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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5. 2022

인간수업(2020) #5/7

망가진 교육, 소비의 대상이 된 아이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드라마 <인간수업> 정보

제작 : 스튜디오 329
감독 : 김진민
각본 : 진한새
방송 : 넷플릭스, 2020.04.29.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출연 : 김동희(오지수), 정다빈(서민희), 박주현(배규리), 남윤수(곽기태), 최민수(이왕철), 김여진(이해경), 박혁권(조진우)
[포스터 및 정보 출처 : 넷플릭스]


아이들의 현실은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당해야 하고 줄 세워놓은 등수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 투성이다. 꿈은커녕 일상을 사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치열해졌지만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낭만이나 우정 따위는 단어로는 아는데 그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아무에게도 배울 수 없으며 경험해보기도 힘들다.

이처럼 ‘교육’은 이름만 남았을 뿐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각자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원하는 바가 있어도 자유롭게 꺼내 놓을 수 없고,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침묵과 강요로 일관되고 있다.

아이들은 혼란 속에서 숨쉬기조차 어렵지만 어른들은 각자의 경제적 이익 추구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도 이미 ‘꿈’이 곧 ‘돈’인 사람들로 자라왔고 겉모습만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하고 멍멍댄다.


이 드라마의 담임선생님처럼 참된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걱정하고 뜻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작은 개인이 혼자서 바꿔내기에는 이미 인식의 차이와 사회적 갈등이 너무 크다는 것도 문제다.

물론 모든 청소년과 기성세대가 다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지는 않겠지만, 세대별로 점진되고 있는 이런 특징은 예전에 비해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어른에 대한 존중이 사라져 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존경’은 꺼낼 수도 없고 ‘존중’마저 바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고 노래했었지만 지금은 ‘담임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담탱이’이고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은 ‘꼰대’ 일뿐이다. 왜냐면 그들이 느끼기에는 ‘그냥 담탱이’이고 ‘꼰대’니까.

어감이 부정적이어서 그렇지 사실 기존 세대에게 강제로 주입된 ‘존경’, ‘공경’보다는 엄청나게 솔직한 거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항거가 아닐까 한다.

‘존경’이나 ‘존중’은 “나 좀 존중해줘”, “난 윗사람이니까 넌 나를 존경해야 한다”라고 압박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교육을 밑바탕부터 다시 살피고 지식 못지않게 올바른 인성과 지혜, 윤리관이나 가치관을 스스로 고민하고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는 거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기술과 문화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다른 세상이다.

새로운 기술과 정보는 인터넷이 생긴 이래로 ‘폭발적’이라는 표현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1999)>의 홍보문구처럼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속도다.

인류의 생활 자체를 바꿔놓은 커다란 사건으로 산업혁명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기술혁명의 입구에 들어서 있다.


인터넷에는 온갖 정보가 넘친다. 정말 없는 게 없다. 만일 인터넷이 하나의 생명체라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공포가 먼저 다가올 것 같다.


인터넷의 확장성은 다양한 전 세계적 문화를 클릭 몇 번으로 뭐든 접해볼 수 있게 만들었다.

넘쳐나는 정보는 현대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악한 본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해 다수 대중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는 점 등, 커다란 단점도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포화상태를 이루면서 이런 인터넷 문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건 청소년과 젊은 층이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왔다.


국내 기업, 해외 기업 할 것 없이 쏟아내는 광고를 피할 길이 없고, 각종 앱마다 토해내는 알림과 문자는 링크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소비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들이 ‘소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에 동참해야만 하고 자연히 ‘돈’이 필요하게 되는 구조가 생겨났다.


통신 기술의 빠른 발달 속도로 인해 이젠 고화질 동영상이 대세다. 조금 더 있으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처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현실처럼 경험할 수 있는 가상세계도 펼쳐진다.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 기술은 이미 많은 기업체에서 활용하고 있고,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 플랫폼과 NFT 등도 빠른 걸음을 옮기고 있다.


SF영화에나 보아왔던 안드로이드 로봇이나 A.I(인공지능)가 많은 분야에서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노동에 대한 개념도 인류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부각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같은 기술은 경제적 ‘투명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익명성은 더 확대시킨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 책임감이나 윤리적인 면은 저울의 평행을 맞추고 있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첨단 기술의 결과물들은 사람의 뇌를 바꿔놓을 수 있다. ‘강한 힘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모토는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6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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