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회귀 - 정치·사회편
눈앞에 골치 아픈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보자. 중요한 사회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마련이다. 다수의 생각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어떤 흐름으로 만들어지고 여러 의견들 중에 가장 힘 있는 의견이 다른 의견들을 취합해 나가면서 ‘여론’이라는 것으로 변해간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자연스러운 여론화를 싫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치부나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아예 그 바탕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거나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무엇인가를 터뜨리는 방법이다.
그것은 내용이 충격적일수록 효과가 있다. 충격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일반 시민들의 삶에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고, 말도 안 되는 거부감을 만들어낸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연속해서 벌어지면 그것도 일종의 사회현상처럼 굳어지고, 이전에 중요하게 풀어가야 할 많은 것은 망각된다. 연속적인 프레임 전환은 거기에 익숙해져 웬만한 사건 사고에 둔감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어린 유아들이 학예발표회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아이 1이 열심히 춤을 추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가져가고 있을 때, 뒤이어 아이 2가 등장한다. 아이 2는 연습한 대로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며 자기 역할을 연기한다. 새로 나타난 아이 2에게 시선이 모이면서 관객들은 금방 아이 1을 잊는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이들의 역할극에 대하여 칭찬하기 위해서 자리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아이 1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쏠려있던 관심이 아이 2에게 몰리는 것이 싫다.
이것은 나이를 떠나서 인간의 본성이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아이 1은 자신에게 관심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더 눈에 띄는 과장된 동작을 하거나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심과 호응이라는 것은 객관적이라서 쉽게 바뀌지 않으며, 혹독하리만큼 실력과 표현, 감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객관적으로 평가된다. 아이 1이 아이 2에게 몰린 관심을 자신에게 되돌리려는 과장된 행동임을 모두가 금방 안다. 동정과 비웃음이 생겨날 것이다. 아이 1의 노력은 결국 스스로 열등감과 더불어 한계점을 맞이하고 관객들의 웃음을 비웃음으로 여기며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처해있는 현실을 프레임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있다.
아이 1은 능력이 된다면 아예 바탕 프레임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애초에 아이 2가 등장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고, 조명이나 연출 등을 조작해서 오히려 아이 2의 등장이 아이 1을 돋보이게 하는 한낱 부품에 불과하게 처리할 수도 있다.
이처럼 프레임이라는 것은 현실적 시각을 잃게 만들 수 있다. 어떤 힘과 권력에 의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엉뚱하고 부자연스러운 시점에 매몰되어 사고를 그 범위 안에 가둔다. 그것이 바로 프레임의 힘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진실을 본다. 그러나 이 프레임이라는 형식의 틀에 갇히고 그 안에 빠져 논쟁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본질은 사라지고 잡다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사회적 사건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 사람들에게 결과만 기억으로 남을 뿐 최초의 원인이나 과정은 잘 기억되지 못한다. 프레임 전환에 의해 원래 문제가 되었던 과정의 세세한 스토리는 기억되지 않고 기억하기 쉬운 결과만 남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판단은 세부적으로는 맞는 판단이라고 해도 결론은 잘못된 이해로 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질이 사라지고 엉뚱한 방향으로 조작된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바로 ‘김학의 사건’이다.
먼저 사건의 본질과 내용은 이렇다.
김학의는 2013년 3월 박근혜로부터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다. 그가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자 한 동영상이 정치권에 돌게 되는데,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에서 김학의를 포함하여 전현직 고위급 관료 7명, 전직 국회의원과 병원장 2명, 언론사 간부 2명이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포함한 유린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이 녹화된 동영상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피해 여성 중 한 명으로부터 “김학의 차관을 접대했다”는 진술도 받았고, 동영상까지 확보했다. 또 30명의 피해 여성 중에 5명이 여대생이었다는 점, 그녀들 대부분이 윤중천의 속임수에 넘어가 참여했다가 결국 폭력과 협박에 의해 최음제, 마약 등을 복용했고 그런 상태로 성접대에 강제 동원되었다는 점, 이런 광란의 파티가 원주시 별장뿐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점 등 확실한 증거와 증언, 증인 등 모든 것이 밝혀진다. 김학의는 결국 6개월 만에 차관직을 사퇴했다.
2013년 7월 18일, 경찰이 “동영상 속 인물은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확정 발표하고, 김학의와 윤중천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강간죄’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한다. 그러나 이렇게 범죄 증거가 충분함에도 검찰은 2013년 11월 김학의와 윤중천에 대해 특수강간 사건과 관련하여 잇따라 무혐의 결정을 내린다.
‘본인들이 혐의를 부인한다는 점, 동영상 속 여성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이 이유였다. 이 과정에는 가택 수색도, 계좌 수색도 없었다. 수사 착수 전에 자살한 피해자가 있었는데 유서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도 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총장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김학의를 검찰이 의도적으로 봐주었다는 의혹만 남긴 채 이렇게 1차 조사가 마무리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