바로 인간 존재의 의미이다. 나는 어찌하여 이 별 위에서 태어나게 되었고, 나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은 언제나 철학자들의 첫 번째 골칫거리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삶의 의미를 아직 속 시원하게 찾아내지 못한 인류가 일단 만들어놓은 단어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삶에 진정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모르겠으니, 일단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말이 태어난 것만 같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실 '삶의 의미'와 같거나 거의 비슷하고, 제각기 모두 다르게 행복을 정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을 소개해 드리려고 한다. 지루할 것만 같은 옛날 철학자들의 관점이 아니라, 내 주변인들이 말하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

- 네이버 국어사전의 대답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고 한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상태. 대충 행복은 이런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엄밀하게 사전에 근거해서 말해보려면 '생활', '충분', '만족', '기쁨' 들의 사전적 정의까지 찾아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이건 재미없다.




"불행이 없는 상태? 난 불행하지만 않으면 행복할 것 같아."

- A의 대답



지나친 결핍이 없다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한 군데 크게 부족함 없는 상태를 행복으로 보는 것이다. 돈이든, 인간관계든, 의욕이나 열정이든, 심하게 부족해서 불행한 상태가 아니라면 행복하다는 것.확실히 그렇다. 돈이 무척 많아야만 행복한 인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돈이 심하게 부족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절대 사지 못한다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소박한 의미의 행복처럼 느껴진다.




"행복은 일상에 있지, 치맥."

- B의 대답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일상의 순간들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아마 행복과 관련하여 수많은 강연들이나 명언들이 집중하는 부분일 것이다. 행복은 어디 먼 나라에 보물처럼 꽁꽁 숨겨져 있어서, 그것을 갖기 위해 쉼없이 노를 젓고 달려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가까운 친구와 잠깐 시간을 내서 만난 주말 오후에 깔깔대며 얘기하는 것, 우연히 카페에서 취향저격의 노래를 들어서 하루 종일 그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것, 금요일 퇴근 후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늦게까지 하는 것.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사립 고등학교를 다녀서, 좋은 대학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 스케쥴이 6시 30분에 기상해서 11시 30분에 '정규 공부'가 끝났으니 말 다했다. 그래서 어떤 고등학교 동기는 그 시절을 끔찍하게 싫어하기도 한다.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고. 물론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때로 고통의 시간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빨을 꽉 깨물고, 이해가 안 되는 공식을 외우기 위해 한숨 푹푹 쉬며 힘겹게 공부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내 부모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물론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의 중요성 역시 항상 강조하시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순간들 역시 네 인생의 일부이니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라고 말해주시곤 했다. 그때 즈음에 내 마음을 꽝 때린 글이 또 하나 있었다.


"행복이라는 놈은 적금처럼 조금씩 조금씩 미루고 쌓아두다가 나중에 한번에 크게 돌려받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간다. 그리고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곧 내 삶이 된다. 열아홉 살의 시간보다 스무 살의 시간이 더 값지지 않다. 스물다섯 살의 시간보다 서른 살의 시간들이 더 값지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엄청난 행복으로 돌려받기 위해 지금 불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자칫 뒤통수맞기 쉽다. 나는 항상 지금을 행복하게 살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시절이 너무 행복했다. 되돌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충만해진다. 또 지금 이 순간도 항상 행복하려고 한다. 이것은 복잡하게 생각 말고 일단 오늘을 즐기자는 쾌락주의와 분명히 결이 다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갈고닦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날의 행복을 얻어가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오늘을 쾌락적으로 보내는 사람보다, 취업을 위해,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당신이 덜 행복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째깍째깍 흘러가는 일 초, 일 분, 한 시간,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대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나는 영원히 남는 대작(masterpiece)을 남기고 싶어. 내가 죽어도 이 세상에 남아있는 그런거."

- C의 대답



자신의 행복과 삶이 '엄청난 무언가' 를 향해 있는 사람도 분명 있다. 아직까지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 상대성이론과 중력파 등 물리학을 비롯해 현대과학의 핵심을 제시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과 같은 걸작을 남긴 최고의 극작가이자 시인 셰익스피어 등. 자신의 육신이 썩어 없어진 후에도 인류가 그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도 있다. 여기에서 던져볼 수 있는 한 가지 질문은, "삶의 의미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데에 있다면, 만약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삶은 불행한, 실패한 삶인가?"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평생 인류 최고의 추리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한 땡땡 씨가, 에드거 엘런 포의 추리소설 같은 명작은 커녕 몇 부 팔리지도 않은 추리소설 한 권을 발매하고 삶을 마감했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땡땡 씨의 삶을 실패한 삶, 불행한 삶으로 볼 것인가? 땡땡 씨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죽은 후에 인정받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대표적이다. 고흐는 살아 생전에 단 한 작품만을 판매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한 폭에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미국의 천재적인 시인 에밀리 엘리자베스 디킨슨은 살아 있을 때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여동생이 에밀리의 시를 모아 시집을 출간한 이후에 비로소 인정받게 된다. 문학과 창작에 온 몸을 바쳤던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작가 프란츠 카프카 역시 사후에 인정받았다. 그들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남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힘이, 때로는 영감이, 때로는 슬픔의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땡땡 씨도 마찬가지이다. 땡땡 씨가 눈을 감은 이후에 우연히 그의 천재성이 뒤늦게 주목받아서, 200년 후에는 지구 역사상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추앙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원한(eternal) 걸작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그 걸작을 위해 흘리는 숭고한 땀과 눈물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달성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만서도 엄청난 무언가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는 과정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던 소설의 다음 부분의 내용을 완벽하게 채워 넣고 희열을 느끼는 것. 모든 창작은 그 과정이 가장 빛나기 마련이다.




"행복은 더 나은 상태로의 이전 같아. 항상 나아가는 거지. 난 지금은 그런 갈망이 있나 봐."

- D의 대답



직업적인 성취에 있어서든, 인간관계나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든,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는 것을 행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녀에게는(혹은 그에게는) 항상 갈망하는, 성취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다음 레벨이 필요한 것이다. 상당히 역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간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제보다 나아진 나의 오늘, 저번 달보다 나아진 이번 달, 작년보다 발전된 나의 올해, 10년 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오늘의 나라는 사람을 원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현실에 만족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원하던 것을 달성하면 곧바로 다음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


올해는 XXX원을 벌었으니 내년에는 XXX의 두 배를 벌어야겠다! 내년에는 승진하고 내후년에도 승진해야겠다! 처럼 꼭 돈과 커리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몇 달 전에는 연주하지 못했던 피아노 곡을 이제는 능숙하게 연주해 너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자신의 모습, 스페인어는 전혀 몰랐었는데 이제는 간단한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된 자신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아마 그녀에게도(그에게도) 정체기나 혹은 퇴보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본질적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능력이 감소하는 영역들이 있다. 신체능력이나 두뇌활동이 그렇다. 신체는 특정 시점을 지나면 평균적으로 노화가 시작되고, 이전 만큼의 성능을 내기 힘들어진다. 두뇌 활동 역시 가장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체화하는 시기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를 야구에서는 에이징 커브(aging curve) 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더 못난 상태"로 변해가는 순간이 올 때, 아마 행복의 열쇠는 새로운 것들에 있을 것이다. 결혼하여 아이를 갖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 해답이 될 수도 있고, 직업 분야에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포지션에 오르는 것, 자신만을 위해 쓰던 능력을 남에게 베푸는 것 등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모른다.




"니가 진짜 언제 행복한지 잘 생각해 봐, 말로 표현하기 참 힘들지만 보람 같은 그런 ... 그런 감정들 사이 어딘가에 있는 거야"

- E의 대답



사랑, 보람, 교감, 베품, 나눔, 배려, 우정을 느끼는 순간들에 행복의 해답이 있다는 관점이다. 정말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순수한 행복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취직/돈 버는 것/안정된 생활/내 집 구하기 와 같은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도 그렇다. 나도 엄청난 돈과 좋은 집을 가지고 싶다. 양평에 별장도 하나 가지고 싶다. 차가 있지만, 스포츠카도 몇 대 있으면 좋겠다. 조금 비싸서 일단 캡쳐만 해둔 겨울용 옷도 생각 없이 사고 싶다. 하지만 뭘 위해서 좋은 옷이, 좋은 차가, 좋은 집이 필요하지?  멋진 차가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 좋은 집이 있다면, 그 안에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멋진 파티를 열고 싶다. 돈이 많다면, 내 이름으로 된 재단을 하나 설립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순진하다고 생각하진 말아 주시라. 나 엄청 안 순진하다. 하지만 "그건 뭘 위해서지?" 라는 질문을 계속 해 나아가다 보면, 종착지에는 결국 다른 누군가, 즉 타인이 있다.


결국 행복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이 어딘가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 애인,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전혀 모르는 남을 도울 때 느끼는 뿌듯함도 아마 행복 비스무리한 어떤 감정일 것이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근간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명제가 곧 참이 아니게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로빈슨 크루소는 아마 세상의 가장 좋은 물건들을 전부 다 백 개씩 가져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광을 내다.



행복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분명 모두 조금씩 다를 것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처음부터 완벽한 꿈이 없는 것처럼, 행복도 마찬가지로 미숙하게 시작해도 된다고 위로해 본다. 가끔 생각하고, 남들 앞에서 내 행복은 무엇인지 입 밖으로 꺼내도 보고, 온갖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뜯고 고치고 광을 내면서 조각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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