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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권력자 #3/5

일상으로의 회귀 - 정치·사회편

by 마지막 네오

03. 왜 우리나라는 올바른 지도자가 나오기 어려운가?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숨기고 싶은, 지우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일명 ‘흑역사’로 남겨진 과거의 순간이라던가, 잘못된 선택, 어처구니없는 실수 등등.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한다. 실수하고 실패해야만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실수나 실패, 좌절 같은 부정적 이미지도 인간에게는 소중한 경험이며 배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실수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는다.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거짓으로 덮기 급급하기 때문에 반성이나 참회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가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어리석은 행동으로 빚어진 잘못을 거짓으로 덮으려 권력을 남용하는, 또 다른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은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은 곧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국민적 자존감을 잃게 만들고, 차후에는 탄압과 공포, 혼란과 절망을 겪으며 좌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반복해서 거짓을 일삼는 지도자가 나오는 걸까?


요즘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려움이나 시련 없이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 사람을 ‘금수저’라고 부른다. 금수저는 부러움도 있겠지만 보통은 비꼬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을 ‘흙수저’라고도 한다. 이 역시 동정하는 의미보다는 멸시하는 말이다.


태생에서부터 벌어진 간극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된 사회, 개천에서 절대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가 되면서 생겨난 말들이다.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소위 ‘사회지도층’ 또는 ‘고위직’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수저 출신이다. 학연이나 지연으로 끼리끼리 얽히지 않고서는 그들 틈에 설 수 없도록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그들은 서민의 삶을 모른다. 살아오면서 멸시와 천대를 겪어본 일도 없고, 부족함이나 눈치를 보는 것도 모른다. 인간적 공감이 부족한 것도 그들의 성장 과정을 토대로 추측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말로는 ‘공정, 평등, 공평’을 외치지만 자신들은 누군가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이중적 가치관을 가졌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 그렇다는 것이다. 물질적·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별 걱정 없이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살아온 그런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자리에 앉아있다. 그들이 위로 올라가는 방식은 권력자에게는 자신의 간이라도 떼어줄 것처럼 굴면서 약자는 철저하게 배제하는 방식이다.


이를 보면 우리 정치가 서민의 삶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들은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사실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직(職)은 ‘맡은 소임’이 아니라 권력이자 힘일 뿐이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마음껏 휘둘러도 좋은 칼날 정도로 여긴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은 그 칼날의 휘두름에 이는 바람결에도 위협을 느낀다.

그들은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있다. 또한 권력으로 모든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직위를 통치자로 인정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완장을 차는 순간, 배지를 가슴에 다는 순간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서 감히!”라는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족속들인 것이다.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니 세월이 지나도 훌륭한 지도자는 나오기 어렵다. 권력을 움켜쥔 권력자의 거짓에 현혹된 절반의 국민들에 의해서, 더 절실한 사람들의 선택은 ‘거짓된 민주주의’의 허울에 밀려 매번 좌절되었다가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야가 뒤바뀌는 반복은 제자리 내지는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전 정부와 반대의 이념을 가진 지도자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에서 해오던 모든 것을 부정해버리고 반대되는 정책으로 채워나간다. 또 바뀌면 잘못된 것을 정정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지도자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거짓’에 있다.

권력을 움켜쥔 어리석은 자로 인해 거짓이 생겨나고 그 거짓으로 선동된 사람들이 늘어나 세력을 만들고, 다시 거짓에 동조하는 세력은 사회적 대립을 만들어내고, 그런 정치적 대립은 급기야 사회 전반의 대립으로 확장되어 소모적인 정쟁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환멸을 느끼며 정치에 관심을 꺼버린다. ‘나라를 팔아먹든 나라가 망하든 자신의 이익만 보장된다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해진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불안에 떨며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삭막한 사회, 각박한 삶이 계속 이어진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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