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1/3

01. 프롤로그

by 마지막 네오
책 제목 :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저자 : 고영성
출판사 : 스마트북스
2015년 12월 30일에 발행된 전자책




01. 프롤로그


먼저 이 책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독서에 대한 학습서이다.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책 제목처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이고 경험론적인 방법론이다.


차례를 간단히 정리하면 총 10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각 파트는 읽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다.


파트1. 독아(讀我) : 나를 읽다

파트2. 다독(多讀) : 많이 읽다

파트3. 남독(濫讀) : 다양하게 읽다

파트4. 만독(慢讀) : 느리게 읽다

파트5. 관독(觀讀) : 관점을 가지고 읽다

파트6. 재독(再讀) : 다시 읽다

파트7. 필독(筆讀) : 쓰면서 읽다

파트8. 낭독(朗讀) : 소리 내어 읽다

파트9. 난독(難讀) : 어렵게 읽다

파트10. 엄독(奄讀) : 책을 덮으며 읽다




먼저 저자를 소개하는 부분과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저자가 2007년 세계금융위기 이전에는 독서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경제 관련 도서를 열심히 읽었고, 독서에 재미를 붙였으며, 1년에 300권 읽기라는 대단한 일을 실행하면서, 이후 책 읽기의 관심 분야가 점차 확장되어 그것이 북 큐레이터가 되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 글을 쓰는 작가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프롤로그의 첫 시작은 “독서법 강의를 해 주시겠어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독서법’, 말 그대로 ‘책 읽는 방법’이다. 이후 작가는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질문들을 나열한다.


① 독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② 독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③ 어떠한 독서법들이 있는가?
④ 모두에게 효과적인 독서법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⑤ 어떻게 하면 진정한 독서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독서법 관련 책들에서 말하는 ‘나에게도 좋은 것이 너에게도 좋다’라는 식의 보편적인 책 읽기에 대해 언급하며, ‘보편성’에 대해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가 없으므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빠져있는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 “내가 쓰자”로 이어지면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이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책에서 흔히 말하는 ‘나는 이렇게 독서해서 효과를 보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효과’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짧은 문단에서 찾아낸 단어를 조합해 어림하건대, ‘세상을 바꿀 리더’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첫 질문인 “독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세상을 바꿀 리더가 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정도의 대답이 되는 것일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바꿔야 하지? 또 바꾼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등등 줄줄이 질문이 떠오른다.


복잡하다. 그냥 단순화해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한마디로 ‘보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 다시 말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저자가 말한 ‘과학적인 최소한의 근거’는 일단 제쳐두고, ‘세상을 바꿀 리더’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좀 아이러니한 대답일 수 있겠지만, 현시점에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해도 그것 역시 세상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세상은 어떤 거대한 흐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고, 내가 어떤 지식을 배우고, 생각해서 갖는 생각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쳐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바꾸는 것’과 ‘고치는 것’이 뭐가 다른지 의미를 잘 모르겠다 싶을 만큼 비슷한 의미를 가졌지만, 보통 독재자들은 자신에게 맞춰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혁명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던져 잘못되어 있는 것을 고쳐서 개선하려고 하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짚고 싶은 것이다.


또한 ‘리더’, 즉 선두에서 다수의 사람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더가 아닌 사람은 세상을 고쳐나가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세상은 어떤 특출한 한 사람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실체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은 리더가 아니라 생각의 틀을 깨친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리더가 된다고 해서 꼭 올바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지도 못한다. 리더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생각과 지식, 그리고 진정한 용기를 갖추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새로운 지식을 쌓으면서 똑똑해질수록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기 마련이지만, 내 생각이 바뀌는 것이 어렵듯이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갖는 어떠한 생각과 경험을 통해 내 생각이 켜켜이 쌓아 올려지듯, 타인도 그만의 과정을 통해 이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집에 살아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이상에는 알게 모르게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친다. 불편할 수도 있고, 내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부분을 일일이 지적해 가면서 내가 불편하고 피해받은 부분을 하나하나 상대를 통해 고쳐가려고 시도해 보라. 인생이 지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정치가 필요하게 된다. 정치적인 방식의 타협이 없다면 폭력으로 점철된 처절한 현장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다고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선택한 독서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또는 상대를 바꾸기보다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바꾸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바로 자신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독서는 이렇게 사회적인 행동 양식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하겠다. 상대와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언쟁 이전에 일종의 ‘총알’을 준비해야 하는 단계라고 할까? 그런데 그 총알은 상대를 또는 세상을 향해 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쏘는 총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타인에게 쏠 수 없는 총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독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독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대답은 “세상을 바꿀 리더”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외향적인 방향으로 설명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수신(修身)’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저자가 짚은 부분은 나름 훌륭한 지적이었다. 다만 공부하는 이유가 그렇듯이 책을 읽는 이유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리더가 되기 위한’ 것이라던가 또는 ‘훌륭한 위인’, 즉 우리 사회에서 제법 인정받는 사람, 그 권위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말 좋은 마음가짐이다. 다만 ‘훌륭하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많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휩쓸리거나 얄팍한 지식으로 무작정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목표를 정하되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훌륭함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매몰되면 끝없이 이어지는 알 수 없는 질문들에서 빠져나올 길 없는 지식의 블랙홀로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의 생(生)은 부질없이 짧기에 죽는 순간까지 고민하고 생각한다 한들 딱 부러지는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편적인 가치’라니! 개인을 넘어서 인류, 더 나아가서는 자연까지 포함시킨다면, ‘보편적인 가치?’, 합리적인 합당함을 찾아낼 수 있을까? 모순되고 대립되는 많은 가치들은 그 독자적으로는 합리적이라 할 수 있기에, 사실 어감 좋은 말일수록 모순적인 완성을 이루고 있음을 느낀다.


다양한 의견들과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그 안에 어울리는 나. 즉 세상을 바꾼다고 하기보다는, 세상 안에서 그 일부로 존재하면서 정확하게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 고쳐나갈 수 있는 소양을 내부적으로 필요로 하고, 그보다 앞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는 시력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어쨌든 저자는 다섯 질문에 대한 답을 기존의 기록들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에 “직접 쓰자”라고 말했지만, 사실 다섯 질문 중에 앞의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들 수 있는 “파트1. 독아: 나를 읽다” 역시 ‘과학적인 최소한의 근거’에는 해당할 수 있을지 모르나, 질문의 광범위한 의미를 생각해 보면 ‘보편적인’ 답이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뇌 과학’이라는 협소함에 의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선택한 나름의 방법론은 훌륭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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