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회귀
두서없이 시작한 글의 결론은 알고 보면 간단하고 단순하다.
첫째,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의 원흉은 '친일 세력'이라는 점이다.
'친일 세력'을 말끔하게 치우는 것만이 우리 사회가 평온을 찾을 수 있는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권력과 기득권, 온갖 특권을 차지한 그들을 몰아낸다는 건 정말 힘들고 어려운 투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사회의 권력과 기득권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내일 당장 북한이나 일본 등 외세가 쳐들어온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을 입에 달고 앞세운 존재들일수록 가장 먼저 달아나 살길을 모색할 것이다. 기회 포착에 능하고 약삭빠른 친일 세력은 대부분 살길을 찾아 살아남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기꺼이 우리 민중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방패로 삼을 것이다.
재난이 발생해도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실이다 보니,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이건 음모가 아니라 현실적인 판단이다. 그러므로 우선 '친일 세력'을 싹 쓸어낸 후에 합의를 통해 좋은 단합을 이루고, 화합과 안정을 되찾은 후에 북한 세력을 어찌할지 궁리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안정을 찾고 단단해진다면, 어쩌면 북한 사회는 스스로 자멸하거나, 서독이 그러했듯 비로소 통일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팽창한 현재의 경향을 보면, '구(舊) 소련'이나 중국처럼 스스로 망하거나 개방적인 정책을 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사실 북한보다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세력은 일본이나 미국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둘째, 우리는 시민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고, 깨어나야 한다.
정신과 마음을 흐리는 ‘찌라시’ 수준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말고, 현실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언론이나 기타 사회적, 정치적 전문가 또는 정치인의 이야기를 참고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들이 충분한 사회적 신뢰성 또는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합리성을 담보한다면, 당연히 참고할 수 있는 대상일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은 결코 그런 투명하고 맑은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현혹되기 쉬운 오염수와 같다고 판단된다.
힘과 권력을 앞세워, 자신들이 쥐고 있는 칼자루를 활용해 힘없고 약한 다수의 소리는 아예 억눌러 버릴 생각을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들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채상병 사고에서 비롯된 박정훈 대령 사건'에 관련된 일련의 흐름이다.
이런 흐름처럼 프레임으로 만들어지는 방식에 맞서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정신으로 모든 사안에 대하여 냉정한 사고와 판단, 비판과 더불어 옳고 그름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폭압적인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공권력(검찰, 경찰, 방통위, 감사원 등)을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검찰 권력은 해방 이후로 권력에 빌붙어 기회만 생기면 일제강점기 순사 노릇을 해왔다. 아무런 견제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급기야 국가 원수의 자리에 올라 민주주의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무서운 ‘칼’로 진화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똑똑한 사람은 많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더 많다. 생각이 부족한 게 아니라 법이라는 정의가 국가 권력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기에, 마치 일제강점기 때처럼 폭압과 겁박에 숨죽인 것일 뿐이다. 이러한 올가미를 하루빨리 치워내야 개선의 방법론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여론만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말 혁신적인 정치 개혁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 및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은 정치적인 밥그릇 싸움과 내부의 권력 다툼에 혈안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내년 총선과 그 이후로 이어질 대선에 집중되어 있다. 그뿐이랴, 전 정부와 현재 야당, 언론, 문화계, 노동계, 경제적 측면에서는 기업까지 적으로 돌릴 수 있는 모든 내부적 요소는 외면한다. 별 관심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망가진 민생, 심각한 경제,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무슨 '영업사원'이라는 해괴한 문구를 앞세워 대통령 부부는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자산 증식을 위한 목적으로 ‘고속도로 종점 변경’, ‘주가조작’과 같은 꼼꼼한 부정부패를 실행하거나 은폐하는 데 몰두한다.
야당도 칭찬할 구석은 거의 없다. 무능한 정부와 여당의 몰락을, 마치 나무에서 배가 스스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의 분노가 이전 권력을 탄핵시켰던 모습을 지켜보더니, 좌향기성(坐享其成)의 기질이 생긴 모양이다.
현재 우리 정치에 '국민'은 없다.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의 의미는 아무래도 국어사전이 아니라, 그들만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나도 즐거움을 알고 편안하기를 바란다. 가난하지만 가난 자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나의 삶 자체를 혐오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다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 생활, 일상에서 정치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 좋은 생활이 나라 없이 가능할까? 국가가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줄여 부르는 다른 이름인 이유이다.
그 옛날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지는 전쟁의 양상을 봐도, 나라 잃은 설움은 세계인의 정보와 감성 편차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생활에서 정치를 잊고 살아도 되는 경우는, 정치가 정상적으로, 제대로 운영 및 작동하는 경우뿐이다. 그래서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개인적 성취를 위해 노력하며, 자유롭게 생각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그게 아니라면 정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이고, 일부이며, 생활이고, 일상의 핵심일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지긋지긋하고 말고도 결국 우리가 만든다는 이야기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 된 주체이므로, 투표를 통한 선택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외침과 호소도 소통되지 않는다면, 프랑스혁명이 그러했듯 직접 나서서 추구해야 한다.
올바른 방향의 정치적 혁명을 바라는 건 폭동이나 선동이라 할 수 없다. 독재자에게는 그리 보일 수 있겠지만, 정작 민주 주체인 국민에게는 더 나은 삶을 찾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역사에도 혁명으로 기록된 것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 들어와 무궁한 발전을 위한 모든 초기 인프라가 중요한 현시점에서, 세계 인류 문명과 어울려야 할 우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고 무너져 가야 하는 것인지… 정말 가슴 아프고 안타까워, 이 글을 썼다.
제발, 좌빨이니 우익이니 중도니 하는 같잖은 분열의 소리는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독재에 휘둘리며 맴돌지도 말고, 정말 전 세계, 전 인류 안에 긍지로서 우뚝 설 수 있는,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역할할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 그런 국민, 그런 사람들을 간절히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