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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5. 2022

인간수업(2020) #6/7

우리의 문자와 언어를 가졌지만 스스로 파괴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드라마 <인간수업> 정보

제작 : 스튜디오 329
감독 : 김진민
각본 : 진한새
방송 : 넷플릭스, 2020.04.29.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출연 : 김동희(오지수), 정다빈(서민희), 박주현(배규리), 남윤수(곽기태), 최민수(이왕철), 김여진(이해경), 박혁권(조진우)
[포스터 및 정보 출처 : 넷플릭스]


대부분의 기술은 ‘문화’를 상품화한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상업성 극대화와 이윤추구만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차후 지금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청소년들이 즐기는 게임의 여성 캐릭터 복장을 보면 어른인 나도 민망하다. 유명한 게임들은 대부분 ‘전쟁, 싸움, 폭력, 선정성, 사행성’ 등을 기본으로 한다.

게임뿐 아니다. 온라인 뉴스 기사, TV 프로그램, 영화, 애니메이션, 카툰, 드라마, 유튜브 그리고 포르노 영상에 이르기까지.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선정적이고, 좀 더 폭력적이지 않으면 상업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노출된 사이버 문화 매체들은 어른이고 아이이고 할 것 없이 알게 모르게 세뇌시키고 교육시키고 있다. 인성과 감정을 말라붙게 만들고 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댐을 붕괴시키듯이, 이런 무분별한 방식의 강제 주입은 인류의 미래에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기술 발전과 문화 확장이 젊은이들에게 ‘꿈’이 곧 ‘돈’이어야 하는 이유로 남는다면, 그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물질을 위한 것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정신이나 감정이 없는 인간은 물질이지 인간이라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언어다.

언어는 따지자면 문화에 속하지만 따로 꺼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인간 수업>의 제작진은, 어쩌면 현실감(리얼리티)을 살린다는 취지로 아이들의 말투를 심층 연구라도 한 것 같았다. 대사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투를 극대화했다.


‘급식체? 급식충? 패드립? 초성체?’


드라마 대사에 나오길래 검색해 봤다. 그 전에는 이런 거에 이름이 붙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세대만의 문화적 특성으로 설명하는 글도 보긴 했는데, 이렇게 소통이 막히고 감정이 막히는 폐쇄적이고, 패륜적인 언어를 청소년들이 일상의 언어로 선택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가만히 보니 이것 또한 위에서 말한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경쟁자들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면 말이라도 쎄 보여야 하니까, 또 자신의 열등감을 쉽게 포장할 수 있으니까.

포식자에게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몸을 부풀리는 약한 사냥감처럼 말이다.


언제 어디서든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얻고 있지만, 정작 인터넷상에 퍼져있는 많은 것들은 편향되고, 단편적이며 올바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중적 검증을 받기보다는 반대로 대중 자체의 생각을 바꿔놓기도 한다.

옳고 그름이나 거짓과 진실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정보는 별로 선호되지 않는다. 유래나 의미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패륜적 팬덤 현상이 되어 의식을 잠식한다.


기본적인 검색을 포함해서 활동하는 모든 인터넷 사용은 대부분 글과 말로 이루어지며, 이는 거대 글로벌 기업에 엄청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무료로 사용한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사실 그 기업들로부터 보상을 받으며 사용해야 할 지경인 것이다.

특히나 나쁜 의미이든 좋은 의미이든 상관없이 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면 그들에게 있어 그보다 좋은 데이터는 없다.

그것은 ‘취향’으로 포장되고, 이는 다시 꼭 갖춰야만 할 것 같은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변해 기업에게는 곧바로 이익으로 치환될 수 있는 가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생태적 특성상 말줄임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았고, 은어나 신조어가 세대적 특성처럼 회자되며, 첨단기술의 제목이나 이름은 아예 우리말로 없는 것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말로 이름 짓는 ‘진짜 신조어’ 작업은 하지 않는다.

옛말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는데, 우리 학계를 보면 옛것은 보수적으로 찾아 열심히 가르치지만, 새로움에 대한 대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그게 편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7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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