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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5. 2022

인간수업(2020) #4/7

왜 우리 아이들의 꿈이 곧 돈이 되었는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드라마 <인간수업> 정보

제작 : 스튜디오 329
감독 : 김진민
각본 : 진한새
방송 : 넷플릭스, 2020.04.29.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출연 : 김동희(오지수), 정다빈(서민희), 박주현(배규리), 남윤수(곽기태), 최민수(이왕철), 김여진(이해경), 박혁권(조진우)
[포스터 및 정보 출처 : 넷플릭스]


이쯤에서 다시 묻고 싶다.


왜 우리 아이들의 꿈이 곧 돈이 되었는가?”

누가 우리의 아이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었는가?”


그 이유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분노가 치밀었다.

드라마 시청 후의 감상 후기라기보다는 <인간 수업>을 거울삼아 현실에 비춰낸 생각을, 짧은 식견이지만 느낀 그대로를 적어보려 한다. 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몸부림이라 생각하며.


첫 번째로, 이런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 데에는 어른들특히 사회지도층(이 단어도 참 싫은 말이다. 지도층?)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통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치사는 처음 대통령제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분열의 역사를 걸어왔다.

권력을 차지한 이들은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완장만 차면 지구를 정복이라도 한 듯 권력놀음에 정신들이 없다.

태생 자체가 일본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강대국의 개입으로 시작되면서 그 잔재는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입버릇처럼 5천 년 역사를 자랑삼아 말하지만, 약소국가로서 뿌린 피가 얼마고,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목숨을 잃었어도 분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끝없는 분열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기득권자들의 권력 다툼’이 가장 역할이 크다고 본다.

‘민주(民主)’는 ‘백성이 주인’이라는 의미지만, 그 의미가 무색하게 우리 정치에 백성이 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리고 지역별로 갈리고, 이젠 성별(性別), 세대(世代), 노소(老少), 빈부(貧富), 이념(理念) 등 갈라질 수 있는 모든 형태로 분열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차별과 불공정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런 차별과 불공정은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놓인 금전적 이득만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이 보고 배우는 것은 ‘권력’과 ‘돈’을 가져야만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공정’이라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듣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시기보다 더 불공정한 사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기득권 세력은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죄가 없어도 하루아침에 죄인이 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는 여전히 권력만 잡으면 그것을 유지하는 용도로만 국민을 찾는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말에서의 ‘국민’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정치적 실망과 배신감은 국민적 절망감을 안겨주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기회주의적 기득권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 무관심’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부패를 일삼는 이들이 마음대로 활개 치도록 방치하므로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그것은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오직 ‘돈과 권력만이 남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고 따라서 삶의 목표가 되게 한다. 거기에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게 되면서 ‘생명 경시 현상’까지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인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죽어 나가고 있는데도 오로지 권력유지, 패권 싸움과 독선, 오만, 무능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의 현실이다.


두 번째로는 교육을 꼽고 싶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교육은 미래를 만들어 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올바른 인성’과 ‘윤리’에 대한 가르침에서 멀어졌다.


진실을 탐구하고 참된 의미를 ‘배움’이 아니라 부모(어른)를 위한 ‘성공’으로써의 대리만족,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기 위한 ‘스펙 쌓기’ 단계로 변해버렸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배움터는 어른들의 욕구를 대신 채워야 하는 아바타로 가득한 곳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개성을 잃었고, 잘못된 관행에 항거할 아무런 통로나 힘이 없다. 심지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학교는 이제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남들과 비교 및 평가당할 때 참고할 ‘간판’이나 ‘명함’으로만 남았다.


올바른 가치를 일깨워줘야 할 어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변해가는 세태에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가득해 ‘내 자식만 아니면 돼’라고 방관하고 있다.

늘어가는 빈부격차에 밀려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아이들의 교육이나 미래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배우는 것은 오직 권력과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경쟁’이고 ‘생존’이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것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배워가고 있다.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기에 죄책감도 없다.

본질적으로 느끼는 혼란은 처음이 두려울 뿐 되풀이되면 뭐든 쉬워지고 익숙해진다. 각각의 선택과 결과에 대해서 아이들은 어른 탓을 하고, 어른들은 그저 ‘요즘 어린것들은 싸가지가 없어’라고 말할 뿐이다.


(#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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