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와 나는 왜 부딪칠까

# Cluttered_7

by Savie

찬이와의 시간은 나에게 가장 귀한 시간이다. 찬이가 세상에 온 후로 우리 가족은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낸다. 일주일 가까운 시간을 고스란히 찬이에게 쏟는다. 하나 밖에 없는 조카를 만날 수 있는 날이 1년으로 치면 한 달 정도, 여름 휴가는 그 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시간이기에 아낌없이 몸과 마음을 다 쏟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휴가에 석연치 않은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얼기설기 층층히 얹어 모여있는 마음 조각들이 대략 3-4일째를 기점으로 위태롭게 흔들리고 결국 바닥에 떨어진 파편 하나가 내 입으로 새어나온다. 그렇게 오빠와 나의 감정 싸움은 시작된다. 지난 휴가에도 우리는 부딪쳤다. 표면적으로 갈등이 드러난 순간은 한 번이지만 불편하고 거슬리는 지점들은 이어졌다.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가 전혀 다른 대화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거기다 서로에게 얽혀있는 죄책감과 자격지심, 미안함 같은 감정들이 너무 촘촘해 얽힌 매듭의 시작을 찾기가 어렵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찾으려는 시도를 꺼리게 된다. 말의 의도를 오해하고 왜곡하게 될 오빠의 모습이 분명히 그려지는 건 내 삐뚤어진 생각일 수 있지만, 성난 줄기 마냥 사방으로 엉켜있는 우리의 크고 작은 서사를 하나 하나 풀어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짚어야 할 것들이 한 무더기인데 그 많은 말, 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사실 우린 오랜 기간 우애 좋은, 막역한 남매였다. 각자의 삶에 빠져 서로의 존재감이 미비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곤 늘 가까웠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을 대신해 오빠는 한 살 어린 동생의 그림자이자 보호자가 되었다. 좋건 싫건 오빠가 가는 곳엔 내가 있었고 내가 있는 곳엔 오빠가 있었다. 성인이 되고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지만 어디서든 봉우리가 보이는 우리 고향의 그 산처럼 조금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오빠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완전히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따가운 말을 뱉어내기 시작한 게. 지극히 주관적으로 나의 관점에서(사소한 것들은 차치하고) 바라본다면 5-6년 전 쯤인 것 같다. 비단 오빠와 나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견뎌내 듯 살았던 그 때, 어른이 되었다는 걸 하루 하루 실감하며 살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의지했지만 또 각자의 짐이 무거워 서로에게 그걸 미루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안쓰럽다, 오빠도 나도.


모르겠다. 좋기만한 남매는 없다고 하고, 여전히 남들은 오누이가 잘 지내니 보기 좋다는 말을 종종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느 오누이와 달랐다. 일상을 나누지 못해도 마음은 나눌 수 있던 사이였다. 시시콜콜한 농담과 깊은 말 모두를 할 수 있었다. 오빠의 마음이 궁벽한 곳으로 내몰렸던 때가 있었다. 속을 털어내며 단어 사이는 자꾸 멀어지고 숨은 빠르고 커지는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너무 아파 눈물을 쏟았었다. 하지만 이젠 찾아가는 사람도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는, 분실물함 속 방치된 기억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예전과 같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오빠를 생각하면 의지와 관계없이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과 말들은 몰아내고 싶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버리고 던져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왜 내가 버려야 하는 건지 억울한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붙잡을수록 더 무거워지는 건 내 마음이라는 걸 배웠다. 멀고 아픈 배움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신중히 말하고 쓸모없거나 사치스런 감정은 버리는 연습을 계속하면 우리의 마음은 덜 부딪힐까.


다시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의 말과 마음이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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