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시대, 불평등의 시대에 대한 외침
한석규(김사부 역) / 진경(오명심 역) / 임원희(장기태 역)
변우민(남도일 역) / 김민재(박은탁 역) / 윤나무(정인수 역)
유연석(강동주 역) / 서현진(윤서정 역) / 서은수(우연화 역)
양세종(도인범 역) / 장혁진(송현철 역) / 주현(신명호 회장 역)
태인호(문태호 역) / 이채은(지간호사 역) / 이철민(아린 아빠 역)
김준원(최감사 역) / 신승환(웹툰 작가 역) / 황찬성(영균 역)
김혜은(신현정 역) / 김혜수(이영조 역)
김홍파(여운영 역) / 최진호(도윤완 역) / 서영(주지배인 역)
“불의의 시대, 불평등의 시대, 불만과 불신으로 가득한 시대.”
<낭만닥터 김사부> 첫 회는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한 2016년 11월. 당시 현실의 대한민국 사회가 어떠했는지는 굳이 이어 붙이지는 않겠다. “불의(不義), 불평등(不平等), 불만(不滿), 불신(不信)” 등 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는 대한민국의 어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상이 아니라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고착되어 버린 이미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고착은 이제 어떤 한 개인이나 작은 힘으로는 바꿔낼 수 없는 규모로 자리한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렇게 견고한 세상을 향해 미약하나마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은 힘으로는 바뀌기 힘든 세상이라는 고정관념마저 부끄럽게 만드는, 아무리 견고한 바위라 해도 언젠가는 작은 물방울에 부서진다는 진리. 그것은 김사부가 아직 부용주일 때, 어린 강동주에게 말하는 다음 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통속적인 대중문화 형태의 단면을 벗어난 부분도 있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는 고리타분한 역대 드라마의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도 많다.
대리만족으로 만족해야 하는 ‘영웅물’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연애·멜로’ 드라마이며, 감정에 호소해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적인 요소도 여전하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나 <굿 윌 헌팅>(1998)에서처럼 멘토와 천재의 성장기를 그려낸 매력적이지만 일반인과는 크게 동떨어진 판타지라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
이런 생각에서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낭만닥터 김사부>는 절대로 순수한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가 나오고 환자가 나오고…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시점의 메디컬 드라마 같지만, 그 속내는 우리나라 드라마 특유의 문제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주인공이 판사나 검사면 법정에서 연애하고, 주인공이 빵집을 운영하거나 카페를 운영해도 주어진 공간에서 주인공들은 일단 연애에 빠진다. 기·승·전·멜로가 우리나라 드라마의 고질적인 한계다.
그렇다고 이런 고질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인물들 간의 연애 감정을 아예 빼버리라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전체적인 흐름에 적절해야 하고 가장 커다란 주제에 합일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잊혀가는 과거 한 시대에 획을 그었던 ‘신파’나 ‘망향의 정서’처럼, 자유연애는 ‘자유’를 대표하는 이미지처럼 굳어져 왔고, ‘가십’이라는 사회적 소비재로써 더없이 훌륭한 몫을 했기 때문에 그러했다. 사람들은 뒷전에서 구시렁거리지만, 모험을 감행하기 힘든 드라마 제작자는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서 상품으로 소비되는 대중문화로써 그 흐름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상품화된 대중문화 역시 경쟁과 생존이라는 똑같은 그릇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시청자의 수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에 따른 콘텐츠의 질이기도 하며, 우리 문화의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불의’와 ‘불평등’을 등지고 속세를 떠나 은둔의 길을 선택한 ‘부용주’가 강동주와 윤서정이라는 ‘모난 돌’들을 선택하고, 그들의 스승이 되어 자기가 겪었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할 수 있도록 자립을 돕는 과정을 그려냈다.
현실의 시대적 흐름 안에 가장 겉으로 드러내고 싶은 비판적 주제와 대중문화 상품으로써 재미를 모두 잡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드라마가 소설 못지않게 문화적인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시청자에게 공감을 자아내야 한다. 그래도 최근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세태를 담으려는 추세는 아주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대중문화도 메시지를 담고, 시청자들의 무의식적인 흐름 안에 유익한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 고심한다는 부분에서 너무나 환영한다.
문제는 상업적인 흐름과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을 때의 줄타기에서 발생한다. 어울리지 않는 두 시점을 동시에 한 작품에서 표현해 내야 한다는 것은 드라마 작가들에게 가장 어려운 고민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경우에는 시즌1의 시작점부터 그 색깔을 강하게 내보였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은 2016년 11월 7일에 시작해서 2017년 1월 16일까지 총 20부작으로 방영되었으며, 당시 권력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박근혜였다. 물론 제작 기간을 고려하면 이런 사회적 변화를 예상하고 메시지를 담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의 사회·정치적인 부분은 좀 더 미시적인 부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움찔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으리라. 정치라는 건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은 아니다. 보통 문화와 정치를 구분 지어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치는 총체적인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론적인 사건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점에서 문화의 한 요소로서 중요하다 하겠다.
1990년 8월 23일, 한겨레신문 14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충격 안겨준 공중전화 주부 살인 사건”(이상기 기자)
기사에 따르면 한 20대 남자가 공중전화를 오래 사용한다고 따지는 여성의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는 뉴스다.
당시에는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중전화 사용 시간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뉴스일 수도 있지만, 정치가 사회 전반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단적인 예로 설명하기 위해 찾아보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이 뉴스가 정치 또는 사회와 무슨 관련이 있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무의식적 변화를 잘 짚고 있어 꺼내 보았다.
기사의 끝부분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사회가 불안해져 폭력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심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현상의 일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현상에도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심리적 충동이 가능해지고 사람이 죽는 일까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묻지 마’가 아니라 명확한 원인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차별과 불공정,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는 압력이 꽉 찬 압력밥솥과 같다. 분노가 빠져나갈 틈새는 결국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헤집으며 이런 결과를 불러온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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