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이랬다.
2011년 9월, 강동주는 이미 병원 내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상태다. 노력한 만큼 실력도 늘었지만 동시에 독선과 고집도 늘었다. 강동주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캐릭터다. 누구도 자기를 쉽게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말한다.
기존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고, 사회 내 조직 체계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성격이다. 그러나 틀린 말보다 옳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이기에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문제는 자기 지식을 기반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과 성급한 오류,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독선적인 태도가 문제다. 물론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에 본인은 그런 과오를 생각하지 못한다.
강동주는 인턴이지만 선배 의사인 윤서정에게 먼저 온 환자와 응급환자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자신의 과거 그림자에서 생겨난 감정적 판단이 앞선 것이다.
철근이 복부를 관통한 응급환자가 들어오고, 당황한 윤서정은 선배 문태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수술실에서 우아하게 집도 중이던 문태호의 지시에 따라 사태를 수습하려는 찰나, 환자의 몸에서 철근이 빠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총알이 되었든 철근이 되었든, 사람 몸을 관통한 경우는 실질적인 조치 바로 이전에 원인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뻥 뚫린 구멍으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칠 것이기 때문이다.
다급한 나머지 윤소정은 응급실에서 개복 후 검지로 출혈 부위를 찾아 눌러 잡아낸다. 바로 강동주가 윤소정에게 호감을 보이게 되는 순간이다.
힘든 순간이 지나고 문태호가 윤소정에게 던지는 ‘수고했어’라는 한마디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위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최악의 수단이었지만 말이다.
이 일로 ‘미친 고래’라는 별명에 덧붙여 ‘검지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달며 동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치솟았는지 모르지만, 윤서정은 강동주가 먼저 살펴달라고 부탁했던 응급환자를 살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엄청나게 혼이 난다.
윤서정은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에게 보복하는 방법으로 모든 진상 환자를 강동주에게 맡긴다. 부당함을 따지는 강동주와 버릇없는 인턴 후배를 교육하려는 윤서정 사이에 불꽃 튀는 순간들이 오간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윤서정은 강동주에게 응급실에서는 들어온 순서가 아니라 위급한 순서라며 설명하며 선배다운 태도로 풀어나간다.
그러다가 강동주와 윤서정은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수술실에서 손발을 맞추어 위기를 넘긴다. 겨우 살려낸 환자에게 의사로서 참다운 모습을 보이는 윤서정을 지켜보던 강동주는 뿌듯했다. 그러나 성취감도 잠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위험한 선택을 감행한 윤서정에게 돌아오는 건 실책에 대한 책임 추궁과 질책이었다. 강동주는 혼자 울고 있는 윤서정을 위로하다가 마음을 고백하며 입맞춤까지 해버린다.
자기 할 말은 가감 없이 내뱉는 스타일답게 강동주는 애정 표현도 강력하게 직진한다. 하지만 윤서정은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며 거부하고, 그 당사자인 선배 의사 문태호의 차량에 올라탄다. 문태호는 차에서 반지를 선물하며 결혼을 언급하는데, 뜻밖에도 윤서정의 야릇한 말에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 달려오던 트럭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한다.
병원으로 실려 온 윤서정은 걱정하며 달려온 강동주에게 자기보다 문태호를 먼저 봐달라고 부탁한다. 강동주는 내키지 않았지만, 윤서정의 간절한 부탁 때문에 문태호를 찾아간다. 그러다가 문태호와 진 간호사(이지연 연기)가 비상계단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화가 나서 그냥 돌아선다. 문태호는 진 간호사와 윤서정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것이다.
그때 문태호가 갑자기 쓰러져 즉사하게 되고, 자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자책하던 윤서정은 말없이 병원을 떠난다.
강원도의 산을 헤매던 윤서정은 굴러 넘어져 발목을 다친다. 윤서정은 꼼짝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자기 처지를 비탄하며 울다 보니 밤이 되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때, 밤길을 지나던 김사부가 윤서정을 구해준다. 김사부와 윤서정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1화를 한번 정리해 보았다. 자칫 개그나 다큐멘터리 장르로 흘러갈 위태로움이 느껴졌던 이후 다른 화들에 비해 비교적 가장 안정적이면서 빠른 전개가 이루어진 1화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몇 가지 꼬투리를 잡자면, 강동주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부각하는 방법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드라마의 배경과 시대를 운운하며 드러냈던 설정 안에서 선배의 심부름을 거부하는 태도나 맞서는 태도가 가능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한 차라리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더라면 더 낫겠다 싶은 부분이 바로 진 간호사와 문태호의 관계였다. 의사와 간호사라는 직위 관계에도 불구하고 애정 관계를 형성했다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이야기는 문태호가 윤서정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결혼을 언급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변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이 부분은 특별한 전개나 마무리 없이 문태호의 죽음으로 끝맺어버린다. 차후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 간호사와 윤서정의 만남에서 예상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결론짓고 만다.
드라마 전반에서 빌런 역할을 하는 도윤완 원장은 청소년 만화나 DC 또는 마블 코믹스에서 나오는 악당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난 악당이다. 반면, 실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악은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이분법적인 악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왕 불의의 시대, 불평등의 시대를 외치면서 거창하게 시작했다면, 겉모습은 점잖은 신사의 모습이면서 속내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문태호의 행태를 좀 더 신랄하게 비추고, 성적 피해자로서 여성에 대한 현실도 비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이야기 전개 과정상 윤서정이 끝내 문태호의 진상을 알지 못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해야 하므로 이렇게 처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적으로 상당히 크고 예민한 반응이 터져 나올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출연진 소개란에도 나오지 않을 만큼 존재감 없는 조연이라서 그들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건 드라마 비중의 문제로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했겠지만, 그에 비해 상당히 사회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사건임에도 환자의 사연만큼도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간접적 대사로 처리하여 아예 풍문처럼 처리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4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