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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Feb 14. 2023

스위치(2023) #2/6

비슷하지만 다른 디테일의 차이

☞ 스포일러는 그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걱정되시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출처 : https://movie.daum.net]

코미디와 드라마라는 장르의 커버로 두루뭉술 표현된 비현실은 또 있다.

수현은 이처럼 근사한 집도 있지만, 화실에서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고, 최대한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사실 작가 자신이 절대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자기 주변을 그렇게 정리해 나간다.

두 아이의 엄마인 수현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주부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로서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이들의 입장은 어떨까? 엄마는 그림을 가르치고 아빠는 어쩌다 잡히는 단역 배우가 직업인 상황에서, 쌍둥이 아이들은 근거 없이 너무 해맑고 밝다. 거기까지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한들 필자가 아이들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아빠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동안 알고 있던 아빠가 아니라 마치 남처럼 이상하게 행동하는데도 아이들은 생각 없고 철없는 행동만 일삼는다. 이게 가능할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감수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모 사이에 약간의 이상기류만 흘러도 당사자인 부부보다 아이들은 먼저 그것을 안다. 알뿐만 아니라 어른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느낀다.

영화 <패밀리 맨>에서 잭의 딸 애니가 보여주던 불안감을 <스위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영화 <스위치>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선뜻 입체적이지 않다. 이것이 정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행복한 모습으로만 그려질 수 있는 상황일까?

마치 ‘우리 이렇게 행복해요’를 보여주기 위한 인공적인 행복처럼 보이는 것은 삐뚤어진 나만의 시선일까?


끝이 아니다. <패밀리 맨>이 ‘한 남자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살아온 삶에서, 만일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서 풀어내고 있다면, 영화 <스위치>는 ‘잘나가는 톱스타가 만일 그때(오디션) 선택받지 못했다면, 그래서 두 남자가 서로 사회적 위치가 뒤바뀐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시작됐다.


<패밀리 맨>의 경우에는 ‘상대’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한 남자가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를 상상할 수 있는 반면, <스위치>에서는 ‘상대(오정세)’가 있기 때문에, 오만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보다는 무엇인가 정당한 내 삶을 타인에게 빼앗겼다는 분노를 느껴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박강은 별다른 의심 없이 너무 쉽게 승복하고 낯선 생활과 가족 안에 정착한다.


아니, 아예 시작부터 문제가 있다. “왜 박강은 자신의 허물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선물로 받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박강이라는 인물이 살아온 삶을 돌아봐도 “왜지? 어떤 자격으로?” 하는 의문이 든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출처 : https://movie.daum.net]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충분히 베풀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욕심에 갇힌 노인 스크루지가 있다. 덧없는 욕심을 버리고 세상 가난하고 힘든 자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덧붙여 한 개인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이야기다. 스크루지는 타인에게 베풀면서 모두와 함께 할 때 자신의 영혼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패밀리 맨>의 잭 역시 감성을 닫고 일에만 몰두하다가 가족을 경험하면서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박강은 오만한 톱스타이긴 하지만 스크루지에 비해 젊다. 현실에서 스스로 깨칠 기회가 아직 있는 사람이다. 또한 박강은 잭과 달리 자신이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익숙해진 생활에 안주한 것이다. 박강이 놓친 것은 수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즉 오디션에 선발된 이후에도 얼마든지 거만해지지 않고, 수현과의 사랑도 알콩달콩 피워내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선택이라고 한다면 수현과 헤어지는 선택을 한 부분인데, 영화에서는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수현을 버렸다는 설명이 없다.


어리석은 점에서는 스크루지나 잭, 그리고 박강 세 사람이 모두 같지만, 어리석은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가 다르다.


또 다른 차이는 스크루지가 구두쇠라고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는다. 잭이 일에만 몰두한다고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는다. 반면, 박강의 오만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기적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패밀리 맨>에서 잭의 경우에는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저버렸다는 죄책감이 기적에 대한 당위적인 역할을 한다. 영국 런던과 미국이라는 거리감이 만들어낸 필연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스위치>의 박강은 <패밀리 맨>의 잭이 던졌던 대사처럼 ‘필요한 것이 없다’가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이미 알고 있다. 그의 오만함은 거기에 대한 자기 나름의 반항이자 표현이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은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며, 꼭대기에 올라앉은 대스타의 고독일 뿐이다. 즉, 몰라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죄책감 따위가 작용한 것도 아니다. 움켜쥔 기회를 타고 올라가면서 감내하며 그 자리에 선 것이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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