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회귀 - 정치·사회편
1972~1974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을 살펴보자.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재선을 위해 비밀 공작단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면서 벌어진 사건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대사건이다.
이 사건은 도청 행위를 시도한 자체도 문제였지만 닉슨과 측근들이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과 그것을 토대로 1972년에 닉슨이 대통령에 재임했다는 데 있다.
잘못된 선택을 했고 모두를 속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이어오던 재판에서 알렉산더 버터필드 前 대통령 부보좌관의 핵폭탄급 폭로로 인해 사건은 재소환되고 재판정은 증거물인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하지만 닉슨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이를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일명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라 불리는 권력 남용을 통해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과 거짓을 덮기 위한 거짓을 이어간다.
결국 테이프 내용을 문서화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으나 불안했던 닉슨은 기록을 자체 검열하는 짓을 저질렀으며 ‘통치행위론’을 앞세우며 정당화하려 했다. 통치행위론이란 ‘대통령이 정무적,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기록의 공개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대통령의 기록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계속 이어갔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8명의 대법관이 만장일치로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아주 유명한 판결인데 그 일부를 인용해보면,
“어떠한 사람도, 심지어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헌법 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형사 재판에서 명백히 관련이 있는' 증거를 보류하기 위한 구실로 대통령의 특권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제출된 테이프 내용에는 닉슨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여 수사 방해를 지시하는 내용이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다. 자신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뒤로 이어진 은폐·공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닉슨의 말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닉슨은 탄핵 위기에 몰렸고 1974년 8월 스스로 사퇴했다.
[참고 : 나무위키]
워터게이트 사건은 현재의 우리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먼저 위에서 닉슨이 주장한 ‘통치행위론’의 내용을 좀 짚고 넘어가 보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대통령이 정무적,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기록의 공개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의 기록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지난 시절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사회적 의문이 넘쳐날 때 대통령기록물을 둘러싼 공개 요구에 되돌아온 답변과 거의 같다. 권력이 악용된 사례라 볼 수 있다.
또한 FBI와 CIA의 정상적인 수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나선 워싱턴 포스트라는 언론, 목숨을 걸고 생방송에서 핵폭탄급 폭로를 한 대통령 측근,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거부한 법무부 장관 및 대행자, 닉슨의 사람들이 절반임에도 올바른 판결을 한 대법원 등.
지극히 양심적이고 정상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로 인해 세기적 부정부패와 거짓은 진상이 밝혀질 수 있었다.
이 부분은 현재의 국내 상황과 비교해봤을 때 정말 안타깝고 뼈아픈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꼭대기부터 아랫단까지 정부 전체가 썩어 있어 어떤 변화의 기대 자체가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사하는 바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공감하는 내용이 바로 ‘권력자의 거짓말’이다. 솔직하게 진실을 밝히고 거기에 합당한 책임을 졌다면 됐을 일이 대통령의 거짓말로 인해 커진 것이다. 재선을 위한 정치공작 행위 자체보다 그 후에 행해진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은폐하기 위한 갖가지 음모와 비리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닉슨은 모든 미국민은 물론이고 여권까지 등을 돌렸을 뿐 아니라 세계 정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치욕적인 인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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