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uttered_3
도보로 3-5분 거리의 주민센터 관할 복지시설에서 투표를 했었는데 오늘은 시청으로 가야했다. 15분이면 걸어 가는 멀지 않은 곳이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 거리가 있다. 현상황에서 선거를 준비하고 치르며 감당하는 행정기관의 노고, 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우리들의 이해와 협조 모두 당연하고 또 감사하다.
이번 선거에서 쟁점화되는 이슈들은 대부분 코로나 사태와 관련된 것들이다. 어떤 정당이 혹은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공약이 사라진 선거라는 비판이 들리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하루 사는 것이 급하고 나에게 주어지는 혜택과 이득이 중한 군중의 마음을 사는 길을 모르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금 먼 오늘이 지금 사는 오늘의 문제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살기 위해 어리석고, 우리의 우매함을 이용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패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웃음이 나기도 하는 것은, 그 어리석음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기엔 무섭고 어려운 일이 산재한 세상이다. 좀 더 대담하고 용기있는 혹은 뻔뻔한 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은 맡겨 두는 것이 속이 편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좀 더 내 얘기를 듣고 내 입장을 대변해 줬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투표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기도 하다.
먼저 투표를 마치고 밖에서 함께 간 엄마를 기다렸다. 며칠 전 셋째 고모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누구를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걸 우연히 들었던 게 생각났다. 고모는 20년 넘게 이름 난 회사에서 인정 받으며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시며 상식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와 대화를 할 줄 아시는 어른 중 한 분이다. 하지만 고모와 정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치와 선거를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는게 더 적합한 이유인 것 같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엄마에게 고모와 통화하는 걸 얼핏 들었다며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그런 말씀은 안 하셨지만 통화와 별개로 본인 소신껏 선택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틀 전 아침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사라봉 근처 교차로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며 선거 운동을 하는 고모를 봤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고모가 왜 그 후보를 지지하는지 물었다. 오랜 기간 모임을 함께 해 온 가까운 사이라고 하셨다.
놀랄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지인, 친구의 지인, 동료의 지인, 지인의 지인을 지지하고 투표한다. 특히 괜당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적 특성이 지역 경제 발전 및 사회 안정성 유지에 큰 기여를 하는 제주도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공공 기관, 기업, 크고 작은 사업채, 동네 식당, 편의점까지 구석 구석 괜당 문화가 뿌리 내렸다. 그 지역색을 인정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방인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10년 넘게 일을 했지만 아직도 힘들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이러한 지역색이 깃든 직장문화이다. 상식보다는 관습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물론 이러한 문화가 우리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고 앞으로도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할 힘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나 역시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직 30대 후반인 나는 불편한 지점이 많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여럿 있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말이 길어진다. 어찌되었건 오늘 나는 주어진 몫을 했다. 나의 한 표가 사회를 당장 바꾼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각자가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지역사회의 구성원, 국가의 주권자로서 부여 받은 권리와 책임을 성실히 이행할 때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의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투표소의 행정 직원분들은 밝게 웃고 계셨고 많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하고 투표소를 방문하고 있었다. 재외한국인의 선거 참여가 여의치 않고 자가격리나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 처한 시민들이 있기에 이번 선거의 전체 투표율이 얼마나 높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투표소를 나오는 시민들은 대부분 밝은 모습이었다. 정부를 향한 비판과 칭찬의 첨예한 대립과 여야의 팽팽한 말겨루기, 힘겨루기를 바라보며 느끼는 피로감을 해소하는 데 투표만한 기분 전환이 없는 듯 보였다. 내일, 그리고 15일 선거 당일도 많은 시민들이 투표소를 찾아 주어진 권리를 가치있게 행사하고 가벼운 발걸음, 밝은 얼굴로 투표소를 나오기를 바란다.