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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Feb 14. 2023

스위치(2023) #3/6

당위성 없는 혜택의 잔혹함

☞ 스포일러는 그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걱정되시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내부 기둥에 수현과의 추억이 담긴 낙서가 남아있는 껍데기집에서 매니저이자 친구인 조윤이 수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박강은 ‘죽을래?’라고 대꾸한다.

<패밀리 맨>의 잭은 바쁘게 살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반면, 박강은 기억하고 있고, 씁쓸한 추억으로 가슴에 담고 산 것이다.


박강이 수현에게 ‘우리 헤어지자’고 말하는 짧은 장면도 두 사람의 이별이 영화의 전개와 얽혀야 할 당위성이 부족하다. 이 장면에서 박강은 톱스타가 되기 위해 수현을 외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지만, 박강이 영화배우의 길을 걷는 것과 사랑하던 연인과 이별해야 하는 이유가 무슨 연관성이 있나? 여자친구가 있으면 영화배우로 데뷔할 수 없는 것이던가?


<패밀리 맨>의 잭과 같이 선택한 인생이 아니라, 오디션에서 박강이 선발되었느냐 조윤이 선발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졌을 법한 상상은 재미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가족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오만하고 괴팍한 삶을 살아온 박강의 삶이 옹호받을만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택시 운전사가 박강의 아버지라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의미를 억지로 갖다 맞추기 위한 설정에 불과했다고 본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아무런 당위성 없이 갑자기 아버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나타나 “지금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나요? 만약 선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와 같은 대사를 남발하며 불행해 보이는 아들에게 깨우침을 얻을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종종 있는 가진 자들의 ‘아빠 찬스’, ‘엄마 찬스’와 무엇이 다른가?


더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채 소외되고 밀려나 있는 사람들이 영화의 이런 부분을 눈치채고 알게 된다면, 크리스마스고 나발이고, 신이고 기적이고 간에 ‘야~ 영화에서조차 사람 차별하네!’ 하며 절망에 휩싸일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의 소중함. 즉 가족의 의미를 깨닫도록 의도한 것이라 해도 타당하지 않은 면이 있다.

박강이 자기 아들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 혜택을 받을 자격이 무엇인가? 사실 혜택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종의 실험 같기도 하다. 실체가 아닌 감정을 느끼게 했다가 현실로 돌려놓는 건 너무 잔혹한 짓이다. 만일 현실로 돌아온 박강을 수현이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하이브미디어코프 [출처 : https://movie.daum.net]


코미디 영화에 대해 너무 다큐멘터리적인 평을 한다고 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코미디 영화니까 코믹하게 풀어가야 한다. 맞는 말이다.

코미디 영화에서 슬픔에 가득 찬 진행이나 무겁고 진중한 사건 전개가 이어진다면 장르를 다시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개념은 있어야 한다.


코미디나 개그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웃게만 만드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다른 작품들처럼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그래서 밝은 웃음은 그 안에 감동이나 교훈적인 코드가 숨겨져 있어야 하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와닿을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스위치>의 바탕은 <패밀리 맨>의 잭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면서 자기가 이룩해 온 업적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가족’을 꿈꾸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임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박강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이전의 자기 노력도 있었겠지만, 오디션 발탁을 받아들여 전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그 차이는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조윤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디션 이후로 톱스타가 되기까지의 개인적인 노력을 무시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면 톱스타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그가 헤어졌던 옛 애인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하는 바람은, 그래서 지지고 볶는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전개는 배부른 자의 욕심이자 오만함의 극치일 뿐이다.


영화는 한술 더 떠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 된 박강에게 배우로서의 성공까지 열어준다. 따라 하기에 치중한 나머지, 이 장면에서도 모순적인 행태는 이어진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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