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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Feb 15. 2023

스위치(2023) #4/6

모순, 막말 그리고 호소

☞ 스포일러는 그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걱정되시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출처 : https://movie.daum.net]


배우로서 인정받은 박강에게 조윤은 자신의 집을 내어준다. 아무리 대스타의 친구라 해도 조윤의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다른 건 몰라도 자기가 살던 집을?


아무튼 그런 연유로 조윤의 집에서 박강과 수현이 말다툼하는 장면도 <패밀리 맨>의 비슷한 장면과 대비된다.


<패밀리 맨>에서 케이트는 그동안 지내왔던 아이들과의 안정된 행복을 지키기 위함이라 말하면서도 잭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위치>의 수현은 다르다.


집주인이 전세금 올려달란다고 박강을 압박한 것은 수현이었다. 이런 의식으로 보건대, 고급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는 형편이 된다면 수현은 박강과 다툴 것이 아니라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해야 한다.


한국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서울로, 서울로!’를 외치는 사회구조에서 살고 있다. 화실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 또한 비현실이라 하겠다.

부정한 행동으로 이뤄낸 일도 아닌데, 수현은 눈을 치켜뜨며 “이제 조금 뜨고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벌써부터 정신 못 차리는 거야? 오빠가 무슨 지금 조윤이라도 된 줄 알아?”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박강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배우가 조금 뜨고 사람들이 알아보면 좋은 것 아닌가? 그만큼 노력했고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니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다.

또한 친구이자 톱스타인 조윤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말하며 남편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가? 남편이 됐든 남자가 됐든, 아니 성별을 떠나서 봐도 정말 부적절한 막말이다. ‘존중’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취한 태도를 보면 수현은 결코 현명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혹시? 이런 점 때문에 과거의 박강이 수현에게 헤어지자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랬다면 적어도 모순적이지는 않으니까.


©㈜하이브미디어코프 [출처 : https://movie.daum.net]


여기에서 우리 사회의 ‘막말’에 대해서도 잠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막말’이라는 단어는 무작정 부정적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정치인들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막말이나 욕도 필요에 따라 있어야 할 말의 한 형태다. 막말이든 욕이든 마구 퍼부어줘야 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 없었다면 화병으로 여러 사람 죽었을 거다.


보통 어떤 사람이 순간 느끼는 감정에 따라 생각 없이 마구 내뱉는 말이 막말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막말은 솔직하다. 모두가 고귀한 척하지만 마음속엔 누구나 막말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막말을 내뱉은 사람은 어찌 보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무모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다.


따져볼 부분은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먼저 영화 앞 장면에서의 박강과 같이 거만하고 오만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뱉는 막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 약자가 기득권 세력이 들어주지 않거나 무시할 때 하게 되는 막말도 있다. 이 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막말은 ‘갑질’이라 불리는 태도와 행동을 수반한다. 사회적 해악이자 말 그대로, 의미 그대로를 담은 ‘막말’이다.


반면에 자신의 억울함을 어떻게 호소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방법을 찾지 못해 답답해서 내뱉는 막말이 있다. 대부분 기득권 또는 권력자를 향한다. 이는 사실 ‘막말’이 아니라 ‘호소’라고 해야 옳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떠나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약자의 외침은 쉽게 묻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강한 어조나 극단적 행동으로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런 말을 막말이라고 폄하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막말로 평가하는가? 왜, 더 이상 다른 방법으로는 안 되니까 최후의 방법으로 외치는 호소로 인식하지는 못하는 걸까?

소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권력자 혹은 학식 좀 있다는 작자’가 “저… 저것들, 저 돼먹지 못한 막말하는 것 좀 봐라!”라고 말하면, 그 순간 약자들의 호소가 막말이 되어버리는 얄팍한 여론몰이가 너무 쉬운 사회. 이거 정상인가?

좀 옆으로 샌 얘기 같지만, 한 번쯤 깊이 숙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덧붙이자면, 수현이 오버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취지로 말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말이라고 생각된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그럼에도 어이없게 박강이 먼저 ‘미안하다’며 수현에게 사과한다. 수현은 ‘뭐가?’라고 확인하고 박강은 뻔한 대사를 이어간다.

‘이거… 뭐냐?’ 하는 황당함은 나만 느낀 것인지, 영화 평점란에 달린 댓글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런 지적은 전무하다.


(#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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