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2/3

02. 전체 요약과 난센스

by 마지막 네오

02. 전체 요약과 난센스


파트2부터 파트9까지는 말 그대로 책 읽기에 대한 방법론들이다.


‘파트2. 다독(多讀) : 많이 읽다’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파트3. 남독(濫讀) : 다양하게 읽다’는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책 읽기를 말한다. 남독의 남(濫)은 ‘퍼지다, 넘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글자다. ‘범람(氾濫)’에서와 같이 ‘람’으로도 읽힌다. 남독은 어느 한 가지 분야에 대해서만 읽게 되면 편협한 지식 세계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와 더불어 해결 방법으로 제시된다.


‘파트4. 만독(慢讀) : 느리게 읽다’의 만(慢)은 ‘게으르다, 거만하다, 오만하다, 모멸하다, 업신여기다’ 등의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저자가 어떤 의도에서 이 한자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명한 독서의 방법론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慢은 우리말에서 주로 ‘자만’, ‘교만’, ‘거만’, ‘오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여기에서 사용된 의미처럼 ‘느리게 읽으면서 완전히 이해하기’와는 통하지 않았다. ‘느리다’라는 의미는 주로 중국에서 사용되는 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중국 사람을 ‘만만디(慢慢的)’라고 한다고 했다. ‘느릿느릿한 사람’ 또는 ‘느림보’라는 의미로 이때는 분명하게 ‘느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어쨌든 저자는 한 권의 책을 골라서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고, 이해한 것을 요약정리하고, 느낌이나 생각 등을 글로 쓸 수 있는 경지를 포함해 만독이라는 독서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파트5. 관독(觀讀) : 관점을 가지고 읽다’에서 사용한 한자는 ‘볼 관(觀)’이다. 본다는 것의 여러 관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지점으로 새롭게 보는 ‘관점’을 강조했다.

‘관점’은 의미 그대로, “사물을 볼 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갖게 되는 사물에 대한 생각, 각도(角度), 견지(見地)”라고 할 수 있다. 즉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보는 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 ‘필요’에 따른 관점을 가지고 독서를 하면 자신이 추구하는 관점에 따라 새롭게 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파트6. 재독(再讀) : 다시 읽다’는 반드시 독서에만 국한된 방식은 아니다. 좋았던 음악을 다시 듣는다거나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행위와 비슷하다. 반복하되 긴 시간적 간격을 두고 다시 찾아 읽는 독서법을 말한다. 음악이나 영화가 그렇듯이 재독의 장점은 ‘새로운 발견’에 있다.


‘파트7. 필독(筆讀) : 쓰면서 읽다’는 정확하게 얘기하면 책에 대한 메모와 표시 등을 하면서 ‘책을 지저분하게 보기’라고 하겠다. 도서관 등 공공의 책에는 하지 말아야 할 ‘비매너’라고 하겠다. 물론 내 돈을 내고 산 내 책이라면 개인적 취향에 따라 책을 읽으면서 줄을 긋기도 하고, 느낌이나 생각을 빈 곳에 메모하기도 하고, 중요 문구를 발췌 등의 목적을 위해 특별하게 표시해두기도 한다. 저자는 이 파트에서 주로 ‘필독’을 통한 글쓰기에서의 활용과 간략한 글쓰기에 관한 견해까지 담았다.


‘파트8. 낭독(朗讀) : 소리 내어 읽다’에서는 묵독(默讀)과 낭독의 차이와 낭독의 필요성, 장점 등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파트7의 필독에서 이어지는 글쓰기와 관련해 낭독의 기능을 적절하게 설명했다. 또한 덧붙여서 ‘독서모임’에서의 책 읽기와 토론 등을 통한 생각 나누기가 독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파트9. 난독(難讀) : 어렵게 읽다’는 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책 읽기가 어려워진 원인, 책 읽기가 싫어진 원인을 분석하고 난독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원인으로 너무나 익숙해진 디지털 문명의 예를 들었다. 그리고 똑같이 글을 읽는 행위일지라도 디지털 기기와 종이책으로 읽는 독서가 어떤 점이 다른지 설명한다. 이후로는 극복 방법으로 환경 설정, 지겹지 않게 여러 책을 돌려가며 읽기를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그냥 읽기’를 추천하고 있다. 이게 무슨 극복 방법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의지와 습관화에 있다는 말이고,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처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실질적인 독서법에 대한 내용은 쉽게 읽혔다. 저자가 예문으로 사용한 각종 실험·실습에 대한 발췌 문장들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저자 스스로 인정했듯이 많은 독서를 바탕으로 한 발췌문들의 위력이 발휘되었음을 느꼈고, 자기가 쓰려고 하는 관점에 맞춰 해석하고 풀이한 방식도 좋았다.


독서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 중에서 딱 짚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독서법의 다양한 소개는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까칠한 나는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뒤표지를 덮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파트1. 독아’를 펴 들었다. ‘어떻게 읽느냐’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떤 일이든지 기초가 제대로 다져지지 않으면 이후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이후에 훌륭하게 펼쳐낸 각 파트의 글을 다 지나왔음에도 꽁한 표정이 되어 첫 파트를 펼쳐 다시 읽어본다.


‘독아’ 파트는 인간 문화의 보편성에 대하여 설명하며 인간은 보편성을 가진 존재이며, 보편성의 바탕은 공통된 유전자의 토대 위에 모든 정신작용과 행동의 원천인 ‘뇌’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을 갖도록 하는 것을 ‘뇌’라고 말하면서, ‘독서’에 대한 의미와 영향에 대해 ‘뇌과학, 심리학, 행동경제학’을 토대로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겠다는 포부를 보여준다.


사실, 이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핵심은 ‘파트1. 독아: 나를 읽다’(이하 ‘독아’)와 ‘파트10. 엄독: 책을 덮으며 읽다’(이하 ‘엄독’)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초가 제대로 다져져 있지 않으면 이후의 방법론은 그냥 이론으로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론적 방법론이 아무리 좋아도 실천 내지는 행위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실천 의지와 행위에 대한 동기를 끌어내기란 무엇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를 저자도 잘 알고 있기에 독서를 위한 선별조건처럼 ‘독아’를 가장 앞장에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독서에 대하여 ‘이런 방법이 있으니 한번 따라 해 보시라’고 말하는 독서 방법론과는 달리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완고한 설득이 필요하다.


저자는 ‘보편적인 책 읽기’에 대한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책들을 보며 근거를 제시하는 책을 자신이 ‘직접 쓰겠노라’ 말했고, 그 방법으로 뇌 과학을 근거로 한 각종 실험이나 예시를 펼쳐놓으며 부족하다고 느꼈던 근거에 대해 ‘설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의 보편성에서 ‘읽는’ 보편성을 따로 꺼내어 이야기가 선행되어야 했다. 저자의 주장은 보편적인 독서법을 ‘나에게도 좋은 독서법이 당신에게도 좋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즉 저자 자신을 통해 보편적인 독서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을 읽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좀 이상하다. ‘나에게 좋은 독서법이 당신에게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다고 하는 독서법이 보편적인 방법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되고, 그 방법으로 누구에게나 있는 뇌를 선택하고, ‘뇌는 변화할 수 있으니 내가 소개하는 독서법을 익혀 뇌를 변화시켜라’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어디에서 저자는 자신을 읽은 것일까?


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나 경험 또는 학습 등에 따라 변화한다는 ‘뇌의 가소성’ 원리에 따라 긍정적이며 진보적인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한 것을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자신을 읽었다고 말하는 것이 설마 자신이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운이 좋아서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인가? 운이 좋아서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게 된 사람의 독서 방식이 보편적인 책 읽기에 대한 답일까? 저자가 품었던 독서에 대한 의문인 ‘독서는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어떤 계기로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약 300권의 책을 읽었더니, 운이 좋게 강의도 하고, 책도 쓰게 되었다.’라는 말인가!


어쩌면 저자가 표현한 운이라는 건 겸손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문맥을 제대로 읽지 못한 나의 무지 때문이리라.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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